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되는 나날들
애정이 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었다.
재밌었고, 재미없어도 해야 하니깐,
내 업무니까 잘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깐.
근데 요즘은 아니다.
놀라울 만큼 흥미가 없다.
내가.. 이보다 더 할 수 있는 데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우니깐.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게 나를 지키려는 방법인가 싶다가도
"더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해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쉽다.
지피티에 의한 미니프젝을 하면서
떨어진 인간으로서의 효능감 문제도 있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지 못하는 더 나아가 하고 싶은 게 없는 문제도 있고,
그냥 복붙의 향현인 코드의 문제도 있고,
조과제인지 서바이벌인지 모르는 것들로 지쳐버린 것도 있고,
그저 궁금함이 없는 내 모습에 실망한 것도 있다.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도 그저 질문에도 쉽사리 답이 안 나오면서도
결혼 소식과 함께 중도에 관뒀지만 자격증이있고, 배운 게 이것 뿐이니 하겠다는 말에
마음이 좋지 않다.
내게 어서 탈출하라던 너는 그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끝없이 고리에 고리로 이어진 사람과 일은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 동시에 감흥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나는
스스로가 너무 낯설고, 성급한 결정이었던 가를 반추하게 만든다.
근데 또 딱히,
그 상황에 다를 수 있었겠나 싶어지면서 원망이 차오른달까.
오랜만에 했던 면담에서 학교폭력으로 학교를 옮기고 꿈을 포기했지만,
동시에 포기하지 않은 아이가
"더 버텼어야 했을까요?"라고 물으니
속이 탔다.
선택이 맞나 그것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건가.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나.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으로
독서 모임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도 오랜만에 연락을 했고,
정말 우연찮게도 수상 2-3일 전에
미니 프로젝트에서 했던 데이터 분석 결과에
나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논의점으로 제안했다.
이상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혹은 이 우연을 그렇게 해석하길 바라면서
그 아름답고도 반가운 소식은
다른 여성들 모두 연대하고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더 아쉽고,
"더 버텨야 했나?"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나에게 닿았던 수많은 말들도 다시 스쳤다.
대부분과 인연이 끊겼고,
끊길 예정인 사람들의 말이다.
오랫동안 속삭였지만,
그럼에도 버티다가 그 순간에 흔들린 건 내가 지쳐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타인은 영원히 누군가의 옷을 입지 못한다.
그걸 시도하고자 자신을 비워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상담가의 의무임에도
평행선에 있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 없이 가볍고도 가벼운
말 한 마디들이었는데
참 이모조모 생각이 튀어간다.
그렇더라도 난 이 과정을 끝까지 해낼 것이다.
애정이 없든,
호기심이 떨어졌든,
매일 그만두고 싶단 말이 입 밖으로 쏟아지든,
계속 할 것이다.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게 없고,
이 시간은 결국 내 능력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의 말처럼
그냥 애정도 열정도 없어진 나를 받아들이고 해볼 것이다.
뭐 살면서
이런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일반적인 생각보다 흥미는 왔다갔다 한다.
여타 자연의 것처럼 절대로 정해진 값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