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언니 IL Mondo Sep 02. 2024

봐, 하면 잘한다니까

어지르는 것도 치우는 것도 잘하는 K 장녀

거의 넉 달만에 책상과 화장대 정리를 시작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지만 오늘은 반드시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책상도 치우고 안 쓰는 물건들도 좀 버리고 싶은 그런 날.


오늘이 꼭 그랬다.

[사실 그 마음은 한 달 전부터 먹고 있었지만 시험공부다 회사 일이다 바쁘니까 외면했을 뿐이다]


그래서 외출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방 한가득 버릴 것들을 끄집어 내놓고 큰 쓰레기봉투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래왔던 것 같다.


일단 다 꺼내놓고 발 디딜 틈 없이 버릴 물건이 한가득일 때마다 '아 괜히 시작했나? 언제 다 치우지?'

하고 멍 때리고 후회하는 시간이 10분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치우겠다.] 해치우자 마음먹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망설임 없이 후루룩인 것 같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쟤가 정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라고 곧잘 이야기하셨다.


물건 정리는 참 잘하는데, 감정 정리와 생각 정리는 아직까지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을 다른 감정 봉투에 옮겨 담으며 '이건 조금 나중에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결국 안 쓰는 물건 버리듯 언젠가 정리하게 될걸 알면서도, 버리기 아까워서 그게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1년에 한 번도 안 꺼내보는 물건처럼 오래 묵은 감정을 버리는 게 참 쉽지 않다.


올해로 벌써 몇 년째인데, 여전히 내게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흔적과 감정이 오늘 정리된 물건처럼 쉽게 정리되길 바라면서..


버리지 못하면 보내주기라도 하자는 마인드로 얼마 남지 않은 올해도 새롭게 다가올 인연과 찬란한 인생을 위해 '하면 잘하는' 진가를 좀 보여주자.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 쓰는 이 순간]


이전 03화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