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책의 탄생_뤼시앵 페브르 외

책의 출판(L'Apparition du livre)

by 안철

[리뷰] 뤼시앵 페브르, 앙리 장 마르탱 著/강주헌, 배영란 譯. 책의 탄생. 돌베개. 2014.

책의 출판(L'Apparition du livre): 종이와 활판인쇄의 역사



1958년 프랑스의 출판사 알뱅 미셸(Alvin Michel)에서 출판된 이 책은 2014년에 국내에 번역 소개됐습니다. 본문만 550페이지에 발문을 포함하면 600페이지인 벽돌책인데요, 참고문헌과 찾아보기까지 더해지니 760페이지짜리 책이 되었습니다.

3년간이나 게으름을 피운 탓에 이제야 책장을 덮게 됐지만, 차라리 그 게으름이 책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싶습니다. 그간 몇몇 벽돌책과 작은 책들을 통해 책의 역사에 대해 공부해 본 덕에, 이번 독서가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책부터 읽고 나서 다른 책들을 살펴봤다면, 그 책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수도 있겠죠. 아무려나, 게으름에 대한 반성 대신 변명도 못될 핑계를 대 봅니다.

프랑스어는 관사조차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문외한인지라, 번역서명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활판인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막상 원서명을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찾다 보니, 아파리시옹(apparition)이란 단어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라틴어 appárĕo(나타나다는 뜻)에 기원했을 프랑스어 동사 아파레트르(apparaître)의 명사형이기에, ‘출현’과 같은 번역이 첫 번째로 떠오를 터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뜻으로 퓌블리카시옹(publication)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활판인쇄의 도입 이후 책(livre)이란 것은 ‘출판’되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말에도 ‘책을 내다’는 표현이 있듯이, 출판보다는 좀 완곡한 표현을 쓰려다 보니 아파리시옹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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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뤼시앵 페브르는 서문에서 인용한 쥘 미슐레의 발언을 인용합니다. 책이 그 인용대로의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활판인쇄라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고 봅니다.

“Le livre, c'est la grande œuvre des grandes âmes créatrices dans tous les domaines, recueillie aisément, commodément, rapidement et à peu de frais, pour toujours.”
(책이란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창조적 영혼들이 이룩한 위대한 작품을 쉽게, 편리하게, 신속하게, 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영원히 모아놓은 것이다.)
- Jules Michelet


그리고 활판인쇄가 가능해질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종이의 출현이란 점도 꼭 짚어야 할 듯합니다. 따라서 “책의 출판”은 종이와 활판인쇄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 책은 그에 대한 설명이 참 잘 되어있습니다. 사학자와 문헌사학자가 써낸 이 책은 꼼꼼하고 풍부한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과하게 풍성해서 지루하기까지 하다는 감상평을 불러옵니다.



1. 종이의 출현


이 책은 “유럽 내 종이의 출현(l’apparition du papier en Europe)”으로 시작합니다. 종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를 꼼꼼하게 따질 필요는 없고, 그저 유럽에서 종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게 됐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12세기 유럽에 전래된 종이는 14세기가 되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인기 상품이 됩니다.

14세기 중엽 서유럽 지역에서 종이는 거의 도처에서 쓰였고, 14세기말에 이르면 흔한 상품으로 대중화된다. 이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데, 종이 원가가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완전한 평면의 공간이 제공되는 종이를, 그것도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종이 제작 단가는 매우 천천히 떨어졌다). 이 모든 점 덕분에 종이는 문자와 그림을 널리 확산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최고의 기록매체로 거듭났다. - 79쪽


도처에서 사용하게 됐다고는 해도 종이는 비싼 상품이었습니다

1539년 리옹 기준으로 조판공 한 명의 하루 일당은 6솔 6드니에였는데요, 그 당시 종이 1연(500매) 당 가격은 그 품질에 따라 10~30솔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 모조지 1연에 6만원이 채 안 되는 걸 생각해 보면, 당시 종이값은 지금의 최소 4배에서 10배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이런 가격도 양피지 가격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습니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책 한 권을 필사할 수 있는 양의 양피지 가격이 1.5플로린(일반노동자의 한 달 급여 정도로 추정)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양피지를 이용한 필사본(manuscrit)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책(livre)를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는 닥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었는데요, 이 과정이 몹시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었고, 그에 따라 종이값은 동시대 유럽에 비해 말도 못 하게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과 중용과 같은 서적이 면포 3~4필(일반노동자의 1~2개월치 급여 정도 추정)에 해당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종이값이 비싸니 책값도 비싸고, 책값이 비싸니 지식의 공유는 정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사회는 비벼볼 수도 없는 높은 수준의 생활문화를 영위하던 조선이 점차 뒤처질 수밖에 없던 이유가 하나 설명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럽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인쇄술의 등장 이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차 더 확대되었으나, 적어도 18세기까지는 책이라는 상품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며 부유한 재산을 가진 엘리트 계층만의 전유물이었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형태를 잡아주며 종이가 만들어지고, 인쇄기도 수동식으로 한 페이지씩 찍어내던 그 시절, 종이는 여전히 귀중품에 해당했고, 그 보존과 보관에도 신경 써야 했으며, 제본 방식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 189쪽



2. 활자의 발명


이 책에서는 인쇄기술이 ‘금속활자, 걸쭉한 인쇄용 잉크 그리고 인쇄기’의 3가지로 이루어진다고 봤습니다. 그중에서 잉크와 인쇄기는 혁신이 필요할 정도의 기술은 아니라서 그리 중요하게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고 봤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활자였다는 겁니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활자 역시 유사한 문제를 낳았다. 손쉽게 마모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한 합금을 과연 단번에 찾아낼 수 있을까? 오늘날의 활자가 납-주석-안티몬 3중 합금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102쪽

활판인쇄 이전에는 목판인쇄가 이루어졌습니다. 유럽에서와 달리 극동아시아에서는 수준 높은 목판인쇄문화가 일찍이 꽃을 피우긴 했었습니다. 종이 덕분이었죠. 그렇다 보니 유럽에서는 목판인쇄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고, 15세기에서야 활판인쇄를 통한 서적 인쇄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활판인쇄가 시작되고 1세기도 되지 않아, 서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필사본에서는 고딕체(gothic type 또는 rotunda, black letter)에서 로마체(roman type 또는 Antiqua)로 인쇄활자의 주요 서체가 변화합니다. 라틴어로 출판되는 책이 80%에 이를 정도였던 시기였고, 시장 자체가 유럽 전역에 걸쳤기 때문에 상업적 목적에 의해서도 가독성 좋은 통일된 서체가 필요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3. 출판산업: 상품으로서의 책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상품의 지금과 같은 형태를 지닌 것은 꽤 오래됐습니다. 양피지를 사용한 필사본이 코덱스(codex)란 형태를 갖춘 이래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몹시 적당한 형태였기 때문이겠죠.

과거의 장정방식, 즉 필사본과 19세기 이전의 인쇄본에서 초기 형태 그래도 유지되던 장정방식을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돌아다니던 책의 제본 상태가 상당히 견고하며 오늘날의 제본 상태에 비해 그 품질이 놀라울 정도로 우수하다는 점이다. - 189쪽


비싼 양피지를 대신할 종이라는 미디어가 생겼고, 목판보다 훨씬 경제적인 활판인쇄술을 발명해 냈습니다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책의 공급을 비약적으로 늘일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지만, 그 공급을 흡수할 수 있는 충분한 수요의 시장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3세기 대학의 설립을 통해 늘어난 수요는 필경사들에 의해 충족되는 수준이었고, “가능하면 현지에서 안정적이고도 충분히 폭넓은 고객층을 찾을 수 있어야 했”던 인쇄소들도 대학이 소재한 대도시에 중점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공급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요는 부족했기 때문에 초기 인쇄업자들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초기 출판산업은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위계화된 공급망이 거대 자본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1490년경이 되면 유럽 전역에 도서 판매망이 조직된다. 대형 출판업자로부터 책을 받아 판매하는 서적 소매상이 곳곳에 자리 잡고, 대형 출판업자들은 여러 도시에 현지 대행업자들 둔다. 이에 따라 책의 거래에서도 서열화가 나타난다. - 386쪽

이때 대형 서점들은 대개 자산 규모가 더 작은 서적상들의 은행가 노릇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결제방식이었던 환어음 체계를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도 이들 대형서점이 매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서적상과 인쇄업자들이 대형 박람회장을 자주 찾게 됐다고 봅니다. “주기적으로 박람회에 참석해 회계장부를 결산하고 채무를 정산할 수도 있었고, 박람회에 오는 활자주조공과 각인사들에게 필요한 인쇄 기자재를 구입할 수도 있었으며, 공통된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기도 하고, 다음에 출간할 책에 대해 홍보를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성장하게 된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박람회는 특히 비중이 컸다고 합니다.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출판산업을 활황으로 이끈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아우구스티누스 성당 정문에다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박문을 벽보로 붙이고, 반박문의 내용은 독일어로 간략하게 요약되어 벽보 형태로 인쇄된 뒤 독일 전역으로 배포되었고, 불과 2주 만에 그 내용이 도처에 알려졌다. - 493쪽

“영국의 왕들조차 대륙 내 국가들과의 도서 교역을 차단하고 나서게 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닌 종교개혁”은 독일 내 출판 중심지의 지리적 분포도를 모조리 뒤집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발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는 출판 호황기를 경험케 했습니다.

하지만 16세기말부터는 “태동기에 이례적인 번영을 누리던 인쇄술은 위기를 맞”았다고 전합니다. “인쇄본이 탄생한 지 100년이 지난 후, 이제 책은 시장에서 넘쳐나는 상황이었으며, 그에 더해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출판사들이 출간 자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4. 저작권의 확립: 출판권과 검열 사이에서


저작권은 1710년 앤 여왕에 의해 처음으로 법제화되었고, 국제적인 저작권 보호는 1886년 베른협약(Berne Convention)이 체결되고 나서야 부분적(협약 체결국이 한정적이었다)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저작권보다는 출판권이 우선시됐고, 출판권 이전에 검열이 우선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인쇄기에서 책이 나오면 저자들은 으레 책을 몇 권 요청해 몇몇 부유한 귀족에게 신속히 이를 보내주었다”라고 합니다. 헌정사와 함께 보내진 책은 일정한 후원금으로 돌아왔다는 겁니다. 이는 “16세기에는 합법적인 관행이었던 데다 상당히 고상한 방식”에 해당했다고 설명합니다.


서적상이 저자로부터 원고를 사들인 이후로 “작가들은 책의 출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심지어 출판권이 확립되기 이전이라서 “모든 서적상에게 원고 출판의 권리가 있었고, 저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원고의 사본을 구해 책을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남이 만들어놓은 책을 불법 복제할 경우에는 지면 배치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았고, 작가에게 원고료를 줄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재인쇄본은 품질을 약간 더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이윤을 줄임으로써 원본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는 유인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16세기 초에는 인문주의 인쇄업자들의 간행물이 무단복제되는 경우가 빈번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텍스트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그 인쇄와 판매의 독점 허가권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에는 독점적 출판 권한의 연장이라는 관행이 일반화되었고, 이에 따라 서적상은 한번 사들인 원고에 대해 거의 무한정 독점 출판권을 누렸다”라고 합니다. 그런 제도 하에서 출판사는 지속적인 이익을 창출하는데 반해, 저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배알이 꼴린 일부 작가들이 ‘자가출판’을 시도하기도 하는데요, 이미 길드로 성장한 출판사들에 의해 번번이 좌절됐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출판길드에 강력한 출판권을 부여하게 된 데에는 검열의 목적이 존재했다고 봅니다. 16세기에는 검열을 위해서 “주요 금서목록을 담은 수많은 색인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했었다”라고 할 정도로, 종교개혁의 여파로 인한 검열이 무척 심해졌습니다.

사회질서의 확립을 추구하던 정부에서는 불온서적이 점차 늘어가는 상황을 저지하려 했고, 이에 따라 정부는 장인들의 그 같은 움직임을 더욱 장려해 이는 결국 길드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길드가 조직되면 정부로서는 서적상과 인쇄업자의 업계 활동을 좀 더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50쪽

특권을 쥐어주고 소수를 통제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었기에,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의 국가권력은 서적상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관대했지만, 저자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한 처벌을 가했다고 전합니다.



5. 자국어의 발전을 촉진하다


1500년대 이전 인쇄본 가운데서는 라틴어 서적이 전체의 77퍼센트로 막대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나머지 20% 남짓한 점유율을, 이탈리아어 서적이 7퍼센트, 독일어 서적이 5~6퍼센트, 프랑스어 서적이 4~5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발전에 유리하게 작용한 인쇄술은 각국의 언어가 형성되고 자리를 잡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16세기 초까지 서유럽 각국의 언어는 나라별로 시기는 좀 다르지만 문어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공용어의 기능을 하고 있었고, 구어의 사용에 근접하며 차츰 독자적인 발전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16세기에는 중앙집권화된 군주제가 등장하며 각국의 행정당국이 문어로 자리 잡은 자국어의 통일화에 주력하면서, 특히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7세기 후반에는 출판산업의 구조 변화로 인해, “세속 언어로 쓰여 쉽고 빨리 판매될 수 있는 문학작품들을 주로 출간하고 판매”된 탓에 라틴어의 쇠퇴와 자국어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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