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과학 자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Jul 03. 2020

<산부인과의 혁명 – 무통분만, 산욕열>

“한 권으로 읽는 의학콘서트” 中

<산부인과의 혁명 – 무통분만, 산욕열>
“한 권으로 읽는 의학콘서트” 中

                                          해 헌 (海 軒)

오늘도 의학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책을 한번 더 살펴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젊은 의학을 꾸밈하는 모임”인데 서양에서 출간된 의학과 관련된
수많은 저서와 참고자료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찬 책을 만들었습니다. 여러 번의 전문가 피드백 등을 받느라 3년 6개월의
집필 기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늘은 인류의 오랜 문제였던 분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다.

=================================================================

★ 무통분만 시대의 시작

윌리엄 모턴(1819-1868)이 에틸에테르로 무통 발치술을 한 후 의학계에는 큰 파란이
일었고, 의사들은 유리병에 에틸에테르를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수술이 필요한 때
손수건에 조금씩 적셔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마취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마스크를 발명하기도 했다.
에틸에테르는 외과수술에 있어서 일대의 혁명을 가져왔고 수술 환자들은 공포와 고통
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마취제가 없던 시절에는 외과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보며
“통증은 질병에 반드시 수반되도록 신이 안배할 것이다.”라며 자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에든버러 대학의 산과 주임교수였던 제임스 영 심슨(1811-1870)은 에틸에테르로
무통 외과수술이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분만에 에틸에테르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당시 심슨의 환자 중에 골반기형으로 3일 동안 산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태아를 분쇄
시키는 수술을 한 후에 목숨을 구한 여성이 있었다. 1847년 이 여성은 다시 출산을
앞두고 심슨에게 도움을 청했다. 심슨은 산모를 마취한 상태에서 태아를 무사히 분만
했다. 이 같은 사실에 고무된 그는 후에 몇 차례 더 무통분만을 시도해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에틸에테르는 냄새가 역하고 기침을 유발시켰으며 특히 인화성이 강해 사용할
때 세심한 주의를 요했다. 당시에는 아직 촛불을 조명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불을 지펴
난방을 하고 있었으므로 화재가 일어날 위험성이 매우 높았다. 이 때문에 심슨은
에틸에테르보다 더 안전한 마취제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후 무해한 화학물질 후보 중 클로르포름을 실험할 참이었고
1847년 11월 심슨은 친구들을 불러 저녁에 파티를 열었다. 클로르포름은 향긋한
냄새 때문에 저녁 연회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클로르포름에
취한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심슨도 그랬다.
그리고 그는 깨어나는 순간 속으로 외쳤다.
“야, 드디어 에틸에테르를 대체할 것을 찾았다.!”

클로르포름은 에틸에테르처럼 역한 냄새나 기침을 유발하는 작용도 없었고 마취효과는
더 뛰어나고 사용도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심슨이 클로르포름을 무통분만에 사용
하기 시작하면서 환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진료소 내 두 칸의 응접실은 산모들로
넘쳐났고 복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욱 많았다.

그러나 무통분만은 뜻하지 않게 종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성직자들은
해산의 고통은 신이 여성에게 내린 형벌로써 여성이 반드시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종교계의 반발은 심슨을 곤란하게 했지만, 다행히 1853년 존 스노라는
의사가 빅토리아 여왕이 여덟 번째 아이인 레오폴드 왕자를 출산할 때 클로르포름을
사용하면서 무통분만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당시 여왕은 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 산모들의 구세주 – 제멜바이스

마취제의 발견으로 외과의사들은 비교적 긴 시간이 소요되는 수술도 감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수술 후 감염으로 인한 심각한 사망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 무렵 접촉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가 이루어진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현대 유행병의 아버지’라 불리는 헝가리 출신 의사 제멜바이스(1818-1876)는 병원과
의사의 청결을 주장해 산모들의 사망률을 크게 낮추었다.

1844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846년 비엔나 산과병원의 의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산모들의 사망률이 매우 높은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의 시체를
해부한 결과 일종의 전염병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는데
1847년 초 제멜바이스의 친구였던 병리학자 콜레츠카가 시체부검 도중 손가락을 베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열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큰 충격을 제멜바이스에게 주었
는데, 사망원인이 산욕열의 증세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산욕열은 의사들의 불결한 손과 불결한 산과 수술도구들에 의해 감염을 일으키는 일종의
전염성 질병이었다. 제멜바이스는 산욕열이 패혈증의 일종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산과 병실에 다음과 같은 규정을 마련했다. 산과 의사들은 산모들을 진찰하기 전에
반드시 표백가루를 용해한 물에 손을 깨끗이 씻도록 했으며 솔로 손톱사이까지 닦아내도록
하였다. 두 달 만에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다.
1850년 제멜바이스는 비엔나 의학학회에 산욕열 발생 원인과 예방법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세균감염의 인식이 없었던 당시 의사들은 자신들의 손이 질병 전염의
매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제멜바이스는 거듭 해고가 되었다.
결국 그는 극심한 정신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착란을 일으켰으며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

제멜바이스는 이론은 비단 산욕열을 정복한 데 그치지 않고 의학계에 ‘소독’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연쇄상 구균’등
화농균이 발견되고 산욕열의 발생 원인과 감염 경로가 밝혀지면서 마침내 제멜바이스
의 이론도 의학계 전반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

오늘은 <의학콘서트> 내용 중 산부인과에서의 혁명적인 변화에 대하여 알아보았
습니다.  지난 번에 무통 마취의 발견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발견으로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할 때에도 통증이 없는 것이 가능해졌지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분만의 고통에서 인간이 벗어난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습
니다.   이전에 의사들이나 목회자들은 고통이란 신이 주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의무라고 생각을 하였고, 처음 무통 분만이 가능해졌을 때 교회에서 반대가 있은
것도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의 흐름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분만할 때 사용이 된 후 반발
이 잦아들고 대세가 되게 됩니다.

마취제의 발명에도 여전히 분만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이전까지 세균의
존재를 몰랐기에 인간에게는 소독이나 살균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해부를 하다가 더러운 손으로 분만을 받기도 하고, 다른 환자 환부를 만지고 나서
수술을 하는 등 이러한 일들로 인해 산욕열도 생기고, 수많은 감염으로 환자들이
사망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감염의 위험을 낮추고 분만 때 소독의 개념을 가져온 사람은 헝가리 출신
의사 제멜바이스 였습니다.  그는 우연하게 산욕열과 상처의 감염으로 패혈증으로
죽은 사람의 증상이 똑같은 것을 발견하고, 표백 가루로 손을 씻고 환자를 보게
하자 사망율이 엄청나게 감소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의사들은 자신들의 손을 통해 감염이 일어나 환자들이 안 좋아진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멜바이스가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가
됩니다.

새로운 이론이나 새로운 학설이 정설로 자리잡기 까지는 엄청난 반발과 고난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어쨌든 제멜바이스 이후 연쇄상 구균 등이
발견이 되고 비로소 소독과 살균의 개념이 의료계에 정착하게 됩니다.

오늘도 흥미로운 의학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나 전 세계인들의 위생의 관념이 엄청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좋고 나쁜 점이 상존하는데, 코로나 이후 공기의
질이 좋아지고 자연의 훼손이 덜해진 것도 하나의 증거라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세요.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생물 노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