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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집 장학생 이도찬

by 하얀술


순조 8년(1808년) 여름 암행어사 여동식이 거창에 머무를 때였다. 더위도 피하고 잠시 좀 쉴 겸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서당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인 듯 했다. 개중 가장 나이가 많은 듯한 아이가 문제를 내고 좀 작은 아이들이 문제를 맞추며 놀고 있었다.



"그럼 과거 급제자 중에 최연소자는 누구일까요?"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자신있게 말한다.

"홍길동입니다."
그러자 문제를 낸 아이가 꿀밤을 먹이며 말하기를 
"그건 소설이잖아. 그리고 홍길동은 서얼인데 어찌 과거를 칠 수 있겠느냐?" 한다.
핀잔을 들은 아이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앉는다. 
다른 아이들이 "이황" "채제공" "송시열" 등 저마다 대답하지만 역시 꿀밤을 먹는 신세다. 
"다 틀렸어. 율곡 이이잖아. 13세에 생원시에 합격했다는 걸 여태 모른단 말이냐?"
그러자 문제를 못 맞춘 아이들이 투덜대며 궁시렁댄다. 
"좋아. 그렇다면 아주 쉬운 문제를 내지. 과거 급제자 중에 최고령 합격자는?"
그러자 이번만큼은 자신있다는 듯 다들 발딱 일어나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기를, 
"네. 이도찬입니다." 한다.



무심코 이 광경을 보고있던 여동식은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이 아이들은 이이는 몰라도 이도찬이라는 사람은 잘 아는가. 여동식에게 이도찬이라는 이름은 생소하기만 한데 아이들은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거 재미있는 놀이로구나. 그런데 이도찬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군고?"
여동식의 물음에 아이들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지난 진사시에 합격한 진사어른이요. 나이 80에 결국 급제하신…."
"80에! 거 대단한 양반이로구나. 대단한 의지야!"
여동식이 감탄하자 아이들이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사실로 말하자면 이진사 어른이 아니라 노비 장문이가 대단한 거지요. 장문이가 아니었던들 이도찬 어른은 끝내 진사가 되지 못 하셨을 테니까요."
"호오! 그게 무슨 뜻이냐? 한낱 노비 주제에 하면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자 아이들이 강하게 부인하며 말하는데 이도찬은 더욱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장문이를 모르셔서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러는 걸요. 이도찬 어른은 장문이가 합격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도찬은 몰락한 양반 가문의 후예로 선조대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십여년 전부터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만큼 심히 빈곤했다. 양반이 가난해지면 종을 파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속량(贖良)된 종은 먼 곳으로 떠나 양반행세를 하면서 살 수 있었다. 종들은 양반생활을 보고 배웠으므로 양반행세를 더 잘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아무튼 이도찬도 노비를 부릴만한 여유도 없어서 하나둘 내보내 마지막 남은 노비가 장문이였다. 이도찬이 속량시키려고 해도 장문이가 한사코 이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장문이는 가까운 곳에 초가를 짓고는 매일같이 이도찬의 집에 와서 마당을 쓸고 불을 때는 등 한결같이 봉사하며 살아왔다.



장문이가 원래부터 노비 신분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원래부터 이도찬의 집안에서 데리고 있던 노비가 아니라는 소문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30년 전 극심한 흉년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유리걸식했는데 그 때 아사 직전에 놓인 장문이를 보고는 이도찬이 불쌍히 여겨 거두었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장문이는 지금까지 30년을 하루같이 이도찬의 수족이 되기를 자청하며 살아온 것이다. 



장문이는 외거노비로서 따로 나가 살며 술을 팔아 생계를 이었다. 이른바 병술집인데, 그것으로 근근히 먹고 살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주인이 과거길에 오를 때면 자신이 술을 팔아 모은 돈을 기꺼이 주인을 위해 썼다. 그 돈으로 좋은 반찬과 식량을 마련해서 넉넉히 해 바치고 시험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해 과거길마다 따라다닌 것이다. 



여동식은 거창읍내에 파다한 이 이야기를 듣고 하도 궁금하여 나그네를 가장하여 이도찬 집에 하룻밤 유숙을 청한다.
"이진사께서도 장문이란 노비가 합격시킨 거나 다름없다고 하는 소문을 알고 계시는지요? 좀 괘씸하고 억울하게 생각되진 않으시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사실이니까요."
여동식은 놀랐다. 아무리 사실이라 한들 양반이 그렇게 말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과거에만 나가면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아내와 하나 뿐인 자식을 전염병으로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마당에 과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무의미한 일이지요. 그래서 과거보기를 폐하려 하는데 장문이가 말하더군요. "평생을 책을 읽으며 과거공부를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그만두면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선조(先祖) 때에도 일흔여섯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있다는데 어찌 포기하려 하십니까?"라고. 그러면서 매일같이 제가 계속 공부하기를 독려하는 것이었습니다. 팔순이 되도록 아무 이룬 바 없는 이 못난 주인을 비웃기는커녕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러는 동안 장문이는 열심히 술을 팔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전 아마 과거도 못보고 예전에 굶어죽었겠지요. 하지만 공부를 다시 한다 한들 이 나이에 과거를 보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보시다시피 늙어서 제대로 걷기도 힘든 몸입니다. 그런데 번번이 장문이가 나를 업어 시험장에 옮겨다 주었습니다. 그러지 않았던들 어디 이 몸으로 시험장에나 제대로 출입할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소과(小科)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제가 먼저 그랬습니다. 이는 장문이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소치이다!"



다음날 여동식은 거창을 떠나기 앞서 장문이의 병술집에 들렀다.

"거 소주 맛 한 번 기가막히게 좋구나!"

장문이를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장문이에게 어떤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떠보려고 했다. 그런데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장문이는 고이 간직했음직한 엽전 꾸러미를 꺼내 품질 고운 수의를 사고 있었다. 
"웬 수의요? 누가 죽었소?"
여동식의 질문에 장문이가 수의를 소중히 안으며 말한다.
"그게 아니라 돈 있을 때 미리 장만해두려굽쇼. 저희 주인나리 장례 때 쓸 물건들입니다요. 제가 먼저 죽으면 우리 주인 나리 돌아가실 때 챙겨줄 사람도 없는데 장례를 어찌 치르겠습니까요."



공자가 먹을 것이 없어 끼니가 곤궁할때 자로가 먹을 것을 구해다 드린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당시 술집은 흥부도 굶어 죽을지언정 술장사는 하지 않을 정도로 기피하는 직업이었다. 헌데 병술집 벌이로 걷지도 못하는 80 노인인 주인의 생계는 물론 학업을 지원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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