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이다. 한국 회사에서만 일하다가 외국계 회사 그것도 한국에 처음 시장 진출을 노리는 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업무를 배울 곳이라고는 미국과 유럽의 본사 엔지니어들 뿐이던 매일이 막막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위스와 독일에서 회사 전체 제품을 대상으로 한 로드맵 세션 및 교육 콘퍼런스가 일주일간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도 나를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곧바로 한국 지사장에게 "저 다음 달에 유럽지사로 가야겠다며"며 대뜸 들이댔다.
지금 생각하면 지사장이나 나보다 시니어인 이사님들과 함께 가자고 해봤어도 좋았을 텐데, 그때는 이 회사에서 나만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분들은 관광 출장이 될게 뻔하다며 말도 꺼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나는 '윗분'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나 보다.
아무튼 그렇게 호기롭게 혼자서 유럽행 티켓을 끊고 일주일을 독일과 스위스의 사무실과 콘퍼런스장에서 보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정말 이를 악 물고 결심했다.
"나!! 한국 가면 반. 드. 시 영어 공부 제대로 다시 한다"
나름 회사 업무를 영어로도 잘 처리하고 영어로 하는 교육 정도는 당연히 다 알아먹는다고 생각했던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콘퍼런스에서 발표자가 설명하는 내용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정말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엑센트, 딱딱한 영국 발음들이 섞인 콘퍼런스장은 나에게 말그대로 카오스였다.
한국에서는 혼자 간 데다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본사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하루 6시간 가까이 되는 교육과 콘퍼런스장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집중해서 들어보려 애쓰다가도 들리지 않으니 금세 주의가 흐트러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 10년도 더 된 그때의 결심을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 그 일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나보다. 하지만 영어를 다시 하겠다는 그 결심은 한국에 오고 나서 일주일쯤 되자 희미해졌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또 다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몇 번 더 반복했던 것 같다.
우리는 왜 영어공부를 무슨 새해 결심 단골손님 마냥 대하는 걸까? 왜 매번 시도했다가 다시 놨다가 다시 또 해야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길 반복하는 걸까?
10년 넘는 기간을 돌이켜본 내 경험 그리고 주변인들을 분석해 보니,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 번째, 절박하지 않다.
두 번째, 티 나지 않는다.
하나씩 보자.
절박하지 않다.
다음 달에 해외여행이나 출장이 계획되어 있다면 한 동안 영어 회화 공부 좀 한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더 굳세게 다짐한다. "아, 한국 가면 정말 영어 공부 좀 제대로 해야지". 해외여행이나 출장에서 알아듣지 못했던 난감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영어 공부에 대한 의지를 다짐하는 게 귀국행 비행기에서의 루틴이다.
영어 글을 못 읽는다 한들, 우리에게는 파파고가 있고 구글번역기가 있으며, 심지어 요약까지 해주는 AI가 있다. 재미있는 책이나 영상도 마찬가지다. 이제 영어는 배울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다.
당장 영어 못한다고 굶어 죽지도 않는다. 한글 간판과 한국말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 대부분은 영어가 절박한 경우는 잘 없다. 한국 땅은 내 영어 공부 의지를 무력화하기에 충분조건을 갖춘 곳이다. 새해 계획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영어 공부임과 동시에 생업이 바빠지면 제일 먼저 놓게 되는 것 또한 영어 공부다.
티 나지 않는다.
자격증이나 시험은 내가 거쳐야 할 또는 당도해야 할 지점이 분명하다. 중간고사는 언제 있고, 시험을 위해서는 어떤 과목을 어떤 교재로 공부해야 하며, 시험 범위는 어디서 어디까지 인지 명확하게 주어진다. 자격증이나 승진 시험도 비슷하다. 그래서 힘들고 지치더라도 끝까지 힘내서 갈 에너지를 중간중간에 얻을 수 있다.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는 토익이나 토플과 같은 시험을 목적으로 공부한다면 모를까 ‘업무에서 써먹을 실제 영어'를 공부하는 대다수의 경우 가로등 없는 밤길을 걷는 기분이다. 딱히 정해진 정답 같은 공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3개월 만에 영어가 되게 해 준다던가 하다 안되면 환불해 준다는 마케팅 광고가 오히려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데다가 이 길이 맞는지도 잘 보이지 않는, 이 성취감 결여가 영어 공부를 손 놓게 만드는 큰 요인 중 하나다.
이 외에도 영어공부를 지속하기 힘든 요인은 각자 개인적 성향에 따라 더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 저 2가지가 대부분 우리의 공통적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영어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글은 다른 글에서 나의 견해를 피력해보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