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차 창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 빗방울이 풍선만해지면, 빗방울들이 운동회 때 굴리던 커다란 공만큼 커진다면 어떻게 될까. 물은 서로를 끌어당겨 강하게 결합하고 표면적을 최소화하려는 성질로 인해 동그래진다고 배웠는데.. 어쩌다 빗방울 속에 갇히는 희한하고 요상한 일이 생긴다면 나는… 나는 물방울이 터지지 않는 한 그 속에 갇혀 살아야(죽어야)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간 고개를 젓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자동차 도로 주행을 처음 나간 날이었다. 내 옆엔 교관이 타고 있었다. 금*자동차 학원에서 이마트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운전석에 앉았다. 천천히 학원을 벗어나면서부터 온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교관이 말했다. "아줌마,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디 운전하겠어요? 아줌마가 지금 차의 왼쪽에 앉았잖아요? 그러니까 아줌마의 위치를 도로 약간 왼쪽에 있다 싶게 놓고 그냥 달린다고 생각하면 돼요. 학원차량은 다 알아서 피해 가니까 뒤는 신경 쓰지 말고요."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옆에서 교관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차를 몰았다. 그저 앞만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진정이 되면서 겨우겨우 차를 몰고 있었다. 갑자기 툭! 빗방울이 차창으로 떨어졌다. 툭! 툭! 툭! 나의 시선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따라 움직였다. 빗방울들이 얼마나 굵은지 차창에서 물풍선이 터지듯 터져버렸다. 아~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갑자기 어릴 때 머릿속에서 내복 솔기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녔던 이가 생각났다. 토실토실 살찐 이를 잡아 양쪽 손톱으로 꾹 눌러 죽일 때 공기가 가득 찬 번데기가 터지듯 툭 피를 튀기며 죽던 이.. 그때의 그 질감, 그 소리, 그 느낌.. 나는 그 작은 생명체가 일으키는 공명에 당황했었다.
이내 빗방울들이 작아지더니 차창에서 또르르 굴러 내렸다. 작은 물방울들이 저희끼리 뭉치는가 싶더니 마침내 지름이 내 키보다 커졌고, 문득 나를 가뒀다. 투명하고 탄력 있는 탱탱볼 같은 물방울을 타고 탱탱탱 튕겨지고 이슬 방울이 토란잎 위를 구르듯 여기저기를 데구루루 굴러 다닌다.. 생각만 해도 물방울 같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교관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 아줌마.. 아줌마 어딜 봐요!"
나는 깜짝 놀라 교관을 힐끗 돌아보았다.
"이 아줌마가.. 아줌마,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한 총각이라구요. 사고라도 나면 아줌마가 내 인생 책임질 거예요?"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사고가 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바짝 긴장해서 등을 곧추 세웠다.
"아줌마, 빗방울에 현혹되면 안 돼요. 그러다 큰일 나요. 운전할 때마다 나는 기억 못 해도 내 말은 꼭 기억해야 할 거예요."
그때부터였다. 빗방울을 헤아리고, 맑고 투명한 빗방울 속에 꼭꼭 숨어있던 얼굴과 이름을 불러내고, 빗방울에 마음이 젖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그날로부터, 교관의 현혹되지 말라는 그 한마디로부터 모든 게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