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했으며, 외부요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불확실한 미래를 시뮬레이션 돌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부터 자아가 탄생했을 거라고 추정된다.
어찌 됐든 인간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먹이 사슬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짐승들과 음식, 재해들로부터 어느 정도 안정된 시대로 들어섰다. 그렇게 인간은 그토록 갈망하던 생존의 왕관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끝난 줄로만 알았던 생존의 역사는 아직도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현대의 생존은 누가 더 좋은 집에 사는지, 얼마나 많은 자산과 연봉을 받는지, 어떤 배우자를 얻었고, 사회적으로 권력이 강한 직업을 가졌는지 등이 인간 사회 내에 새로운 생존이 되었다. 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그것이 새롭게 생존을 위협하는 외부요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창조된 가치이다.
그것이 없다 해도 실지 생존에는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인간이란 이런 면에서 보면 재미있는 생명체인 거 같다. 더 이상의 위험이 없으니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좋은 쪽이든 아니든 원동력으로 삼아 다시 한번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내가 비관적으로 얘기했다고 해서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가치는 경쟁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고, 이는 문화, 과학, 기술, 전쟁, 철학 등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밝은 면 뒤에는 항상 어둠이 지는 법이다.
요즘 현대인들은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잊어버린 것 같다. 재창조된 가치를 우선으로 두기 때문이다.
가족을 만들고, 부모를 부양하는 것보다는 좋은 집과 차를 사고, 어느 나라에 놀러 가서 좋은 호텔과 비싼 음식을 먹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이며 풀어 나가야 할 과제이다.
우리는 생존 이전의 삶을 상기시켜 볼 필요가 있다. 성인(聖人)들이 얘기해 오던 진부했던 말들인 사랑과 중용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에서 얘기하듯이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도, 얼마나 적게 가지고 있는지도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버렸느냐인 것이다. 그중 불필요한 것이 '나'라는 착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확실한 건 생존 문제 이후 우리에게 새롭게 던져진생존 이후의 가치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