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의 대문”중에서
<중용-삶의 평형을 위한 역동적인 도전> 박재희
-- “고전의 대문”중에서
강 일 송
오늘은 지난번, 박재희 교수의 새로운 책 <고전의 대문> 중에서 “중용”
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흔히 사서(四書)라 하면, 대학,논어,맹자,중용을 일컫습니다.
사서를 읽었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유교적 가치를 습득한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중 중용은 인간과 우주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다 합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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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우주의 비밀을 다루는 고전, <중용>
사서 중에서도 <중용>은 가장 늦게 읽는 책입니다. 그만큼 내용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3장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늦게 읽는 이유는 가장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며 우주론적이고 인식론
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실천적 내용을 넘어 인간 삶의 구동 원리를 설명하려고 한
흔적이 <중용>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주자는 성리학의 집대성자입니다. 기존의 철학적 사유와 논거들을 모아서
자기 나름대로 새롭게 디스플레이(display0한 것입니다. 창조(create)보다
어쩌면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 집성(display)입니다. 집대성(集大成)이란
말은 원래 <맹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다양한 것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능력, 이것을 맹자는 집대성이라 부릅
니다. 세종대왕이 가졌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입니까? 집대성입니다.
과학,문화,그리고 기술, 다양한 분야를 하나로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 다산, 원효, 주자 같은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디스플레이어들입니다. 수없이 많이 창조된 것들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중용이란 원래 <예기>라는 책의 구석에 있었습니다. 집대성을 하려고 주자
가 찾아보니 불교와 대적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불교의 근본이 무엇
입니까? 현세가 아닌 내세에서의 삶, 극락의 삶입니다. 이것에 대적할
이야기가 유교에는 없었습니다. 논어와 맹자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예기 구석에서 중용을 찾아냈습니다. 중용을 살펴보니 그동안 유교에서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던 우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용을 빼내어 퍼즐을 맞추듯이 사서에 합쳐버렸습니다. 그러니
사서는 집대성자 주자가 띄운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중용은 누가 썼을까요? 공자의 손자로 알려진 자사자(子思子)
란 사람이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의 <논어>, 맹자의 <맹자>, 자사자의 <중용>, 증자의 <대학>을 합쳐
사서라고 하고, 공자, 증자, 자사자, 맹자, 거기에 공자의 수제자로 일찍
세상을 뜬 안회까지 더불어서 오성(五聖)이라고 일컫습니다.
<중용>은 책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주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방식입니다. ‘중용적으로 산다’는 것은 한 인간이 우주가 부여한 자율
조절 장치를 통해 자신의 삶에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 순간 벌어지는 일상사에 자신의 감정을 조화롭게 표출
하는 중화(中和)의 중용, 그때그때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며 사는
시중(時中)의 중용,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영혼에 충실한 신독
(愼獨)의 중용, 등등 인간의 삶에 벌어지는 많은 상황 속에서 자기중심
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 답은 쉽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방정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용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꿰뚫는 원리입니다.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않고,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은 자기중심과 균형
을 잡고 살아가는 중용의 인생은 우주적 존재 방식을 그대로 삶에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중간이 아닌 역동적인 평형
중용을 잘못 이해하면 A와 B의 가운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쉽습
니다. 그것은 중용이 아니라 중간입니다. 중간과 중용은 다릅니다.
중용은 살아 있는 영역에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중용은 회색주의나 중간주의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평형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또한 중용은 상황을 읽어내고,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유연성의 답
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원문을 보자면
주자가 말하였다. “중(中)은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 있지 않고, 넘치
거나 모자라지 않는 것의 이름이다. 용(庸)은 평상시 언제나이다.”
중용은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 관계의 중용, 행동
의 중용, 판단의 중용 등 인간은 중용을 통해 완벽한 삶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중용은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평형성”입니다. 완벽한 자기 평형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흔히 황금비율(Golden mean)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서양 사람들이 중용
을 Golden mean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솔루션을 찾는 것, 그것이 중용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역동성”입니다. 중용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입
니다. 늘 생생하게, 다이내믹하게 살아 있는 것이 중용입니다.
세 번째는 “지속성”입니다. 즉 평형이 있고, 그 평형은 살아 있어야
하면, 살아 있는 것이 지속되는 것이 지속성의 중용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이 세 가지 원칙은 굉장히 중요하고 기억할 만한 원칙입니다.
나는 지금 가장 합당한 나의 중심을 잡고 있는가? 그 중심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나는 그런 균형 잡힌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
하는가? 중용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물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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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전의 하나인 <중용>에 대하여 한번 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중용이라고 하면 양쪽 극단이 아니라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이해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중용은 중간이 아닌 균형을 잡아가는 역동적인 평형의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유교도 종교의 하나로 생각하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것이 내세(다음 생)에 대한 이론의 빈약함이었습
니다. 이것을 주자는 간파하고 예기의 한 부분인 중용을 사서에 가져오
는 파격을 하였네요.
<중용>에는 우주의 원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며, 한 극단으로 치우침이 없는 균형의 철학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중용을 황금비율을 의미하는 'Golden Mean'으로 번역하였
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네요. 사고와 감정의 조화로운 황금비율을 일상에서
찾도록 애써 보아야겠습니다.
과유불급도 비슷한 의미일 것입니다.
조화롭고 균형 잡힌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