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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언니 IL Mondo Sep 24. 2024

멈추면서 찾는 새로운 길

불안 속에 피어나는 새로운 감정

20대 후반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물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그 이후로 매년 팔로우업 하면서 지켜보는데 5년 전 조직검사 결과에서 이게 크기가 커지거나 모양이 바뀌면 갑상선암이 될 확률이 높다고 했었다. 

작년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다고 하니, 올해는 바쁘기도 하고 이래저래 미루다 원래 검사하던 날짜 보다 4개월 늦게 검사를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보자마자 갑상선암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설마 에이. 작년엔 괜찮았는데 1년 사이에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며칠 전 나온 검사 결과는 진짜 암이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 느꼈던 감정은 예상과는 달리 덤덤했다. 

아마도 5년 전 조직 검사에서 이미 들었던 경고가 그 순간을 미리 준비하게 해 준 것 같았다. 

[검사 결과 들으러 내원하라는 말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렇다고 해서 암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가볍게 느껴졌다는 건 아니다. 

망연자실하다거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정보다는 '이것도 지나가겠지'라는 담담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의 내 마음 상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안감과 함께 살아온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하면 괜찮아질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그 말에 '그래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한 생각도 잠시. 

선생님은 수술하게 되면 고음을 낼 수 있는 기능이 영구적으로 손실되거나 일시적으로 손실될 수 있다고도 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을 거고, 재발할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 그럼 내가 지금 교회에서 맡은 찬양 사역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못하게 되는 건가..

일시적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서핑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른 운동은? 살도 많이 찔 거라던데? 어떡하지?

갑상선암도 걱정이었지만 내가 즐기던 취미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작년에 힘들게 감량했던 체중이 불어나면 어쩌나, 20년을 넘게 찬양 사역을 했는데 내려놔야 하나? 하는 걱정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사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몸이 건강한 게 우선이지. 알지만..

내가 그동안 서핑이나 운동을 통해 느껴왔던 자유로움을 한동안 느낄 없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을 있게 해 준 것들을 멈추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들은 내 일상에서 큰 역할을 해왔고 취미를 즐기는 그 순간만큼은 직장과 여러 관계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줬다.


이제는 그 자유로움과 균형을 잠시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다. 

이제 겨우 몸이 기억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있는데 멈추면 또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수술 후의 몸은 예전처럼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몸이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고,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활동들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그 불안감 속에서도 어쩌면 이번 기회에 더 좋은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암 진단이 나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수술 직후에는 서핑이나 필라테스가 아닌 다른 것들로 내 삶의 균형을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운동은 잠시 멈추어야 하겠지만, 내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나를 돌볼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이다.


암이라는 것은 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깊은 자국을 남기는 것 같다.

그 자국이 반드시 상처만은 아니겠지. 


내가 그 자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멈춰있는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움직임을 찾는 시간이라고 믿는다.

멈춘게 아닌 잠시 수련하는 기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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