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건 무직자건, 애엄마건 미혼이건, 배움에 있어 진리는, 고군분투
영어를 주로 쓰는 국가에서 체류를 시작한 지 딱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영어능력향상을 주안점으로 둔다면 직장이나 학교 등 특정 집단에 속한 경우 가장 능률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외딴섬 둥둥 떠있는 주부의 신분으로 이곳에 와있는 데다 거주지와 무관한, 아싸라는 특수한 정체성까지 갖추고 있다. 영어로의 노출이 가능하다는 거주지의 이점을 통한 효익을 누리려면 의지를 내어야 하고, 노출되지 않으려고 마음먹으면 한 없이 한국에 있는 것보다 더 한국처럼 생활할 수 있는 상황. 앞으로의 비전과 목표를 고민하기 전에 지난 10개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나, 회고하는 시간을 우선적으로 가진 후 나의 현주소도 간단하게 체크업 해보기로 하였다.
일단 처음 무방비 상태로 주재원 아내의 신분으로 거주를 시작한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들 등교시키고 한국인 학부형들과 브런치 모임을 갖는, 대학 막 학기에 취업 확정 후 직장생활을 근 십 년째 해온 나로서는 일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유형의 커뮤니티 속 나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 한 두 달은 이 신선하면서도 생경한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 며칠 혼자 집에 있다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석사 수료 중인, 국외 거주 경험을 다수 보유한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야 해외 생활 어떻게 시작하면 돼?(징징)” 똑소리 나는 내 친구는 여러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었는데, 일단 외국인 친구들에게 무조건 만나자고 하고 보라는 것이었다. “언니, 언니가 처음 그 나라에 간 사람이니까 먼저 생활하고 있던 사람에게 그냥 무조건 들이대. 그러면 언니랑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언니는 그 나라에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갖게 될 거야. 아이 영어실력과 언니의 적응을 위해서 같은 반 친구 몇 명한테 같이 놀자고 연락해 봐. 처음에만 어렵지 내가 아쉬운 사람이란 걸 인정하면 할 만 해”. 한국에서도 낯가림이 심해서 먼저 인사하는 것도 어렵게 느끼던 나이건만, 너무 어려운 걸 요구하는 것 아냐? 싶기는커녕, 오래간만에 회사 안 가는 이 찰나 같은 시기에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못할 게 뭔가, 친구말에 십분 동의가 되었다. 마침 알파벳도 채 익히지 못한 채 국제학교에 던져진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이 고민되기도 했던 참이었고. 아이에게 반에서 좋아하는 친구 두 명의 이름을 대보라고 한 뒤 반 왓츠앱방을 뒤져 알아낸 그 아이들의 엄마의 연락처로 각각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우리 아이가 너의 아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데 플레이 데이트 할래? “ 승낙해 줄까? 여기 바이브 이거 맞아? 고민하며 용기 내어 접촉한 두 아이의 엄마는 지금 내 아부다비 생활에서 제일 빼놓을 수 없는 두 친구가 되었다. ‘아이 플레이데이트 때 써먹을 영어 회화’를 검색하던 나는 이제 이 친구들을 만나면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앉은자리에서 수다를 떨다 오곤 한다.
그리고 그즈음 현지 영어학원도 등록했다. 처음 레벨 테스트를 했을 때 선생님은 Upper Intermediate 반이나 Intermediate 반 중 골라서 가면 된다고 결론을 내주었는데, 나는 고민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레벨 테스트는 한국인이 제일 잘하는 사지선다 문법 문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험을 잘 본 것이지 내가 제일 높은 반이 갈 실력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반 즈음에는 윗 반으로 올라갔고, 그렇게 총 세 달 동안 20회를 갔으니까 한 주에 한 번 내지 두 번 수강한 꼴이다.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다른 수강생들이 대체로 나보다 유창하게 발화한다고 느꼈지만 수업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다들 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니 전에는 못할 것만 같은 발표도 그럭저럭 할 만했다. 수강을 연장하지 않은 이유는 CS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지 수업 자체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기에 지금 수강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다.
과거 나의 영어스탯은 요약이 매우 용이하다. 토종 한국인 그 잡채. 과거 수능 영어 만점. 공부안하고 냅다 시험장 가서 쳐보니 토익은 920 토익스피킹은 레벨6. 외국여행 시 길 찾기 호텔 문의 식당 주문 가능. 나머지 스몰토크 안 사요 안 사. 현재 사정은 조금 나아졌나 지금 곰곰이 되짚어 보니 확실히 생활영어는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 같고 외국인과 단둘이 말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러면 내가 그만큼 영어를 잘하게 되었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영어로 왓츠앱 메시지를 보낼 때 내 의사표현을 전달할 수 있는 수준, 1:1로 만나면 80% 정도는 이해하고 주도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수준. 그렇지만 미드를 보면 거의 반도 못 알아먹는 수준, 다수의 청자를 두고 화자가 영어로 발화할 때 역시 대체 뭐라는 거야 싶은 수준. 그 정도가 지금의 내 수준이다. 나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좋은 편이라고 자평해 왔기 때문에 해외에 살면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영어실력이 쑥쑥 자라날 줄만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못해서 갈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겠지. 잘하면 제목이 ‘해외 거주자 영어공부 꿀팁 3가지만 해보세요’ 이랬겠지. 다음 글에는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한 내용에 대해 다뤄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