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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언니 IL Mondo Sep 02. 2024

오랜 기억에서 찾은 어른의 품격

배려와 공감을 꿈꾸는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날짜를 셀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친구들과 한 해를 마감하며 보낸 어느 날.


여러 대화 중, 10여 년 전의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해줬던 배려를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꽤 오래 만났던 친구와 갑작스러운 이별로 힘들어하던 나는, 직장에서 팀 선배에게 말했다.

“제가 오래 만난 친구와 헤어져서 평소와 다르게 분별력 없이 행동할 수 있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돌이켜 보니 개념 없는 당돌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너 괜찮아?”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팀에서 제일 막내였던 내가 한 행동이 꽤 당돌하고 미친 짓처럼 보였을 텐데도 말이다.


그때는 정말 감정이 괜찮은 것 같다 생각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일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을 무렵인가 갑자기 팀장님께서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을까)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당시 나는 '요즘 애들'이라고 불리는 세대였기에 팀장님과 마주 앉아 있는 게 꽤 불편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팀장님과 마주 앉아 있으니, 무거운 공기만 가득했다.

결국, 누군가는 말을 해야 했고, 팀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살면서 사람이 죽을 만큼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둘째는 자식이 죽었을 때, 마지막으로 배우자를 잃었을 때야. 네가 남자친구랑 헤어진 것도 아직 어린 네 인생에서는 큰 스트레스일 거야. 연차 몇 개 남았니? 3일 정도 쉬고 오면 괜찮겠지?”


그냥 별거 아닌 말일지도 모르는데, 그 순간 어른 같은 배려에 눈가가 따끔거렸다.

“연차는 꽤 남았는데 저 하루면 돼요.”


정말 하루 만에 4년 동안 만났던 친구와의 모든 시간을 정리했다.

물론, 하루 만에 정리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하루 쉬었기 때문도, 나이가 어려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팀원들의 배려와, 그때 솔로였기에 가능했던 '술 먹게 나와'라는 친구들의 단합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만남이나 이별 같은 일로 슬퍼하는 것, 시간 속에 잃어가는 모든 것이 당연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들도 경험해 봤던 아픔과 힘듦이기에 공감할 수 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선배로서, 혹은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인생의 경험자로서 여유 있게 내 시간의 일부를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아직 나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자신에게 굉장히 너그럽지만, 타인에게는 엄격한, 속 좁은 인간이라 아직도 성장 중이고 얄팍한 행동을 해버린 오늘도 그 결과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다.


늘 긍정보다는 의심하고 염세적인 시선으로 남들을 바라보는 나.

내일은 좀 더 여유 있고, 긍정적인 눈으로 배려하며 살아보는 게 어떻겠니?


어쩌면 완벽한 어른이 되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언젠가 내 안의 작은 변화가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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