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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by 해헌 서재


오늘은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최근 책을 한 번 보겠습니다. 한교수의 책은 제가 두 번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 였는데, 오늘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가서,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였고, 1994년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박위를 받고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의 글은 사실 어렵습니다. 독일의 관념 철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독일어로 쓴 책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을 했으니 더욱 그러하지요. 하지만 그의 글은 알맹이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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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끄러움


매끄러움은 현재의 징표다. 오늘날 우리는 왜 매끄러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매끄러움은 미적 효과의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의 사회 전반적인 명령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긍정사회를 체현하는 것이다. 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like를 추구한다. 매끄러운 대상은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스마트폰도 매끄러움의 미학을 좇는다. LG의 스마트폰 지플렉스는 심지어 스스로 치료하는 피부로 덮여 있다. 이 피부는 상처의 흔적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한다. 말하자면 불가침의 피부다. 이 인공피부 덕분에 스마트폰은 항상 매끄러운 상태를 유지한다.


매끄러운 것은 디지털 장치들의 외관만이 아니다. 디지털 장치들을 거쳐 이루어지는 소통도 매끄럽게 다듬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주로 기분 좋은 것들 다시 말해 긍정적인 것들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Tulips,_Bilbao,_July_2010_(06).JPG "Tulips" (by Jeff Koons), Guggenheim Museum, Bilbao, Biscay, Spain, July 2010


우리 시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제프 쿤스(Jeff Koons, 1955~)는 매끄러운 표면의 대가다. 그의 작품에는 어떤 재앙도, 상처도, 깨어짐이나 갈라짐도, 심지어 봉합선도 없다. 모든 것이 부드럽고 매끈하게 이어진다. 그것은 좋아요 의 예술이다. 그의 좌우명은 “관찰자를 포옹하라”이다. 제프 쿤스는 예술이란 오로지 ‘아름다움’과 ‘기쁨’과 ‘소통’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매끄러운 조형물 앞에 서면 그것을 만지고 싶다는 ‘촉박 강박’이 생겨나고 심지어 그것을 핥고 싶은 욕망까지 일어난다.


미적 판단은 관조적인 거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매끄러움의 예술은 이 거리를 없앤다. 롤랑 바르트는 촉각이 “가장 마술적인 감각인 시각과는 반대로 여러 감각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탈신비화하는 감각“이라고 말한다. 시각은 거리를 유지하는 반면, 촉각은 거리를 제거한다. 거리 없이는 신비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매끄러운 터치스크린도 탈신비화와 전면적인 소비의 장소다. 터치스크린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을 만들어낸다.



◉ 매끄러움의 미학


아름다움의 미학은 근대의 독특한 현상이다. 근대 미학에서야 비로소 미와 숭고가 분리된다. 플라톤은 미와 숭고를 구별하지 않는다. 미는 숭고의 경지에 이를 때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다. 숭고에는 특징적인 부정성이 내재한다. 숭고는 크고 육중하고 어둡고 거칠고, 매끄럽지 않다. 숭고는 고통과 공포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을 격렬하게 운동시킨다는 점에서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에 반해 미는 마음을 이완시킨다.


근대의 미에서는 이러한 모든 부정성에서 해방된다. 미는 전적으로 긍정적인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 아름다운 것은 작고 어여쁘며, 밝고 연하다. 미각에 있어서 매끄러움에 상응하는 것은 달콤함이다. 일반적으로 달콤하다고 불리는 모든 사물들은 매끄러운 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매끄러움과 달콤함은 근원이 같다.



◉ 디지털 미


자연미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지각에 자신을 드러낸다. 자연미에 접근하려면 고통을 통하여야 한다. 자연미를 향한 갈망은 궁극적으로 존재의 다른 상태, 완전히 다른, 폭력 없는 삶의 형태를 향한 갈망이다. 디지털 미는 자연미에 대립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매끄럽다. 그것에는 어떠한 균열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내 마음에 든다 라는 것이 디지털 미의 징표다.

디지털화된 망막은 세계를 영사막과 통제 화면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디지털화된 내면성 속에서는 어떤 놀라움도 느낄 수 없다.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에 만족을 느낄 뿐이다.




오늘은 미(美)에 대한 한교수의 철학적 성찰을 한번 보았습니다. 본래 미학은 철학의 하위 개념으로 아름다움에 관한 철학이라고 여겨져왔고 예술(fine arts)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 예술과 동등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예술 중에 추한 예술도 있기 때문이지요.


미학은 18세기의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이 처음 말하였는데, 독일어 'Ästhetica'를 번역하여 미학(Aesthetics)이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전에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소개하면서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한 적도 있었습니다.


오늘 한교수는 현대의 미학, 디지털 미학, 매끄러움의 미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서 현대는 매끄러움의 미학이 주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디지털 미학도 이러한 개념에서 나오고 있는데 디지털 세상에서는 전적으로 매끄러우며 어떠한 균열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자연미, 숭고미 등이 미에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거칠고 무겁고 고통이 포함되었던 과거의 미는 현대에 와서 부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매끈하고, 부드럽고, 달콤함 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세태가 그대로 미학에도 나타나 진지하고 심도있는 것들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예를 들고 있는 현대의 대표적인 예술가가 "제프 쿤스"라고 합니다. 그의 작품을 두 개 사진을 포함해서 올렸는데, 정말 매끄럽고 촉감이 부드러워 보입니다. 제프 쿤스는 예술이란 오로지 ‘아름다움’과 ‘기쁨’과 ‘소통’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에 그의 작품이 인기가 높은 것은 현대의 대중과 그의 철학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의미이겠지요.


아름다움에 대한 시대의 정의는 매번 바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시대가 추구하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대중의 흐름을 맞추어 따라갈테니깐요. 굳이 현대의 미가 과거의 미에 비해 가볍다고 의미가 적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현대의 현상 반영이 결국 현대 예술이라는 형태로 전환되어 보여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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