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암환자

암 경력자의 속절 없는 주절거림

by Peach못한
암 경력자


살면서 암에 두 번 걸렸다.


"모양이 안 좋네요, 조직 검사 해 보죠."라는 말을 들은 것 두 번.


"큰 병원 가 보세요. 진료 의뢰서 써 드릴게요. "라는 안내(?) 두 번.


“암 맞네요. 안타깝지만 바뀔 가능성은 없어요. ”라는 말을 들은 것도 두 번.


내 스케줄과는 관계 없이 병원이 가능한 날로, 느린 듯 빠르게 잡히는 스케줄 두 번.


수술실에서 의사의 격려와 미소 두 번.


첫 외래 진료에서 “전이 반응이 있네요. 최종 ㅇㅇ기입니다”라는 확인사살 두 번.


처음에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 전날, 결과 들으셔야 하니까 가족들이랑 함께 오시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콩 내려 앉고 불안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 시절의 나는 20대였으니까 .

두 번째 암은 뭐... 그냥 그렇다. 생각 외로 무던한 느낌.


암 경력자이지만, 암환자라는 것을 최대한 생각 안 하며 지내려고 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으니.

건강하고 팔팔한 아줌마 마냥.


암 걸릴 것 같아


그런 나를 현실로 툭 떨어뜨리는 말이 있다.


"아, 암 걸릴 것 같아."

(옵션으로, '아'와 '암' 사이에 육두문자가 삽입될 때도 있음 / '아'는 육두문자로 대체 가능)


이제는 꽤 흔한 관용구가 되었다. 힘들고 지칠 때, 답답하거나 화가 날 때, 주변을 환기하듯 웃기는 이야기처럼 타인의 공감을 위해 툭 던지는 말.


하지만 난 왠지 이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내가 말하면 현실이 된다 (음?)

암환자가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 아주 살벌하지.


사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아, 암 걸려 디져버릴 것 같아"

라는 표현을 내 앞에서 꺼내곤 한다.
현의 자유니까.

그냥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뒤늦게 지인들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날 볼 때도 있다.

근데 뭐 어쩌겠어, 이제는 관용구가 되었는걸.


누군가에겐 말장난이지만


돌이켜 보면, 과거에도 그런 말들이 있지 않았는가.


“아, 혈압 올라.”
“뭐야 그거, 장애인 같아.”


과거의 나는 ‘장애인 같아’ 같은 표현에는 짙은 거부감이 있었지만, ‘혈압 올라’는 종종 사용했다.
저혈압이었기에, 내게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 말을 내뱉었던 젊은 날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에 불편함을 느낀 분들이 참 많았을 텐데 - 심혈관 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었던 분들, 혹은 정말 혈압 조절이 목숨과 직결되는 분들.

그런 분들에게는 마음을 후벼 파는 일이었을 텐데.


장애인 발언은 또 어떻고.

평생을 상처 받으며 사셨을 텐데.

지금은 그 표현의 유행(?) 시기가 지나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암 걸릴 것 같아.”라는 말에 나는 분명 후벼 파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그냥 듣고 넘긴다.
거기서 한 마디라도 하면 마치 자기 관리를 못 해서 암에 걸린 사람처럼 보일까 봐, 감정 조절 못 하고 트리거에 쉽게 폭발하는 사람처럼 비춰질까 봐.

그리고 이제는 꼰대 나이이기 때문에 더더욱.


부메랑


과거에 나도,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들릴 말을 생각 없이 했던 사람이었다.

그만큼 내가 저질렀던 심적 불편함을 고스란히 돌려 받는 거겠지.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있으니, 이미 '암 걸릴 것 같다' 라는 말은 널리 쓰이고 있으니, 사람들의 발언을 내가 매번 마음 쓰고 불편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 흐르듯 넘겨야지.


첫 번째 암에 걸린 이후로 질병 관련 드립(?)은 최대한 자제 하려고 노력 하는 중이다.

(내 병에 관한 셀프 드립은 혼잣말로 가끔 치지만.)

그러면서도 암 걸릴 것 같다는 유행어가 끝물에 달해 끝이 나 주길 내심 바라고는 있다.


그런데 꽤 오래 갈 것 같기는 하다.

'네가 주는 스트레스로 인해 내가 죽어 버릴 것 같아' 라는 표현을 찰지고 극단적으로 쓰기에는 이 표현이 아무래도 적합할 테니까.

'에이, 당연히 장난이지. 난 암에 걸릴 리 없어.'는 내면의 위안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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