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턴 출근 첫날이다.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 사이를 걸으며 비현실감을 느꼈다. 시골쥐처럼 두리번거리다 도착한 사무실은 23st에 있는 건물의 20층. Suite라고 불리는 한 칸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중소 무역회사다.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의 책상에 앉았다. 당시 24살, 아직 학생 신분이었기에 직장인으로서의 첫자리였다. 모니터가 두 개라니, 약간 노랗게 바랜 유선 전화기마저도 좋았다. 내가 주로 맡게 될 업무는 세일즈 보조, 사무 보조, 창고 관리 및 정리, 인벤토리 체크, 서류 번역, 문의 응대였다.
회사 인원은 총 5명, 인물 소개를 하면 이렇게다.
CEO- 래리(Larry)
시니어 매니저 - 피터(Peter)
신입 세일즈맨 - 빅터(Victor)
사무실 총무 - 린다(Linda)
인턴(나) - 지(Ji)
Ji ~~ U Ready?!!
첫 업무. 래리(사장님)는 첫 근무 일정으로 같이 갈 곳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회사 브로셔와 함께 창고에서 들고 나온 반전의 물건, 바로 네발 달린 시장 카트였다. 이 카트는 우리가 주로 집에서 분리 수거할 때 쓰거나, 망원 시장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어제도 봤다.
시장 카트를 끌고 뉴욕 한복판을 걸어가는 Larry(CEO)와 Ji(인턴) - 실제 가방의 모습은 캐리어가 아닌 오른쪽 카트처럼 생겼다.
출발~~~
셀카를 마구 즐기고 있는 여행객들, 아이러브뉴욕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세계 각지 관광객들 사이에서 구루마 끌고 맨하탄을 활보하는 두 사람. 우리는 34번가까지 열심히 카트를 끌며 영차영차 걸어 올라갔다.
드르르~르르륵~~~
카트에는 안경 닦이, 자석, 오르골 등 뉴욕을 상징하는 각종 기념품 샘플과 신상이 가득 실려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사장님은 좋은 분이셨다. 보수적인 관리자들은 인턴에게 짐을 들게 하는 일도 많지만, 래리는 23번가부터 진격의 카트 행진을 시작해서 열 블록 넘게 직접 카트를 끌었다. 나는 우아하게 회사 브로셔만 들면 됐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34번가에 위치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기념품 회사다 보니 주요 거래처가 뉴욕의 유명 관광지인 점이 특히 좋았다. 지난주에 나는 관광객 중 한 명으로 이곳에 와서 매표소에 줄을 섰다. 그런데 오늘은 사장님과 카트를 끌고 와서 아이디를 보여주고 프리패스를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여전히 긴 줄을 뒤로하고, 기념품 점이 있는 꼭대기 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로 올라오면, 꼭 영화 킹콩 속 주인공을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봄날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경(왼쪽), 킹콩이 나올 것 같은 모습(오른쪽)
그렇게 나는 외근 첫날, 우리의 상품을 거래처에 홍보하는 스킬(세일즈 콜), 인벤토리 수량 체크하는 방법, 기념품들 예쁘게 전시해 놓는 노하우 등을 속성으로 배웠다.
첫날을 시작으로 래리는 나를 LGA 공항, JFK 공항, 롱아일랜드 등 다양한 곳에 데리고 다니며 현장 학습을 시켜주었는데 참 값진 경험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다양한 곳에서 어떻게 비즈니스가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려고 챙겨준 것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함께 같이 다니며 자주 쓰는 영어 회화 표현이라거나, 비즈니스 매너도 배울 수 있었고 심지어 나중에는 내 개인 이력서와 커버레터 문장 문법도 검토해 주었다. 업무 종료 후에는 추천서도 멋지게 써주었다.
편견에 대하여: 챗지피티 AI 이미지 생성 해프닝
당시 이미지를 AI로 생성하면서 웃긴 일이 있다. 나는 챗지피티 유료 버전 '챗지피티 4o'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은 기능이 좋다. 하지만 생성형 이미지 기능은 아직 약한 것 같다.
나는 명령어(프롬프트) 중 일부를 '슈트를 입은 50대 남자 사장이 시장 트롤리를 끌고 가는 모습을 그려줄 것'을 입력했다. 하지만 챗지피티는 10차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남자 사장 손에는 결코 카트를 쥐어 주지 않았다ㅎㅎ 나의 프롬프트를 무시한 채, 그의 손에는 계속해서 서류 가방, 가죽 가방 등 사장이라는 단어와 어울릴만한 소품을 임의로 그려주었다.
반면, 시장 카트는 아이러브뉴욕 티셔츠를 입은 관광객 혹은 여자 인턴에게 붙여주었다. 나는 챗지피티에게 물어보았다. "사장은 시장 카트를 절대로 들면 안 되나요? ㅎㅎ" 챗지피티는 답 대신에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 그리곤 마침내 래리 손에 시장 카트까지는 아니지만 캐리어를 그려주었다. 위의 이미지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나 역시 출근 전 '뉴요커가 업무 중 시장 카트를?'이라는 편견을 갖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첫 출근의 값진 경험, 래리 사장님과 함께한 뉴욕 거리의 기억은 지금까지 인상깊게 남아 있다.
생성형 이미지 시행착오샷: 결코 시장 카트를 그려주지 않겠다는 챗지피티의 의지, 웃참이었다.
참조: AI 이미지 생성에 사용된 영문 입력어(프롬프트)
시장 카트를 끌고 뉴욕 한복판을 걸어가는 Larry(CEO)와 Ji(인턴)
The bustling 5th Avenue scene remains filled with happy tourists, some wearing "I love NY" T-shirts. The tourists are shown from the back, including a 20s asian woman who appears to be an intern and an American man in his 50s, with gray hair, dragging a shopping trolley bag with 4 wheels, who looks like a business executive, both smaller in scale compared to the other touri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