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냉장고 문을 열었다.
조용히 줄지어 서 있는 병들.
누군가는 이걸 그냥 “샘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시간이 병입된 결과물이라는 걸.
기술 자문을 요청한 양조장들,
그리고 해외 밴더들.
요청은 간단하다.
“맛을 보고 싶다.”
하지만 그 한마디 뒤에는
12일이 있다.
쌀이 풀리고,
당이 만들어지고,
미생물이 시간을 따라 움직이고,
그 모든 과정이 지나야
비로소 한 병이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샘플을 만든다”가 아니라
“시간을 보낸다.”
냉장고 안에 있는 건
술이 아니라
12일씩 쌓인 선택들이다.
어떤 온도로 둘지,
언제 멈출지,
어디까지 발효시킬지.
그 모든 결정이
지금 이 병 안에 들어 있다.
이걸 보내고 나면
누군가는 평가를 할 것이다.
맛이 어떻고, 향이 어떻고.
하지만 나는 그 전에 이미 안다.
이 병은
대충 만든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어쩌면
사업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결과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