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루스의 교육
<군주의 거울> 김상근
--- 키루스의 교육
강 일 송
오늘은 “아포리아(Aporia)” 상황, 즉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
“길없음”, “출구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위기crisis”보다 더 심각한
상태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저자의 글이 담긴 책입니다.
저자 김상근교수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을 졸업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석사,
에모리대학교 석사,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르네상스 연구를 독보적으로 진행했고, 다양한 인문학 저서와 강연으로 명교수
이자 유명 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신과대학장을 역임하였습
니다.
김교수는 이 절망의 시대에 다시 “인문학”에서 길을 찾자고 합니다.
전쟁 중에도 고대 리더들이 손에서 놓지 않았던 고전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의 창시자 “키루스대왕”의 리더십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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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Studia humanitatis)은 실용 학문이 아닙니다.
인문학은 재화를 만드는 기술이나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멀고 긴 항해에서 마주치게 될 거친 풍랑에 대해서도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인생의 항해자에게 어떻게 노를 저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학문이
절대 아닙니다.
인문학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젓고 있던 노를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가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노를
저어 왔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우리들에게 숙였던 고개를 들고, 젓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라고 요구합니다.
인문학은 곧 “고개를 들라”는 요구입니다. 북극성이 어디 있는지, 내 인생의
좌표는 어느 곳인지,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자신을 성찰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곳을 가고 있는지 숙고하라는 요구입니다.
이런 성찰을 위해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아포리아
시대, 즉 “길없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문학의 과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절망의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곤궁한 시대를 버티게
해주던 희망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화두는 “각자도생”, 과 “헬조선” 담론입니다. 이런 절망감이 내일의 주인공인
젊은이들 사이에 더욱 팽배해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젊은이들 사이에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리더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총체적 리더십의
부재야말로 우리 시대의 질곡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틀입니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리더의 역할을 자임해온 경제계,
교육계, 그리고 종교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도 실망과 분노의 화살이 향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된 리더들에게만 모든 잘못을 돌릴 순
없습니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우리 자신이 먼저 돌이켜 반성하자는 것입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그 책망의 손가락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군주의 거울(Mirror for princes) 는 기원후 8세기, 유럽이 본격적으로
중세로 접어들던 카롤링거 왕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인문학의
리더십 교과과정 입니다. 샤를마뉴(740-814)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취임한 뒤부터 단일 국가의 개념과 이를 떠받드는 봉건제가 생겼고, 이후
인근 국가 및 지역간의 극심한 경쟁이 촉발되었습니다.
장차 일국의 장래를 책임질 왕자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의 중대성
이 대두되면서 왕자가 마땅히 본받아야할 거울과도 같은 리더십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 키루스의 교육 (Cyropaedia)
군주의 거울 장르에 속한 책 중 최고의 책이며 리더십에 대한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키루스의 교육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BC 430-355)입니다. 그는
플라톤과 함께 동문수학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는데 두 사람은 철학적으로
완전히 달랐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격동의 시대를 살았지만 혼란의 시대
속에서 각각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서양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플라톤은 아테네 근교에 플라톤
아카데미를 개교하고 제자들과 함께 심오한 토론과 깊은 사색에 빠집니다.
그러나 크세노폰은 시대의 격동과 혼란에 직접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 그리스와 페르시아라는 두 제국 사이에서 그는
스스로 경계인임을 자처했습니다.
아테네의 귀족 출신이었지만 페르시아의 용병대장으로 활약했고,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인생의 쓴 맛을 보았으며, 결국 조국 아테네로부터 추방 명령
을 받아 타지에서 비운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는 올림피아에서 홀로 추방의
쓴 잔을 마시며 험난한 시대의 원인과 참된 지도자의 모습에 대해 통찰했습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에서 최고의 군주의 거울을 제시했습니다.
키루스대왕(BC576-530)은 보잘 것 없는 소국 페르시아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캄비세스였고 어머니는 인근 대국 메디아의 공주였습니다.
메디아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열두 살 소년으로 자란 외손자가 보고 싶어서
딸과 손자를 메디아로 초청했습니다. 메디아 왕실에서 왕자 교육을 받게 한 것입
니다.
대견한 외손자를 위해 진수성찬의 만찬을 준비하였는데, 소년 키루스는 외할아버지
에게 이렇게 많은 음식을 혼자 다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고,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
하자, 그는 잔치 음식을 궁중의 시중들과 하인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너한테 주는거야, 나한테 말 타는 법을 가르쳐 주느라 정말 수고했다.”
“할아버지를 보좌한 너도 받을 자격이 있어.” 라는 식으로 시종과 하인들을 칭찬
하며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소년 키루스의 이런 관대한 행동은 모든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 있으켰습니다.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이렇게 키루스는 다른 사람과 행복을 나누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도우면서,
어떤 이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키루스는 메디아에서 지내는 동안 사냥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쟁의 기술을 익혔는데
이 시기 앗시리아의 군대가 메디아 국경을 침범하는 사건이 생겨, 메디아 왕실의
군대와 함께 파견되어 외삼촌인 키악사레스 대장을 도웁니다.
과감한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직접 나서 대승을 이끌어 낸 키루스는 메디아 군인들과
국민들의 총애를 받기 시작합니다.
키루스는 어느덧 메디아를 떠나 자신의 조국 페르시아로 돌아옵니다.
세월이 흘러 메디아를 전면 공격하려는 앗시리아에 맞서 동맹국으로 군대를 파견하
게 되는데, 총 대장으로 키루스가 나서게 됩니다.
이때 아버지 캄비세스는 아들에게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내는 방법에 대해 가르칩
니다.
이전까지는 복종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가 “복종하는 자에게 명예를 주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 처벌과 불명예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발적인 충성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지배자가 피지배가보다 더
지혜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미래의 군주가 될 아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지식”이 아니라 “지혜”라고 말합니다.
또한 지혜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군주의 지혜는 전제조건일 뿐이고,
백성들과 함께 아픔과 고난을 감내하며 백성들보다 더 인내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권력을 휘둘러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들을 피지배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섬기려고 할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크세노폰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키루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했다. 어떤 이들은 키루스가
있는 곳에서 며칠이 걸리는 거리에, 다른 이들은 몇 달씩이나 걸리는 거리에
떨어져 살았다. 그들은 키루스를 본 적이 없으며, 그들 중 일부는 앞으로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키루스의 백성이 되기를
기꺼이 원했다.“
키루스는 고대 근동의 문헌에 “왕중의 왕”으로 표기됩니다. 심지어 다른 민족
에게 배타적인 유대인들조차 키루스 대왕을 “기름 부은 자” 즉 “메시아”로 불렀
습니다. 키루스 대왕은 페르시아의 창건자로, 지금으로 말하면 이란의 “국부”
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왜 유대인들은 그를 메시아로 칭송했을까요.
유대인들은 특유의 선민사상으로 근처의 나라들 왕을 악마시하고 폄훼하는 경향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고레스 왕”으로 번역된 키루스 대왕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집단 포로 신세로 전락했을 때, 그들을 해방시켜 주고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게 해 준 왕이 바로 키루스 대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축하도록 만든 나라의 은인으로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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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길없음의 시대, 출구없음의 시대, 즉 “아포리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행동해야 하는지 그 담론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스 시대에 암울하고 막막한 상황을 표현한 아포리아가 지금 현대에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젊은이, 미래가 힘든 장년들, 백세시대에 막막한 노년들...
“미생”들이 가득한 현실입니다.
저자는 이런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해 더 빨리 노를 젓고, 더 많은 일을 하고
노력을 하는 행동을 멈추라고 합니다. 노저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인문학이라고 합니다.
인문학은 당장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지만, 하늘의 북극성과 별자리를 보고
미래의 길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내 인생의 갈 길을 잠시 멈추고서 생각하게
해줍니다.
저자는 그 탈출구를 찾기 위해 2500년 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그리스
사람들의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군주의 거울, 키루스 대왕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진정한 리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키루스 대왕은 지혜롭습니다.
자신을 위한 귀한 음식들을 기꺼이 아랫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전장에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걷고 뛰고 자며, 그들보다 앞장서 전투에 나아갑니다.
그런 리더 아래 졸장이나 졸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사기충천하여 승리해
나갑니다.
키루스를 본 적도, 앞으로 보기 힘든 먼 지역의 백성들조차 스스로 키루스의
백성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왕중의 왕이라 표현이 되며,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유대인들조차 이방인의 왕에게
“메시아”라 칭합니다. 적국이었던 그리스의 크세노폰이 그에 대한 책을 씁니다.
키루스대왕은 뭐가 달랐을까요? 제가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키루스는 지배하려고 하지 않고 피지배인과 같은 눈높이로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였고,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우리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 지도자를 가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