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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언니 Jun 11. 2019

며느리들의 착각

그래야 나중에 할 말이 있다고?

시부모가  며느리인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고 오지 말라고 해서 난 몇 년 동안 시가에 가지 않고 있었다.


'꼭 가족이어야 갈 수 있다니...아들의 아내는 아들의 가족인데 그것만으로는 직성이 안 풀린다는 건가?'


'반드시 며느리를 자신들 가족안에 꾸겨 넣고 막 주무르고 통제해야 하는 데 그게 안되면 그냥 상종도 말자는 건가?'


난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지만, 안다고 해도 어차피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시부모와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나를 박대한 그들이 보고 싶을 리도 없다. 내 남편만, 즉 그들의 아들만 입장 곤란하고 불편할 뿐이다. 시부모 중에 시엄마는 자신의 시엄마에게 천대를 받았던 것 같지만, 그녀의 남편인 내 시아버지는 왜 같은 노선을 택하는 건지 이해는 안 갔지만, 연로하고 심장도 안 좋은 분이니 아내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누가 주동자이건 간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


포인트는 그들이 내 인생에 영향력이 없다는 것과 나도 그들 인생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보통 이런 쥐뿔도 아닌 인간관계에서는 , 선을 넘지 않고 예의를 잘 지키는데...유독 며느리에게만은 마구 영향력이라는 장풍을 쏘아대며 함부로 한다. 사랑이 없는 참견과 멸시와 갑질의 장풍이다.


게다가 시부모의 유일한 친손자인 내 아들도 얼굴이 나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닮았다고 오지 말라고 해서 내 아들도 친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지 못한다


내 아이는 나와 자신의 조부모의 관계를  관심도 없어하더니, 엄마를 닮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신까지 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꽤나 불쾌했던지 나보다 더 부쩍 감정이입을 하더니 조부모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난 나더러 오지 말라고 했을 때보다 나를 닮았다는 이유로 손자도 오지 말라고 했다는 시부모의 말이 더 가슴 아팠다. 그런 통보는 그나마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던 아들에게 심한 실망감과 반감을 주게 된 것 같다.  


아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서울 사는 사촌들도 친인척도 만나지 못하고 주말도 명절도 썰렁하게 지냈다. 아들은 친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차단 목록에 넣었다.  


" 네가 왜 우리 집에 못 오는지 알지? ",

" 만나서 우리가 왜 네 엄마를 그렇게 대하는 지 말해줄게"


아들은 친할아버지가 전화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전화를 끝으로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블랙리스트에 넣고 차단했다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 그래도 너는 그분들의 하나뿐인 손자니까 그러지 말고 친절하게 대해 줘"라고 말했지만 아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들- " 내가 그렇게까지 해 줄 가치가 없을 것 같아. 난 엄마 편들어 줄 거야 "

나   - " 가서 할아버지 얘기 좀 들어보고 나에게 말해 주지 그랬어.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거든 ㅋㅋ"   

아들- " 어떤 이유에서든 부모는 그렇게 해서는 안돼. 부모가 아닌 걸 선언한 사람들인데 내가 왜 만나?"


편들어 줘서 고맙다기보다는 미안했다.

고생도 모르고 사랑만 받고 편하게만 자란 내 아들의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을 길러 준 것 같아서 시부모도 원망스럽지만 내 아들이 천대받는 건 내 탓이라는 그들의 억지주장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 꼭 일일이 말해야 아니? 며느리의 도리라는 게 있는 건데"


말을 안 하고도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건 내게 독심술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내 아이의 긁힌 마음과 상처를 아물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난 아이에게만 더 신경 쓰며 지냈다. 나는 그런 대접을 받지만 명랑하게 지냈다. 내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느끼며 살게 하고 싶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애초부터 없는 사람들도 있는 법인데 섭섭하지만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4월 초는 시아버지 팔순이었다.  

마침 나와 아들도 서울에 있었던지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오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는 노인네들이었지만 몇 년 지났고, 미움도 증오도 죽음 앞에서는 별 것도 아닌데, 더 늙어서 비몽사몽 하거나 죽어서 대화를 못 나누게 되기도 전이라면 그래도 팔순인데 한 번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아는 아줌마 친구들은 나더러 시아버지 팔순에는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팔순인데 며느리니까 시가에 가야 한다는 거였다.

평소에 교류도 없고 기분 나쁘게 가는 족족 내쫓기만 하던 시엄마도 은근히 좋아할 거라는 거였다.


"그래야 나중에 할 말이 있는 거예요 " 두 명의 엄마들은 이런 말까지 했다


이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나중에 언제? 지금도 안 하면서 나중에 무슨 할 말을?


지금도 서로 말도 안 통하는 데 나중에 언제 진심이 제대로 통할까?

숨이 꼴깍 넘어가기 직전에 마음이 통해서, 뜨거운 눈물 흘리며 반성의 도가니탕을 헤엄치게 되는 걸까?


'나를 구박했지만 난 그래도 다 참고 며느리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아버님 팔순에는 왔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참 나 원...


이렇게 말하면 달라지는 건 뭔가? 그럼 점수를 더 따게 된다는 건가?

아들의 아내를 몇 년동안 쌩까다가 갑자기 팔순은 무슨 팔순인가?


'그래 며늘아가 , 우리가 그렇게 못되고 굴었지만 넌 우리를 챙겼구나.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 고맙다 며늘아, 우리가 이제 반성을 한다. 니들이 너무 안 찾아와서 내 전 재산을 내가 몸담고 있던 사학재단에 기부하려고 했었지만 변덕 그만 부리고 이제는 아들 며느리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을 듣게 될 것 같다고? ㅋㅋㅋ


착각이다. 사건의 원인을 자신의 인내심과 정성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는 착한 며느리컴플렉스다.


며느리가 참고 잘하면 뜨겁게 이해하는 좋은 고부관계로 아름답게 마무리 될 지도 모른다는 착각이다.

 

난 아들 데리고 남편이랑 같이 시가에 갈 생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편에게 넌즈시 물었다. 그도 넘어 몇 알갱이 없는 머리카락도 허연 초로의 아들이다. 처자식 없이 아버지 팔순생일에 혼자 가는 것도 초라해 보일 것 같아서 나름 고민하고 물어본 거였다.


남편은 한 마디로 오지 말라고 했다. " 그냥 이렇게 굳어진 관계야. 바꾸려 애쓰지 마. "


난 알 것 같았다. 결론이 내려져서 속이 편해졌다.

정말 남이 된 사람들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시부모의 자식인 내 남편도 참견하기 싫어하는 '관계 회복'에 내가 굳이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바로잡으려고 착각할 것은 없다고 느꼈다.


" 그래 알았어. 자기나 잘 다녀와.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와 "


난 남편의 부모가 스스로 쌓아 올린 담을 낑낑 기어올라 넘어가면서까지 악수를 청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들이 걸어 잠근 문으로 인해 셀프감금 중인 것을 낸들 어쩌란 말인가?


나중에 할 말을 하기 위해서 현재를 속이고 싶지 않다.

지금 고맙다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중이 되어도 절대 그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아니면 아닌거다 . 나중은 없다


잘 해도 욕 먹고 못해도 욕 먹는 것이 며느리라니...난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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