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게 나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May 16. 2024

지금은 충전 중입니다.

몇 년 전, 건강이 최악으로 악화되고 마음도 병이 들어서 일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휴직을 결심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남편이 있다는 든든함도 있었지만,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너덜너덜해진 채로 버티다가, 생존의 의욕 자체가 사라져 버린 때문도 있었다.


   죽을 것 같아서 살기 위해 쉼을 선택했지만, 사회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휴식을 누릴 기회였다. 허투루 보내기 싫어 제대로 쉬기 위해 다양한 계획들을 세웠었다. 먼저, 좋아하는 바다와 숲과 같은 거대한 자연 속에서 잃어버린 나의 생명력을 다시 찾고 싶었다. 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무엇보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몇 가지의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휴직원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휴직에 들어가기 2주 전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쳤다. 덕분에 나의 모든 계획은 백지가 되었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텅 빈 이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한 글쓰기 모임의 모집공고를 보았다. 평소에는 거리 때문에 마음은 있지만 참여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개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염병은 자유를 제한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계속 글을 썼고 단 한 번도 글쓰기를 멈추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으로 앞뒤 없이 써 내려가던 글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마구잡이로 쓰던 글에 체계가 생기고, 하고 싶은 말을 정돈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갔다.


   그때부터 꼬박 4년 동안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글을 써왔다. 때로는 나 자신을 깊이 탐구하기도 하고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놓아 흘려보내기도 했다. 뭐라도 붙잡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대면하고 오롯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피폐해진 마음에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휴직기간 내내 다른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감 없던 나의 글을 읽어주고 다정한 합평을 들려주는 분들 덕분에 위로를 얻었다. 격려를 힘입어 어떤 때는 사회와 세상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글쓰기는 나를 다시 살게 해 주었다.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내고 비로소 나다움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동안 묵혀두었던 수많은 말들이 글이 되어 나왔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득 차 있던 언어의 곳간이 텅 비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걱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해 서성이던 마음도 평온함을 찾았다.


   요즘 나는 그 빈 공간에 여러 가지 것들을 채워보고 있다. 못 읽었던 책도 읽고, 미뤄두었던 문화생활도 하고, 낯선 동호회에 가입하여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준비하는 등 내게 도움이 되는 기쁨과 즐거움을 채우기 위해 조금씩 노력 중이다. 지인들과의 여행도 여러 차례 계획 중이다.


   인생은 불확실하고 인간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존재이기에 두려웠는데 요즘은 그 사실이 점점 재밌어진다. 이렇게 시도하는 것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지만, 빛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면 좋겠다. 바로 지금! 나는 어떤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나다움을 충전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연하지 않기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