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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섭 Oct 17. 2021

어떻게 번아웃을 극복하는가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는 몇 가지 방법

얼마 전 친한 후배를 만나서 식사하는 자리에서, 후배가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에너지 넘치는 삶을 유지하시냐" 하고. 알고 보니 요즘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활동하는 모습을 (요즘에는 주로 페북을 통해서) 보니 그게 궁금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도 몇 가지 답해주기는 했지만, 며칠 동안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한번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1. 첫 번째로 이야기했던 것은, 페북에서 보이는 모습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SNS에 올라오는 이야기는 모두 자기 검열을 거친다. 보여주고 싶은 (주로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직업적으로 페북을 많이 활용하므로 많은 포스팅에 나름의 의도가 담겨 있다. 그 모습은 너무도 편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SNS를 보고 본인을 비교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른 사람이 SNS에 만들어낸 모습을 보고 비교하는 것은 불행해지는 지름길 중의 하나이다.


2. 그럼에도 타고난 에너지 레벨의 차이는 있다. 사실 내가 에너지 레벨이 높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한다. (후배도 대학 시절부터 내가 온갖 잡다한 활동을 하는 걸 봐왔으니 내 실제 모습을 알고 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지어주신 별명이 '하구집이' 였는데, (아마도 부산 사투리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특성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3. 하지만 그렇게 기본적으로 높은 열정이나 에너지 레벨도 외부의 요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자존감이 꽤나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의 대기업이나 대학병원 등에서 일할 때, 혹은 잘못된 연인을 만나고 있을 때 업무적으로 번아웃되거나, 개인적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인정을 전혀 못 받거나, 의미를 찾을 수 없거나, 심하게 갈구는 상사를 만났거나 했을 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런 단어를 몰랐지만)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관계도 있었다.


4. 즉,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고, 번아웃되지 않으며,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단 좋은 환경, 좋은 사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 후배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장에서의 상황, 가정에서의 관계가 쉽지 않은 상황에 있었다. 주변의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기가 사실 매우 어렵다. 나도 내가 마음 편하게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내의 서포트 덕분이다.


5. 내가 에너지 레벨을 유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것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직업적으로 하는 일 중에,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거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타의에 의해서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운 좋게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와,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을 얻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있었고, 또 쉽지 않은 결단이 있었다. 


그리고 일을 하는 목적이 재정적인 목표의 달성이라던가, 일 그 자체가 아닌 외적인 부분에 있으면 일에 대한 열정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고, 일 자체에서 의미를 느끼며, 또 반대로 싫어하는/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6. 또 한 가지는 일을 잊어버릴 수 있는 '건전한' 활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취미이든, 자기만의 루틴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양과 부담이 과도한 지경에 이르면 번아웃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설사 일이 잘 되는 경우에도,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며 어떤 경우는 꿈에서까지 일 생각을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끊어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내 경우는 그것이 헬스와 주짓수이고, 또 아내와 함께 소소하게 나누는 대화 같은 것이다. '건전한'이라는 전제를 붙인 것은 과도한 음주와 같은 것을 피하라는 말이다. 사실 나도 사업을 시작하고 주량이 (주로 혼술..) 많이 늘었다. 술을 마시면 그 순간은 스트레스를 좀 잊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다른 안 좋은 루틴도 마찬가지이다. 


7. 가능하면 나는 운동을 하라고 권한다.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려면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일단 육체적 건강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실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 무슨 운동이든 좋으니, 그 순간만큼은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면서, 일을 잊어버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나는 꽤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도 주짓수와 헬스를 하고 나면 정말 크게 리프레쉬되는 느낌을 받는다.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좋아하는 운동이 없다면, 좋아하는 운동을 찾아야 한다. 흔히 '나는 좋아하는 운동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도 여러 운동을 경험하다 보면 한두 가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는 조깅, 댄스, 수영, 복싱 같이 취미 수준에서 큰 노력 없이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권하는 편이다. 


8. 정말 번아웃이 심하면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일단 쉬는 것이다. 나도 번아웃 기미가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어떻게든 쉬려고 한다. 내게는 번아웃이 주로 외부에서 오는 메시지의 홍수에서 온다. 쏟아지는 슬랙, 전화, 문자, 카톡, 페메, 이메일 등등의 양이 너무 과도해서, 여기에 너무 압도되어 공황이나 무력감을 느낄 때가 생각보다 꽤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든 그냥 쉬려고 한다. 사실 업무가 많고 바쁠 때는 쉰다는 것 자체에 죄의식이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휴식하는 것도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쉬어야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오히려 그렇게 쉬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업무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9.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요즘은 주변을 보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과거에 비해서는 좀 덜 느끼는 것 같다.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도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에서 도움을 받는 것을 많이 보았다. 


다만, 상담사나 정신과 전문의도 각자 스타일이 다르고, 내담자와의 궁합이란 것도 있다. 때문에 믿을만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거나, 자신에게 맞는 전문가를 (약간의 시행착오를 감수하더라도)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망설이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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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다 원론적인 이야기들이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으로는 해결책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어떤 관계는 바꾸지 못한다),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돈은 항상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야 한다. 그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혹은 outside box로 해볼 수 있는 것은 없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나도 그런 상황에 처해봤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고, 앞이 그저 깜깜하고 막막하게 보인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든 해결책이 있고, 탈출구가 있다는 것을 믿으면 좋겠다. 많은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믿자. (다만,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면 가능한 빠르게 탈출해야 한다.) 나를 잘 알고 이해해주는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보자. 그렇게 하는 것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과 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믿기를. 내 본연의 가치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의 가치를 믿기를. 그동안 내가 노력해왔던 것을 믿기를.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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