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지

아버지의 한 마디

by 고요의 향기

여든 중반이 되어가시는 어머니와 치매를 겪으시는 아버지가 주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먹은 사실을 잊는 것은 치매 걸린 사람이 본래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 말씀을 하실 때 아버지는 정신이 멀쩡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여보, 오늘 밥 맛 어땠어요? 잘 드셨어요?" 어머니가 웃으면서 물으시면

"보통이지"

아버지는 예전부터 보통이라는 말씀을 주로 하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렇게 맛있게 드셨으면서 보통이 뭐냐고 점수가 야박하다고 느끼시는지 곁눈질을 하시며 투박을 주셨다.

"잘 먹었으면 맛있었다고, 감사합니다 할 줄 알아야지 맨날 무슨 보통이래."


어느 날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우리 집에 모셔서 마당에 있는 보리수를 함께 따먹고는 쉼터에서 쉬고 있었다. 치매를 겪고 계시기도 하고 자세가 구부정하게 불편하신 아버지께 엄마는 그네를 타보라고 요청하셨고 아버지는 엉거주춤하면서 그네에 앉으셨다. 자세가 불편해 보이기도 했고 불안해 보이기도 해서 아버지가 그네에서 내려오고 나서도 마음이 쓰이셨는지 어머니가 다시 물으셨다.


"여보, 그네 불편하지 않았어요?"

그때에도 아버지는 늘 그러시듯

"보통이지 보통이야" 하셨고

"이 보통은 좀 괜찮은 보통이네." 하시면서 엄마는 털털하게 웃으셨다.


아버지는 요양쉼터에 오전에 가셨다가 오후에 돌아오신다. 퇴근 무렵에 잠시 친정에 들르면서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 오늘 하루는 어떠셨어요?" 하면

"보통이지, 보통이야." 하신다.

그날은 "아버지, 보통이란 게 무슨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보통이 점수 중에서 제일 좋은 점수야." 하시는 것이었다. "왜 그래요? 아버지, 제일 좋다는 말이 따로 있는데 왜 보통이 제일 좋은 점수예요?"


"보통만큼 좋은 것은 없어"


그때에도 여전히 아버지가 정신이 멀쩡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보통은 너무 좋은 일에도 마음을 머물지 말고 너무 안 좋은 일에도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주는, 오랜 세월에서 터득한 지혜의 말씀이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치매가 심해지시더라도 '보통'을 가장 좋은 점수로 여기시는 그 마음은 변치 않으실 것 같아서 그 보통을 최고로 여기시는 마음으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시리라 믿어진다.


우리 아버지도 꽤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아 오셨다. 젊은 시절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공부에 바치신 아버지가 나이 드셔서 치매를 겪으실 줄은 몰랐다. 그에 비해 젊은 시절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일에 바치신 어머니가 지금까지도 정정하신 것도 또한 치매를 겪지 않으실 만한 사연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앞으로의 인생은 그 누구도 미리 알 수 없으니 지금을 최선으로 살아가더라도 다가오는 미래의 일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일이 된 것이다.


그렇게 치매는 누구에게든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치매를 겪으면서도 젊은 날부터 공감을 잘 하면서 마음 관리를 잘 하면 착한 치매에 걸려서 도리어 안좋은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순수한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젊을 때 쓰던 마음 습관이 무의식까지 흔들정도로 남아있으면 자연스럽게 더 순수한 마음으로 치매를 앓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떤 말이더라도 평소에 자주 말해서 그 한 마디만큼은 마음속에 깊숙이 묻어두어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다가 오더라도 그 한 마디가 문득 문득 올라와 내 삶을 균형 있게 해주는 한 마디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괜찮은 일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이 순간을 든든하고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