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 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 팀리더를 맡았습니다. 2015년의 일입니다*
*'전남대학교 진로 교과목 대체 수업 - 우리들의 진로 이야기 FLEX' 강연에 연사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학생들 혹은 선댄스 영화제와 관련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주제가 터무없게도 느껴지지만,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갈 그 날을 고대하며, 저의 경험 중 가장 나눌 만한 것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5년.
무려 5년 전 경험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선댄스에 대한 향수가 짙게 남아있어서 일 것이다. 끝끝내 시차적응에 실패하고서도, 관광도 못하고 일만 하며 소화제를 달고 산 그 날들이 떠오른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격언대로 당시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영화관 공고가 많지 않아 동네에서하는 국제 영화제에 지원했다. 그리고 결과는 2년 연속 거절. 자원봉사를 하겠다는데 거절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날 받아주는 데로 가겠어!' 그렇게 구글에 'film festival volunteer'를 검색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Sundance Film Festival Volunteer application now open! 이란 결과가 떴다. 나는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미국행을 준비하게됐다.
2014년 9월 16일. 자원봉사자를 받기 시작하자마자 거의 지체없이 신청페이지에 들어갔다. 일단, 신청서를 작성하는 부분은 기본적인 사항을 넣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존을 가입하는 것 만큼 쉬웠다. 이름, 성별, 유타주 거주 여부, 과거 참여 여부 등을 체크하도록 되어있고 매년 질문지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국내 영화제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면 더욱 어렵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현재 2021년도 자원봉사자 신청 페이지가 열려있는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영화제가 열릴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날짜는 이메일 기준으로 실제와 상이할 수 있음.
2014년 10월2일. 신청을 하고 2주 정도 후에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시간을 하나 정해서 인터뷰를 볼 수 있다는 건데, 전부 새벽 시간이었다. 내가 어디 살든 상관없이 미국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기 때문에, 새벽 5시 즈음에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거의 목소리가 안나오는데 물 마시고 헛기침하고 난리치면서 최대한 하이톤으로 밝게 말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사람들과 팀을 이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밝은 성격'을 강조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질문은 대체로 평이했는데,
1. 팀으로 일했던 경험
2. 영화제에서 일해본 적 있는지
3. 어떻게 알게 됐는지
4. 현재 하는 일은 무엇인지
5. 숙소를 정했는지
등을 물어봤다. 기존에 입력했던 것을 재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더불어 외국인 지원자의 경우는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확인하는 기회였을 것이다. 전화 인터뷰 같은 경우, 모든 자원봉사자가 전화를 받는지는 정확히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다. 왜냐면 나의 경우, 80시간 이상 일하겠다고 신청을 했고, 그걸 바탕으로 팀리더를 줄지 이 때 확인했던 것 같다. 아마 단기간 일하는 옵션을 선택했다면 바로 일정이 나왔을 것이다.
*숙소를 자체적으로 지원해주기도 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지원 프로그램이 다시 참여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졌다고 들었다. 이런 세세한 부분은 매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
일반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비자 면제 프로그램의 일종인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신청해 다녀왔다. 일단 '자원봉사'라는 것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 관련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알아본 바 영화제 참여를 위한 비자는 따로 나와 있지 않았다. 다만 공항에서 질문을 받을 때 문제가 될 말은 하지 않았다. '일을 할 예정이다, 영화제에 참여한다' 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다만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보기 위해 왔고, 아는 사람 없고, 영화제가 끝나면 돌아갈 거다.'라고 묻는 질문에 말리지 않고 찬찬히 답했다.
미국 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유트 인디언족의 말로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정말로 어느 곳에서든 길게 뻗은 록키산맥을 볼 수 있는데, 겨울은 날씨도 흐리고 매우 춥다. 체감 상 백인 인구가 80% 이상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눈에 띄게 백인이 많았고, 인도계,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계열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머물렀던 솔트레이크시티 같은 경우에는 도심에 트램이 다니고, 노숙자를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신도시같았다. 전체적으로 부촌이란 느낌이 강했는데, 구석 구석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나름 성당을 오며 가며 관광객이 굳이 가지 않는 곳들까지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파크시티가 스키장 리조트 빌리지 같은 느낌이라면, 솔트레이크시티는 좀 더 도시, 거주지 느낌이었다. 특히 관광과 영화제로 먹고 사는 곳이라 그런지 영화제가 지역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듯했다. 뭐니뭐니 해도, 몰몬교의 성지로 어딜 가나 몰몬교 교회가 그 위엄을 자랑한다.
모든건 숙박비 때문이었다. 파크시티가 영화제 메인이기 때문에 펍이나, 공연의 접근성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리조트 빌리지 같아 스키장 숙소에 머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하루에 100$씩 내면서 머물 수가 없었다. 체류만 3주 가량을 해야했기에 저렴한 도미토리, 유스호스텔 등으로 검색했는데 파크시티는 일찍부터 예약이 꽉 차있었거나 아예 없던 걸로 기억한다. 애초부터 가격이 상당한데다, 알아보는 중에도 날짜가 갈 수록 숙박비용이 계속 올랐다. 다행히 솔트레이크시티에 호스텔이 딱 한 곳이 있어 거기서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해먹으면서 숙박을 해결했다. 시설은 주택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내지는 도미토리룸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잠만 자고 나와야 해서 그럭저럭 지...지낼만 한 수준이었다. 덧붙이자면, 밤에 맥주를 사러 나가도 될 정도로 치안은 안전했고, 인적은 드물었으며, 소도시답게 혼밥할 수 있는 옵션은 매우 적었다.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 선댄스도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많은 수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고 있다. 대다수의 우리팀 참가자들은 수년간 연속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점도 놀라웠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구성원들의 연령대와 충성도였다. 20대 초반 학생들이 한 두번 스펙을 쌓기 위해 참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5년 이상 근무하셨다는 5-60대 주민 분들이 다수 계셨다. 틈틈히 영화과 학생들도 있긴 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아예 IT, 영사 쪽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고정으로 담당하는 분야도 있었다. 우리팀 헤드도 대학에서 강의를 나가면서 영화제 기간에만 따로 근무를 하실 정도였다. 규모는 약 20명 씩 2개의 팀이 한 영화관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일했던 브로드웨이관의 경우 다행히 영화관의 일부만 선댄스에서 운영했고 소규모였다. 관의 크기에 따라 팀 규모가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3-40명이 한 팀이라 생각하면 된다.
팀의 규모가 상당하고 시간마다 사람이 계속 바뀐다는 건, 관리직의 경우 담당할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거기에 관리자보다 영화제에 오래 근속한 분들도 상당수여서, 이 분들께 배울 건 배우고, 주의를 줄 건 주고 하는 완급이 업무 중 가장 어려웠다. 시프트 이외에 극장 관리, 영화제 투표 용지 관리 등이 지연되는게 다반사여서 주로 막차를 타고 퇴근 했다. 그나마도 차없는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 준 것이고, 밤 늦게 내 위에 1st operator가 숙소까지 데려다 준 적만 몇 차례나 되었다. 1st, 2nd operator들은 차가 있어서 겨우 눈 붙이고 나오는 정도로 일을 했다. 어떤 날은 너무 바빠서 2층 사무실에 올라가지도 못한 날도 있었고, 밥은 거의 매일 피자로 떼웠던 것 같다. 그래도 멀리서 왔다고, 다른 자원봉사자 분들이 밥도 사주시고, 집도 구경시켜 주시고 많이 도와주셨다.
주로 CS 전반과 영화 시작 전 음향 및 GV(영화 관계자와 관객과의 대화) 준비, VIP 안내 등을 모두 담당했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포스터 갈아끼우는 것부터 감독 안내에 화난 관객 진정시키고 경쟁작 투표지 봉인까지 정말 사람 손이 가는 부분은 다 관여했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 팀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고, 그때 그때 무전기를 뛰어야 하는 긴급상황이 생긴다. 그때도 나름 E-ticket이 있었는데 이런 자동화 시스템에도 난리도 아니었다. 내일 표를 가져온 관객이 입장을 시도한다던지, 객석에서 음향관련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던지, 포스터를 요구한다던지 하는 일들이 계속 터진다. 그 가운데 영화 관계자들이 시간대별로 도착하고, 대기하고, GV를 진행해야했다. 진행, CS 등 동시다발적인 상황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어필하는 것도 지원시 팁이 되겠다.
영화제나 영화관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면, 사실 일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다. 관광 영어 이상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라면 짧은 시간 일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떨 땐 대기만 하다가 시프트가 끝나는 경우도 생기기도 하고, 보통은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둘, 셋 짝을 지어 업무를 수행하게 한다. 시프트 시간과 관여도 높은 CS에 배치될 확률은 반비례 한다. 정 걱정된다고 하면 한 가지 팁이 있는데, 가기전에 전화 영어로 준비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보통 전화 영어로 회화 공부를 할 때 주제가 없이 이야기하다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영화제 혹은 영화관이라는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에 관련된 역할극, 정확한 발음 등을 준비하는 식으로 진행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무전기를 차고 오래 일해야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팀원들을 관리해야하기 때문에 영화관 매니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내 경우, 시차 적응할 여유따위 없었고, 수천달러짜리 패스권이 주어졌지만 사실상 사진 붙어있는 ID 용도였다. 몸이 고되다는 단점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상영이 시작하면 관내를 관리하기 위해서 상영관 내에 머물러야 했기에 상영하는 영화들은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장당 $25로 결코 저렴하지 않은 티켓 대신 수백~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패스권이 주어졌다. 오히려 패스권 가지고 피터지게 상영작 예매 새로고침하느니, 나처럼 하루에 몇시간씩 영화만 보고 싶다면 80시간 이상 일하겠다고 신청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밖에 좋은 점은 피자를 정말 원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과 팀원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아져서 집을 구경시켜주신 다던지 하는 소소한 소소잼 정도가 있겠다. 그리고 GV오는 감독들 원없이 구경한다던가, 엄청난 사람들을 '행인1' 취급하는 경험도 해볼 수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감독 '션 베이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탠저린>이란 영화를 들고 선댄스에 왔는데, 경쟁작이었던걸로 기억을 한다. 소재 자체도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데다 배우도 같이 와서 여기저기서 질문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뭔가 앞으로도 이렇게 마이너한 장르만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이 사람은 한동안 한국에서 볼 일은 없겠구나.' 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탠저린>은 촬영을 아이폰만 이용해 촬영한 유일한 작품이었다. 그마저도 협찬 거절당하고 사비로 써서 했다며 아주 차분하게 얘기하는데, 정말 뒤늦게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현장 반응은 어이없어서 웃는 사람 반에, 그냥 와우 거리는 사람 반. 감탄 그 자체였다. 뜯어보면 '어, 티가 나네 확실히' 하겠지만,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중요한건 뭔지 곰곰히 생각하게 만든 경험이었다. 그리고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나왔을 때 그의 작업 방식이나 프로젝트 진행 방식을 몇 시간동안 읽어보면서 그의 매력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일을 줄이고 브래드피트를 보겠다. 관리자 시켜 주겠다 그러면 손사래 치며, 공연과 부대 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꺼다. 자금을 넉넉히 준비해야겠지. 언제든 조끼와 명찰 벗어던지고 시얼샤 로넌도 보고, 옆 극장에 왔다던 로버트 레드포드랑 사진도 찍으러 뛰어 갈꺼다. 대포카메라 사서 가지고 간다음에 블로그 하나 파서 대대손손 자랑할꺼다. 관리자는 한번으로 족하다. 앞으로 당분간은 관객으로 살련다.
매일이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영화관 문이 닫히고 암전이 되면 매 시간 씨네마천국이 시작됐다. 영화제는 숨 죽이며 모두가 감독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영화의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런 애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뿐이랴, 영화 상영과 별도로 AR, VR 등 신기술을 이용한 영상 체험과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연사들의 강연, 그리고 참가자들을 위한 두 번의 파티까지. 놀이뿐 아니라 영화 산업 전반을 가늠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선댄스 상영작과 수상작을 보고 1년 뒤에 어떤 영화가 CGV에 걸릴지, 누가 5년 안에 신성으로 튀어나올지 두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만큼 미친 재능들의 놀이터이자, 영화 마케터들의 소리없는 전쟁이 펼쳐지는 곳이다. 어떻게 이런 산골마을에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지 의아할 정도로 스크린은 다채롭고, 그 열정은 뜨겁다.
4,50대가 되어 수십만원 짜리 패스를 끊어 가는 것도 좋겠지만, 투잡, 쓰리잡하면서 돈을 모아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쏟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경험. 이런 경험이 모여 분명 더 재미있는 인생이 된다고 믿는다. 준비 과정도, 참여 자체도 고생스러워 더 기억에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기억이라면 몇번이고 더 고생스러울 수 있다. 영화를 사랑한다면, 국내 영화제를 기웃거릴 돌아볼 정도로 적극적이라면 충분하다. 선댄스 뿐 아니라 지구 어느 곳이던 여행하는 김에 참여해보시길! 거기서 거기인듯, 절대 거기서 거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선댄스에서만 상영되고, 투표되는 영화들이 있는 한 선댄스는 영원할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잘 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언제든 선댄스에서의 기억을 소환할 것이고. 이후에 두 번이나 거절당했던 영화제에 참여하게 됐고, 줄줄이 두 곳에 더 참여하는 것으로 나의 영화제 참여는 막을 내렸다. 20대 초중반, 취미를 경험으로 끌어 올리는데 영화제는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놀이이자 경험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그 어느 곳이라도 씨네마천국, 낭만 그 자체를 경험해 볼 수 있을것이다.
*확정된 바는 없지만, 추후 선댄스와 관련된 포스팅을 두어 개 더 작성해 볼 계획입니다. 궁금한 점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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