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는 어떻게 해석학(解釋學)의 기원이 되었나

피디가 쓰는 그리스 신화

by pdcafe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제우스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심부름을 도맡아 한 전담 전령이지요.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로마에서는 메르쿠리우스(Mercurius)라고 불렀고, 영어로는 머큐리(Mercury)라고 합니다.

어원을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교차로에 세워 놓았던 돌기둥 헤르마(Herma)에서 왔고,

태양계 행성 중 수성이 머큐리(Mercury)입니다.


헤르메스는 정말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지요.

우선 전령의 신입니다. 양치기의 신이기도 하고, 교통과 거리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 사기꾼의 신이자

웅변의 신이었고 죽은 영혼을 지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인 업무는 전령이었지요. 날개 달린 두건과 신발 덕분에 번개처럼 날아가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전령의 상징인 지팡이 케리케이온(Kerykeion)에도 날개가 달려 있다고 하죠.

국내 유명 포털서비스의 검색창 왼쪽에 있는 날개 달린 모자 아이콘이 바로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두건입니다. 가장 빠른 전령의 신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겠지요.


헤르메스는 요정 마이아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티탄 신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에게 반한 제우스가 한밤중에 몰래 동굴에서 자고 있는 마이아를 찾아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헤르메스였지요.


헤르메스는 태어난지 몇 시간도 안 되어 도둑의 신으로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어머니 마이아가 잠에 빠져 있는 사이 강보에서 빠져나온 아기는 아폴론의 목장으로 가 소를 훔치는데요.

당시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번개와 벼락과 천둥을 벼려주었던 키클로페스 삼형제를 죽인 벌로

1년간 신의 지위를 상실한 채 아드메토스 왕의 종노릇을 하며 왕의 소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헤르메스는 도둑질을 하면서 소를 훔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치밀한 뒤처리를 하지요.

강가 모래사장의 길을 이용하면서 소들을 뒷걸음질치게 했고,

소발굽과 자신의 신발에 나뭇가지를 묶어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했습니다.

훔친 소를 은밀한 곳에 숨기고 다시 강보에 들어가 천연덕스럽게 자는 척을 했습니다.

과연 도둑들의 신이라 불릴만했지요.


헤메스는 이후 제우스의 전령이 되었습니다.

제우스가 저지른 사고의 뒤처리를 담당했지요.

언젠가 제우스가 이오(Io)라는 헤라 신전의 여사제와 사랑을 나누다가 현장에서 헤라에게 발각됐습니다.

현장을 들켰지만 제우스는 재빨리 헤라가 도착하기 직전에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켜 버리죠.

헤라는 이미 상황을 파악했지만 물증이 사라진 마당이라 모르는 척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헤라는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 암소를 선물로 달라고 하지요.

헤라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암소를 넘겨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암소를 끌고 간 헤라는 자신의 충복인 아르고스에게 감시를 맡깁니다.

아르고스는 눈이 100개나 달려 있는 괴물로 언제나 눈 하나는 감지 않고 뜬 채로 있어서 그 누구도

아르고스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지요.

제우스의 부탁을 받은 헤르메스는 나그네로 변신하여 아르고스에게 접근합니다.

피로를 풀어주겠다며 피리 연주를 시작했고 피리 소리를 듣던 아르고스의 눈들이 하나 둘 씩 감기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눈 하나마저 감기는 순간 헤르메스는 아르고스를 처치하고 이오를 구출하지요.

이렇게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뜻을 다른 신들이나 인간들에게 전하는 전형의 역할을 했으며

때로는 이미 벌어진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충직한 참모였지요.

헤르메스.jpg 헤르메스,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

헤르메스는 또한 제우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존재였습니다.

가이아가 제우스에게 앙심을 품고 괴물 티폰을 낳아 올림포스를 공격했을 때의 일입니다.

함께 싸워줘야할 올림포스의 신들이 모두 다 도망가고 제우스 혼자서 티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요.

가공할 위력을 가진 티폰에게 제우스가 사로잡히게 되고 티폰은 포로의 손발 힘줄을 모두 자르고

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제우스는 불사의 신이라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제우스를 살린 게 바로 헤르메스였지요.

제우스의 잘린 힘줄을 훔쳐내 제우스를 살리고 결국 티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헤르메스가 무한한 신뢰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뜻을 신들과 인간들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결국 신탁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가 있지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일은 곧 해석 또는 번역을 뜻하겠지요.

문자나 텍스트의 정확한 뜻을 밝혀내고 해석하는 일을 헤르메네이아라고 했으며,

이것이 곧 헤르메노틱스(Hermeneutics), 해석학이 되었습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뜻을 일방적으로 전한 단순한 전령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한 쪽의 뜻을 제대로 파악해서 다른 쪽에 올바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 메신저였지요.

헤르메스는 결국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능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헤르메스가 왕림하여 모든 일에서 본뜻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해석하고 번역해준 것이 지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I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행하는 모든 해석에는 주관이 섞일 수 밖에 없겠지요.

우리가 온전하게 소통하려면 언어와 말, 메시지를 은밀하게 포장하고 있는

모든 거짓과 위선을 걷어내는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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