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5년 정도 되었을 때라고 기억한다. 하루는 시부모가 거실 소파에 우리 부부를 불러 앉혔다.
나와 남편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거였다. 시부모들은 우리가 허리 세우고 각 잡고 똑바로 앉은 걸 확인하고 난 한 다음에 얘기를 꺼내야 한다고 여기는 전형적인 노인들이다. 자연스럽지도 않은 대화 자리.
그들은 뭔가를 꺼내어 내 앞에 두면서 증정식을 하려고 했다.
반지였다.
그 반지는 시부모가 고등학교 동문들과 부부동반 동남아시아 여행을 갔다가 사 왔다는 초록색인지 파란색이지 굵은 알이 박힌 중년 여성의 반지였다. 오팔이었는지, 사파이어였는지, 호박이었는지 이름도 종류도 까먹었지만 그런 반지를 차로 한 가득 줘도 난 차만 가지고 갈 것 같은 반지였다.
난 그만큼 보석에 관심이 없다. 봐도 모른다.
유리를 가공해 가지고 와서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믿을 정도인지라 , 보석을 사려고 보석가게에 기웃거린 적도 없다.
교회의 아는 집사님과 권사님들이 하나뿐인 며느리를 14K 반지 하나만 달랑 주고,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해 주고 집안에 들여서는 안 되는 거라고 했단다. 며느리가 싹싹하지 않고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받은 게 없어서 그런 거라고 조언을 했다며 반지를 주기로 했다는 말을 꺼냈다.
순간 나는 ' 아.... 이 노부부에게 도대체 어떻게 해 줘야 할까? ' 싶었다.
난 그 반지를 받으면 기뻐하며 감사해서 말을 잘 듣게 되고 제대로 싹싹하게 변할 여자란 말인가?
내가 뭘 얼마나 더 말을 잘 들어야 하며? 내가 서비스직 도우미도 아닌데 뭘 그리 싹싹해야 하나?
이렇게 깝깝할 데가 있나!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고 행동하는 그들의 감성제로에 할 말이 없었다.
나라는 사람을 그렇게 여겼다는 건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나의 시부모가 도대체 나의 어떤 점을 두고 싹싹하지 않고 말을 안 듣는 사람이라고 여겼을지 몰라서 더 답답했다.
시부모는 내가 싹싹하지도 않고 드라마에 나오는 며느리들처럼 굽신대지도 않는다는 점이 적응이 안 되었나 보다. 결혼 전에도 시엄마는 나와의 첫 대면 후 ' 도대체 저 넘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 '라고 아들에게 물었다고 했다.
어쨌든 면세점에서 50만 원이나 주고 샀다는 그 반지를 며느리에게 그냥 주다니 아까워서 어쩔까 싶었지만ㅋㅋㅋㅋ, 이렇게까지 며느리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만큼 내가 거슬렸다는 증거도 되고, 그들 나름대로 며느리인 나와 잘 지내보고 싶어서 좋은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거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받은 거 없어서 시부모에게 그렇게 뚱했던 여자'가 돼 버린 나는, 받아도 받아도 별 감흥도 없는 파랑색인지 초록색이었는지 애매했던 돌맹이 반지를 감사하다는 표정을 하며 받아야 했다. 남편은 옆에서 뭔가 흐뭇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보기라도 하는 듯 싱글벙글했다 ㅋㅋㅋㅋ 그 부모의 그 아들이다.
그러세요. 님들 좋은 거 하고 싶으시다니... 절 데리고 흐뭇하게 증정식도 하시고 싱글벙글 보람도 느끼시구려~
어차피 날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그 반지는 여전히 세상 빛을 못 보고 있다.
색깔도 정확히 기억 못 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새 주인을 만나서 제대로 환영도 못 받았다.
첫날부터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지도 못한 채 나의 친정집 장롱 속 어딘가에 케이스채로 그대로 들어가서 20년 가까이 깊은 잠을 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