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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Mar 29. 2021

나에게 말 걸기


“왜 그런 마음이 들었어?, 결국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매일 밤, 나는 나에게 말을 건다. 하루가 마무리된 저녁이면 책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꺼낸다. 스피커에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방 안에는 스탠드 불빛만이 책상 위를 비춘다. 펜을 들기 전 고요히 호흡을 고르며 오늘 하루를 영화 재생 버튼을 누르듯 눈을 감고 회상한다. 오늘 하루 중 어떤 순간에 마음의 파동이 일어났었던가, 누군가의 말에 기습적으로 어떤 감정이 흘렀던가, 돋보기로 세밀하게 내 마음을 살핀다.


그러다 오늘 카톡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생각났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던 중 한 친구가 결혼 준비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서둘러 ‘축하해!’, ‘결혼 전에 우리 만나는 것도 잊지 마.’라며 훈훈한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 대화가 어째서 다시 생각난 것일까.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하고 내가 느낀 감정을 글로 쓴다.


‘친구의 결혼 소식에 기뻤다. 그녀의 고민 시간을 알기에 축하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소식에 마음이 쓰이는 것일까. 혹시 이제 내 주변 친구들이 거의 다 결혼을 한 것에 두려운 것일까. 이 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잠시 숨을 고른 뒤 내가 나에게 묻고 쓴다.

‘왜 축하하는 감정 말고도 다른 감정이 생기는 걸까? 지금 너의 기분은 어때?’

‘난 평생 혼자 살게 될까 무서워. 내 주변 사람들은 짝이 있는데 나만 혼자여도 괜찮을까.’

‘혼자인 게 싫은 거야?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사실 혼자 지내는 삶의 좋은 점도 있어. 다만 이럴 때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슬퍼지는 내가 싫어.’

‘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보단 내 생활을 더 집중하며 살고 싶어. 그리고 타인의 기쁜 일에 온전하게 축복해주고 싶어! 더불어 내게도 좋은 인연이 생길 거야.’



공개하기 민망할 만큼 나의 일기장은 나만의 은밀한 대화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일기장을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결국 내 마음속 불안과 공포는 이런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고작 몇 줄의 글을 썼을 뿐인데 감정의 높낮이가 바뀐다. 삶이 드라마 대본처럼 느껴진다. 상황마다 튀어나오는 감정들이 있음이 놀랍다. 내가 낯설게 느끼는 이 감정들은 사실 내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일 테다.


2년 전 <줄리아 카메론-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접했다. ‘나를 위한 창조성 워크숍’이란 부제가 달린 책이었다. 마음이 맞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12주간 워크숍을 진행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닝 페이지’였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노트 3페이지에 걸쳐 생각의 흐름대로 적는 것이었다. 생각이 정돈되지 못한 아침에 적는 글이다 보니 마음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몇 주간은 모닝 페이지를 읽지 않는 미션도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읽게 된 모닝 페이지는 놀라웠다. 거의 비슷한 걱정과 불안을 매일 아침 쏟아내고 있었다. 내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종종 머릿속이 복잡한 날엔 모닝 페이지를 쓰며 나를 살피곤 했다.


아침엔 모닝 페이지, 저녁엔 다이어리와 감사 일기까지 다양한 기록을 하게 되었다. 기록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을 한 번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후지모토 사키코-돈의 신에게 사랑받는 3줄의 마법>이란 책을 읽으며 일기장에 도입해보기로 했다. 책은 자신의 감정을 3줄로 정리하며 자신의 설정을 바꾸어가도록 돕는 책이었다. 곧바로 나의 일기장 한 페이지에는 감사일기와 오늘 인상 깊었던 책 속 밑줄을 적고, 다음 페이지에는 나와 대화하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어느덧 4달 차에 접어들었다.



10년 넘게 다이어리를 써왔지만, 지금처럼 솔직하게 내 감정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꽤 힘들었다. 솔직한 감정을 들여다보기가 두려워 일기를 쓰지 않은 날도 있었고, 비슷한 고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어떤 기분을 느꼈어도, 어떤 감정의 빠졌어도 모두 나임을. 결국 나는 나에게만은 솔직하기로 했다. 남과 비교하는 나를 이해하고, 내 불안과 두려움도 알아주기로 했다. 나만이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매일 밤 나와 대화하며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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