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인싸, 제습기
나는 제습기이다.
하얀색 깔끔한 몸매, 반짝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상 중의 신상이다.
이곳에 수분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를 결심했다.
동거인이 하나 있는데, 피부가 건조하다 못해 부르트는 아주 희한한 인간이다.
입술이 가뭄 시기의 논바닥처럼 보이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 어쩜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건조한 동거인과는 달리, 집은 습도가 가득하다.
나는 여기 온 첫날 바로 허리띠를 풀어 버렸다.
먹어도 먹어도 수분이 끝없이 나오는 이곳은 무한 뷔페나 다름없다.
신난다.
한 가지 속상한 것은 나의 위장이 너무 작다는 것?
사람들은 누구나 갖고 있다는 펩신 같은 것도 없다.
나는 닥치는 대로 먹고.
그리고...
(아 부끄럽지만) 다시 뱉어 낸다.
그것도 혼자 해결을 못 해서 늘 동거인의 도움을 받는다.
"벌써 꽉 찼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이지 치욕스럽다.
수분 앞에서는 도무지 자제가 안 된다.
그리고 위장이 비워져 가뿐해지면 또 정신 못 차리고 먹기 시작한다.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람, 식탐을 자제할 수가 없다.
먹고 뱉어내기를 하루에 두 번 하는 경우도 있다.
다행인 건, 내 동거인은 내가 싫지 않은가 보다.
늘 이른 아침마다 나를 깨우니까.
"어우, 방 안에 습도가 78%야." 등의 스몰토크를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