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2년 1개월 그 이후
나는 오늘 아침 군산에서 전주로 왔다. 한국은 크기가 작고 도시 간 연결이 잘 되어서 항상 차편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군산에서 전주로 가는 기차는 중간에 익산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군산에서 익산까지 20분. 20분 다음 차편을 기다리다가, 익산에서 전주까지 10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탓에 시간을 버린다거나 아까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영국에서 해왔던 그 수많은 기차 환승이 떠오르며 그리운 마음이 생겨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노동자의 날 방문한 군산은 어떤 면에서 참 익숙했다. 일제강점기에 주요 항구 도시였다는 군산은 바다와 인접해 있었고, 도시 전체가 평지라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런 풍경들 사이로 낮은 주택들이 - 일본식 가옥과도 유사한 - 줄지어 있었고, 조금씩 내리는 비와 흐린 하늘이 사이사이를 메꾸고 있었다. “영국은 맨날 이런 날씨인데!”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이 정도는 상관없다는 듯이 내가 얘기했다. 평지, 흐린 날씨, 낮은 인구 밀도, 바람, 녹지, 그리고 바다는 나에게 영국의 풍경을 떠올리기에 너무 적합한 조건이었다. 이곳에 공기업에 취직한 사촌이 없었더라면 가볼 생각도 못했을 텐데, 새삼 그의 초대가 너무나 감사하게 늦었다.
비바람이 부는 와중에 굳이 바다를 따라 걷다가 카페를 가자는 낭만을 가지는 우리는 바지단이 다 젖어가고 이심당에서 빵을 사고 받은 종이 가방이 쭈글거리는 것도 모른 채 잿빛의 하늘을 보며 걸었다. 그러다가 여행자의 행운이랄까, 군산 로컬 비어를 파는 큰 창고형 브루어리를 발견했고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구경하자며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우리에게 다음 커피는 없었다. 비가 내리는 바다를 보며 마시는 에일 맥주만 존재했을 뿐. 순간 내가 리버풀 해안가의 펍에 왔다 싶을 정도의 착각이 들었다.
영국이 생각나는 도시에서 사촌과 나의 영국 살이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내가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도 10개월이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오기 싫다고, 한국 여름을 최악이라고 투정 부렸는데 어느새 한국 땅을 밟자마자 냉면을 먹었고, 이사를 가고, 회사 부서를 옮기고 지금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영국보다 훨씬 빠르게 흘려갔다. 마치 내가 이곳을 떠나기라도 했었는지 의문이 들정도로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나의 영어에 남아있는 영국 억양을 사람들이 알아챌 때마다, 영국에서의 삶을 얘기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그곳은 어땠어? 어디가 더 좋아? 또 가고 싶어? 좋았다. 둘 다 좋다. 다시 가고 싶다.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게 납작 눌러서 들려주곤 했지만 사실을 훨씬 복잡한 감정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영국에서 불만이 많았고, 외로웠고, 안전에 대해 신경 썼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있었고, 제도적인 제약이 있었다. 그렇지만 다양한 삶을 보았고, 더 많이 도전했고, 건강한 삶을 살았고, 자유로웠다. 한국에서는 이런 장단점이 거의 딱 반대라는 것이 재밌다. 그렇게 때문에 이제는 알고 선택해야 하고,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한 천국이 좋은지 도파민 터지는 지옥이 좋은지.
사촌은 내가 영국에 다녀온 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지 궁금해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궁금했다. 시간, 돈, 노력을 들여 영국 살이를 하고 그 경험으로 나는 성장했나?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데 영국 문화가 큰 요소라는 것은 확실하다. 영국식 억양이 배어있는 것, 영국의 다양한 지역을 아는 것, 그곳에 교류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은 현재 나에게 큰 자산이다. 그리고 단순히 해외에 잠깐 여행 가거나 공부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서 부대끼며 살고 돈을 벌어본 건 좋은 경험이었다.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살면서 주류의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타인을 마주할 때 이러한 당사자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면적인 성장도 있다.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나, 그리고 환경을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한 번에 얻지 못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기회들이 온다는 것. 다양한 답답함과 어이없음, 불합리함을 겪으며 오히려 집착하지 않는, 조금은 담담한 내면을 향해 한 걸음씩 가고 있다.
“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까?” 이렇게 묻는 사촌에게 나는 말했다. “네가 지금 그 경험을 하고 있어서 그래.” 나는 애석하게도 다 지나고 나면 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하는 그 중심에서도 그다음을 생각하느라,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그게 좋은 지 모른다. 그러다가 이렇게, 10개월이 지나고 나면 ’ 그때 영국 살이가 참 좋았는데’ 하게 된다. 주거, 연애, 직장 문제로 항상 불만이 많은 지금의 나도, 다시 해외에 가게 되면 ’ 그때 한국 돌아왔을 때 참 좋았는데’라고 지금을 되돌아보게 될까?
이런 답답한 나랑 사는 것도 참 쉽지 않지. 일단 고민하기 전에 오늘의 화장한 전주를 즐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