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드디어 돈을 벌어 잠깐의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엔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었고, 그보다 더 이전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던 기간이 길었다. 여행을 가는 것은 내게 언제나 로망이었지만 떠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몇 년을 결심만 하다가 포기했지만, 이제는 미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홀로 떠나는 나의 첫 해외여행은 도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에 일본어를 배운 것만 종합해도 5년인 데다가, 한참 일본드라마에 빠져 있던 시기라 용감하게 도전했다. 하지만 도쿄에 가서 깨달았던 건 내 일어는 일본어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몇 분의 선량한 사람들 덕분에 3박 4일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혼자서 제주도도 가고 오사카도 여러 번 갔었다. 굳이 도쿄에는 다시 갈 필요를 못 느끼다가 최근에 거부할 수 없는, 반드시 가야만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내가 애정하는 해리포터로 만들어진 스튜디오가 런던, 미국 올랜도와 LA, 싱가포르에 이어 가장 최근에 도쿄에 생긴 것이다. 그렇게 3년 전부터 도쿄앓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해리포터 스튜디오 앓이가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한 런던이나 미국보다, 도쿄는 접근성과 좋고 비용부담도 적어 내게 뿌리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었다.
재작년에 남편과 오사카에 가서 유니버셜 스튜디오 내의 해리포터 어트랙션과 호그스미드, 다이애건 앨리를 본뜬 마을, 호그와트 성을 경험해 보면서 욕심은 점점 더 커졌고, 그렇게 나는 무작정 도쿄행 비행기를 끊었다. 가장 중요한 일정은 오직 하나, 해리포터 스튜디오 방문하기에 철저히 맞추어져 있다. 목적지로 이동하기 좋은 곳에 숙소를 잡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최단거리도 파악해 두었다.
남은 하루의 시간에는 지난번에 가려다가 못 간 무라카미하루키 도서관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미리 일정울 짜고 동선을 체크하고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한 이동거리와 시간도 계산해서 적어둔다. 반나절은 도쿄에 특별한 강아지용품 숍이 있다고 해서 들려보기로 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기상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해서 특별히 다른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사실상 2일간의 컴팩트한 일정이다. 모든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첫날 비행기 문제로 공항에서 너무 장시간 고생을 해서인지, 미칠 듯이 피곤한데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자려고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눈은 점점 말똥말똥해져만 갔다. 학기말부터 지쳐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던 머리에, 갑자기 온갖 새로운 수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생각들에 결국 잠들기를 포기했다.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장에 써서 정리해 가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5시였다. 미리 알람을 맞춰둔 시간은 6시, 잘못하다간 둘째 날 일정을 모두 망치게 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리 준비해 둔 알람은 끄고 오늘의 일정을 위한 아침준비를 지금 당장 시작하기로 한다. 한숨도 안 잤지만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둘째 날 착장을 세팅해 두고 화장부터 하기로 했다. 너무 새벽이라 스탠드만 켜 두고 두들겼더니 왠지 점점 화장이 진해지는 것 같다.
어제 미리 사둔 편의점 샌드위치와 푸딩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6시가 되자마자 방 안에 환히 불을 밝히고 화장이 너무 과하진 않은지 한번 더 점검했다. 연박이지만 방 청소를 요청했기에, 마치 퇴실하는 것처럼 캐리어에 깔끔하게 짐을 정리해 두고 나서야 출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초행길이고 밖도 아직 어둑어둑해서, 미리 도쿄 지하철 패스도 끊고 노선도도 찾아야 했기에 서둘러 호텔을 나섰다.
해리포터 스튜디오가 있는 도시마엔 역까지 가려면 이케부쿠로 역에서 SI 세이부 이케부쿠로 선을 타야 한다. 도쿄 지하철에는 워낙 다양한 노선이 존재하고, 우리나라 지하철과는 다르게 각 노선을 운항하는 회사별로 이용가능한 티켓도 다 다르다. 이 체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면 지하철에서만 몇 시간은 거뜬히 헤맬 정도로 복잡하다랄까. 준비해 간 패스는 도쿄메트로에서만 사용가능해서 발권조차 할 수 없었다. 대신 구간 요금을 지불하고 목적지까지 갈 티켓을 끊었다. 그다음엔 역시나 지하철 노선을 찾는 것이 가장 복잡한 일이었다. 여러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내가 타야 할 열차 플랫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헤매긴 했지만 예정보다 1시간 일찍 출발한 덕분에 다행히 늦지 않게 전차에 오를 수 있었다. 목적지까지는 15분이 소요된다. 예쁜 레드 컬러로 장식된 도시마엔 역은 아담하고 예뻤다. 해리포터 스튜디오 입장 예약은 9시 30분이고, 예약시간 1시간 전부터 입장가능하다. 도시마엔 역 도착시간은 7시 30분. 미세먼지가 섞인 칼바람이 몸을 덮쳤다. 1시간 동안 이 바람을 맞을 순 없으니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역 앞에 익숙한 이름의 도토루 커피가 보였다. 오! 따뜻한 모닝음료라도 한 잔 하며 기다리면 되겠다.
아직 다른 손님도 없길래 오픈 시간을 확인해 보니 7시부터다! 럭키!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도토루 카페로 들어서면서 메뉴를 스캔하다 보니 따끈한 음료가 간절히 당긴다. 커피 대신 말차라테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따뜻한 카페 안에서 뜨끈한 말차라테를 마시니, 그제야 밀려오는 졸음에 깜짝 놀랐다. 그때 문득 어젯밤 잠 못 이룬 게 방 온도가 안 맞아서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도토루 커피에서 한 시간 정도 쉬면서 졸음과 피로를 살짝 가시게 하고 체력을 보충했다. 휴대용 파우치를 꺼내 느슨해진 화장도 고치고, 충전된 기분으로 카페를 나섰다.
8시 20분, 도토루 커피에서 나와 해리포터 스튜디오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찬바람은 여전했지만 몸이 살짝 데워진 덕분에 견디기가 한결 수월했다. 무엇보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실내 관람이라 이제 칼바람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스튜디오 부지 앞을 막고 있던 철문 사이로 해리의 안경, 볼드모트의 뱀 내기니, 해리의 수호동물인 수사슴 페트로누스를 비롯한 여러 수호동물 조각들이 펼쳐진 정원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본격적인 스튜디오 관람을 위한 입장 줄에 섰을 땐, 해리포터 속 각종 의상과 소품으로 한껏 꾸민 사람들을 보고 내가 정말 꿈에 그리던 장소에 와 있구나 하는 생생한 실감이 들었다. 그제야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막 떨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감 속에서 드디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눈앞에 펼쳐질 마법 같은 세상을 온몸으로 느낄 차례다. 내 오랜 소망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드디어 입장 시작! 지난 3년의 기다림, 그리고 멀고 험난했던 이틀 간의 여정. 그 모든 시간과 여정을 통과해 바로 지금, 여기에 서 있다. 나는 이제 해리포터 속 진짜 마법의 세계로 들어간다. 알로호모라!
#여행2일차_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