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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6. 2016

<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강  일  송        


오늘 소개할 책은  “총,균,쇠” 라는 제목의 책인데,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1937년 보스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소아질환의 유전학 분야를 전공한 의사였고, 어머니는 교사이자 언어학자였습니다. 하버드대학을 나오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생리학 박사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UCLA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생리학,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등 다방면으로 연구를 하였으며, “제3의 침팬지”, “문명의 붕괴” 등 베스트셀러를 저술하기도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류의 발달, 역사, 문화행태 등에 관심이 있던 중, 책을 보면서 저자의 통시적인 안목과 폭넓은 지식에 매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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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번 들여다 보면, 1972년 생태학자로서 뉴기니를 방문하여 조류의 진화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얄리라는 젊고 똑똑한 젊은이를 만나게 됩니다, 얄리는 왜 자기들은 백인에 비하여 발전이 늦고 식민지까지 되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였고, 저자는 이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다른 속도로 문명을 발전시켰는가에 대한 해답을 20년이 지난 다음에 이 책을 통해서 답하고 있습니다.    


얄리가 던진 질문이 결국 궁극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화두입니다.  왜 세계는 문명의 차원에서 불평등이 존재하는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주의가 널리 암묵적으로 팽배해 왔지만, 저자는 오히려 뉴기니인들과 정글에 들어갔을 때 정글 속을 따라가거나 간단한 잠자리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였지만, 뉴기니인들은 수백 종 이상의 식물과 그들의 쓰임을 알고 있는 등 , 환경의 차이일 뿐이지 지능의 차이에 대한 증거는 없다고 역설합니다.    


우리의 역사가 길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반만년 역사라고 하는데, 700만년과 5천년을 비교해 본다면 700만년은 우리의 기나긴 역사인 5천년이 1400번 사이클을 돈 시기이고, 불과 인류가 문명을 일으킨 것은 2사이클전의 일입니다. 2사이클 전 그 긴 시간동안 인간은 동굴에서 생활하며 수렵채취를 해왔던 것이지요.

인간이 700만년 대부분을 야생동물 사냥이나 야생식물을 채집하는 것만으로 생존해오다가

비로소 11000년 이전에야 야생동물과 야생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하여 식량생산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이는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는 곧 정착생활을 하게 됨을 의미하고, 농경을 하게 되면서 잉여 식량을 발생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채집과 사냥을 하였던 것에서 탈피하여 잉여 식량으로 전문가 집단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왕과 관료, 사제, 전문군인, 금속기술자, 필경사 등이 생겨 정복전쟁에서 절대 우위를 가지게 됩니다.  가축화된 대형포유류는 19세기 철도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육상 운송의 주요 수단이 되었고, 유라시아의 말은 탱크가 나오기 전 현대의 탱크나 지프에 필적하는 군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고기, 젖, 비료를 제공하고, 쟁기를 끌어 불모지를 경작 가능하게 하여 식량생산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식량생산의 극대화는 인구의 증대를 가져와 조밀한 인구를 가진 집단이 되게 하였습니다.

인구수가 많다는 것은 곧 잠재적인 발명가의 수가 많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의 수도 많으며, 도입할 수 있는 혁신의 수도 많게 되며, 정복전쟁 시 군사적 우위를 가지게 해 줍니다.

이 모든 것이 유라시아, 특히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환경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시작되었는데, 이미 BC 8500년경에 식물의 작물화, BC 8000년경에 동물의 가축화를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또한 주변지역으로의 식량생산 방식의 전파는 유라시아의 동서축이 아주 유리하여, 남북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수직축에 비해 같은 위도의 비슷한 낮밤 길이, 같은 계절의 변화 등으로 급속히 전파가 되었습니다.    


농경을 하게 된 종족들은 인구가 조밀해지면서 중앙 집권적 체제를 갖게 되고, 문자를 알고

정복에 유리한 엘리트 계급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가축화된 동물들에만 존재하던 세균들이

인간과 접촉하면서 극히 일부가 인간의 질병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구세계의 농경민들은

이미 면역을 획득을 하였지만, 아메리카나 오스트렐리아 등 새로운 대륙에서는 총칼보다도

훨씬 더 많은 원주민의 학살을 일으킨 원인이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균이었습니다.  한창 조류독감이니 신종플루니 하여 온 나라가 법석을 떨었던 경험이

있고 최근은 에볼라 바이러스로 세계가 비상이 걸렸지요.    


문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문자도 결국 최초의 식량생산지와 일치를 하는데, 독립적으로 문자를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한 민족은 BC 3000년보다 다소 앞선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과 BC 600년 이전의 멕시코 인디언이고, BC 3000년경의 이집트문자와, BC 1300년 이전의 중국문자도 독립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문자는 기존의 문자 체계를 빌리거나 고쳐서 썼습니다.

잉여생산물을 거두고, 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이 결국 초기 문자의 태동을 이끌었고, 실제

고대 수메르의 점토는 산문이 아니라 90%는 거둬들인 물품, 일꾼에게 지급한 식량, 농산물의 분배 등이 기록된 서무기록이었다 합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인간 사회를 무리(band), 부족(tribe), 추장사회(chiefdom), 국가(state)

등 네 개의 범주로 주로 나누는데,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더 중앙집권적, 계층화가 심화되는데, 이는 친척이나 지인으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보다, 무관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어나면서 갈등 해결의 필요성이 커져, 무력을 독점하고 싸움을 중재할,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필수적으로 되었습니다.  또한 인구규모가 커질수록 공동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불가능해져서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워서 이러한 체제가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1532년 잉카제국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충돌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타우알파는 신세계에서 가장 크고 발전된 국가의 절대 군주였고, 피사로는 168명의 오합지졸을 거느린 스페인의 군인이었습니다.  피사로는 말을 탄 기병 62명, 보병 106명으로 8만의 대군을 거느린

황제를 포로로 삼았는데, 이는 스페인의 쇠칼, 갑옷, 총, 말 등의 잉카의 돌, 청동기, 나무곤봉, 갈고리막대, 손도끼 등의 무기의 우위에서 비롯됩니다.

이후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은 무기의 우위와 군사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기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문자 등으로 인해 급속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자는 또한 비옥한 초생달지대가 어떻게 하여 유럽에 추월을 당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에서 유럽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럽은 상인계급과 자본주의가 발달하였고, 발명품에 대한 특허권을 보호했으며 절대 군주나 무거운 세금이 없었고, 경험주의적 탐구정신을 중시하는 그리스적 유대교적 기독교적 전통이 있었다 합니다.  반면 비옥한 초생달 지대는 원래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 천년 더 일찍 출발했지만, 그 이후 더 이상 지리적 이점이 사라졌는데, 숲으로 우거졌던 이곳이 개간하고 벌채하고, 지나친 염소 방목 등으로 생태학적 자살을 저지른 후 지금은 사막, 스텝으로 변하거나 토양이 심하게 침식되었다 합니다    


또한 비옥한 초생달 지역 못지 않게 빨리 식량생산이 이루어졌고 1500년대까지 유럽을 앞섰던 중국이 추월당한 것은 유럽의 만성적 분열과 중국의 만성적 통일을 이유로 설명합니다. 한 폭군의 잘못된 결정은 당장 혁신을 중단시키고 발전을 퇴보시키기에 충분하였으나

분열된 유럽은 기술과 아이디어의 전파를 중단시킬 수 없고, 일단 한 지역에서 채택만 되면 유럽전역으로 전파된 예가 많습니다.    


이를 저자는 “최적 분열의 법칙”이라고 명명하였는데, 혁신은 분열이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났고, 지나치게 통합되거나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저자는 “오늘날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르는 나라들은 여전히 식량생산을 근거로 지배한 오래된 중심지로, 수천년 전에 통합되었거나 그곳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된 곳이다. BC 8000년 당시의 역사가 지금도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라고 언급합니다.

가장 오래된 나라가 있던 지역의 이라크와 가장 신생국인 미국이 최근에 전쟁을 하여

일방적인 승리가 있었고, 가장 오래전부터 인간이 살았던 아프리카가 그 잇점을 살리지 못하고 아직 최빈국이 즐비한 현실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더 작용을 하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첨부된 일본인은 어디서 왔는가 라는 논문은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를 끌기엔 충분한 것인데, 출판사도 본문보다 오히려 이 부록을 중점적으로 광고를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 3자의 눈으로 세계적인 문화인류 생태학자가 평한 일본의 기원을 보면

일본인의 주류는 한국인과 외모와 유전자에서 거의 유사성을 보이고,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주목합니다.  또한 언어를 보면 많은 학자들은 일본어가

아시아의 알타이 어족 중 고립된 언어일 것이라고 간주하고, 터키어, 몽골어,퉁구스어, 한국어 등과 같은 계통인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일반 문법 체계와 기본 어휘를 약 15%정도 공유하는데 그쳐 이 두 언어가 5000년 이전에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이누어와 일본어는 어떤 특별한 관계도 없어 보입니다.    


일본은 빙하기에는 홋카이도와 규슈가 각각 러시아본토와 한반도에 연결이 되어 있었고

매머드, 일본의 곰,원숭이의 조상, 고대 인류도 걸어 들어갔을 것이나 춥고 메마른 땅이었다 합니다. 이후 13000년전 전세계의 빙하기가 끝나면서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여 비옥한 토지, 풍부한 수량, 어종이 풍부한 바다 등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정적 변화가 BC 400년경 한반도 남부로부터 도래한 새로운 생활양식과 함께 두 번째 인구 폭발을 경험하며 촉발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철기가 이용되고 농경문화가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것을 의미하는데

이 새로운 야요이문화는 동시대의 한국토기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많은 요소들이 확실히 한국적이었으며 , 동제물품, 직조기술, 유리구슬, 땅에 묻는 쌀 저장항아리, 죽은 사람을 독에 넣어 묻는 풍습, 한국식 도구와 집 등이 그것입니다.    


야요이철기는 수세기가 지난 후 자체적으로 철 제련과 제조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주로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양을 수입해왔습니다.

일본의 조상에 관해서 언급 중 일본문화는 1만여 년간 지속된 조몬시대보다 700여년간의 짧은 야요이 시대에 훨씬 더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아마 BC 400년경 한국의 식량생산자들이 이주를 해 원주민인 조몬 수렵인들에게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였을 것인데 이미 철기와 집약농업에 대한 고도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전학자들은 현대 일본인이 한국인과 비슷한 야요이인과, 아이누인과 비슷한 조몬인의 혼혈이라는 가정하에 두 그룹의 유전자 구성을 연구하였는데, 그 결론은 한국인/야요이인 쪽이 우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도래했을 일본의 서남부에서 아이누인/조몬인의 유전자가 가장 희박하게 나타나고, 견과류숲이 울창하고 날씨가 추워 벼농사가 번성하지 못한 일본 북부 지역에서 아이누인/조몬인의 유전자 구성이 제일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어에 있어서 일본어와 아이누어 사이에는 뚜렷한 관련이 없고, 일본어와 한국어 역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규슈에 살던 조몬인의 언어와, 이주해 온 야요이인의 언어는 사실 현대 아이누어나 한국어와 그다지 유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대 아이누어는 홋카이도에 살던 아이누인의 언어이고 2400km 떨어진 규슈의 조몬어는 폴리네시아와 인도네시아어, 타이완의 토착어가 속하는 오스트로네시아 어족과 같은 뿌리의 언어인데, 고대 타이완인 등은 뛰어난 해상민족이었고 그들의 후손은 사방으로 진출했고 그 일부가 규슈에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BC 400년경 한반도에서 이주해 온 이들의 언어 또한 살펴본다면, 한국은 AD 676년 이전에 3개의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현대 한국어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신라는 일본과 그다지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초기 연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고,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어 단어를 보면, 현대 한국어보다 오히려 옛 일본어의 그것과 더 유사한데, BC 400년경 한반도의 언어는 보다 다양한 형태를 띠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한국인과 일본인은 언어보다 외모나 유전자에서 더 많은 유사점을 발견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온,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고 결론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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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이 책은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일맥으로 관통하는 주제의 흐름이 물흐르듯이 흘러서 생각보다 어렵지만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의문을 품어봤을 법한 질문인 왜 인종, 민족마다 문명의 발달의 속도 차이가 그렇게 심한가라는 데 대한 문제해결을 저자는 탁월하게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에 유럽인들이 침략하기 전 인디언이 9000만명이 살고 있었고 지금은 700만명만 남아 있다하며, 호주의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도 초기 75만명에 이르던 수가 최근 3만명까지 급감하였다고 합니다. 남아메리카도 마찬가지겠지요.    


개인적으로 의문을 가지던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등을 학문적으로 근거 없음을 밝히고, 중국이 유럽에 추월당한 이론인 “최적분열의 법칙”도 저자의 학문적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일본의 기원에 관한 부분은 한국인들한테 관심이 많은 내용이고, 일본은 인정하기 싫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증거가 너무나 뚜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만 인류의 거주가 다른 지역보다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아프리카의 발전이 늦은 점,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갑작스러운 몰락, 등은 설명이 부족해 보이고, 역사의 발전이 때로는

우연한 사건이나, 돌연변이적인 특출한 개인의 출현 이후 씨앗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이러한 우연성이 문명의 차이를 일으키지도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을 통해 역사를 700만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13000년전 빙하기 이후를 거쳐

일본에 식량생산을 전해 준 BC 400년전을 지나 현대에 이르는 통시적으로 역사를 한번 훑어보는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오늘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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