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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울라 최 Nov 10. 2021

아이와 나의 말랑말랑한 시간

지독하게 달콤한 사탕

할 듯 말 듯 애간장 타게 하는 아들의 한마디가 나는 너무 기다려진다.

     아이의 발달은 부모의 성적표와 같다. 남 눈치 보기 바쁜 나는, 아들의 행동을 보고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날카롭다.

34살. 인생의 빙판길을 걷고 있는 나의 인생에 아들이 찾아와 주었다. 불행 끝 행복 시작 일 줄만 알았던 인생에 다른 고비가 생겼다. 걱정이 다른 걱정으로 잊힌다는 친구의 조언이 유독 와닿았다.

산후우울증도 정통으로 맞았고 당시 남편도 백수여서 걱정이 많았다.

나는 심적인 고통으로 '아이는 알아서 크겠지' 생각하고 나를 보살폈다.

하지만 아이가 24개월이 되었을 때 발달이 지연됨을 알아채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강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육아 선배이자 친한 언니와 통화를 했다.

"왜 아무도 육아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 거야?"

"그러게 '엄마학교'라는 게 있으면 좋겠어."

아이를 양육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아무도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시 친구가 추천해준 육아서적을 정독했다. 우리 아이에게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올바른 답이 없다.



지독하게  달콤한 사탕

     아이와 스타필드 데이트를 했다.

간식시간. 감자튀김을 먹으려 시도했지만 아이는 먼 곳을 손가락질하며 달아나 버린다.

롤리팝이 나열되어있는 사탕가게.

자기 얼굴만 한 파란 사탕을 가져온다.

"그래~계산하고 먹자"

갑자기 다다다다 달아나더니 분홍색 왕사탕 하나를 더 가져온다.

평소 같음 하나만 고르라 했겠지만 오늘은 네가 원하는 대로. 사탕 하나 4500원 두 개를 계산하니 아이가 흥분되어 있다. 파란색 사탕 포장을 벗겨 주었더니 터프하게 사탕을 먹는다. 분홍색 사탕은 엄마에게 주더니 어서 먹으란다. 이렇게 큰 사탕을 먹으면서 다니자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아서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아이가 하자니 얼른 사탕을 입에 넣었다.

지나가는 아이는 물론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했다.

Wayne Thiebaud (b. 1920), oil on board under glass "Lollipop Tree" created in 1969, signed and dated


핑크핑크한 20대 그리고 팝아트

     2001년, 고등학교 미술 수업중 팝아트(다다이즘)를 처음 접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미술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미술을 전공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미술의 한계와 경계이다.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미술에 대한 나의 열정도 이런 무한함때문이다. 나의 20대는 알록달록했다(형광홀릭). 어떤 계기로 우중충한 내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나에게 20대의 알록달록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Roy Lichtenstein  1963   Acrylic on canvas Tate Gallery


화려한 것도 괜찮아

     미술을 공부하면서 시각적 피로를 느꼈던 적이 있다. 너무 많은 화려한 자극이 원인이었다. 그때쯤 나는 아카데믹한 예술에 심취되었고 나 자신도 심도 있고 칙칙해지기 시작했다. 상업적이고 화려한 예술은 가볍다는 생각이었다. 내 친구 말에 의하면 그때쯤 나는 지하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유치하고 가벼운 팝아트가 다시 좋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지독하게 달콤한 사탕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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