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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섭 Feb 17. 2024

윌리엄 손다이크, '현금의 재발견'

자본 배분에 대한 경영자의 재발견

'현금의 재발견'을 읽었다. 그동안 주변의 존경하는 분들이 이 책을 여러번 추천해주셨는데, 이제서야 읽었다. 그동안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경영자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경영자의 역할 중에 '자본의 배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영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잘 해야 하는데, 하나는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두 번째는 자본을 (특히 현금을) 잘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은 경영자의 역할 중에 첫번째인 기업의 운영 측면만 주목 받는 경우가 많다. 시중 경영 서적도 전략, 마케팅, HR 등등 이런 운영과 관련한 측면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자본 배분 역량에 초점을 맞춘 책은 많지 않다. 그만큼 경영자의 그런 역량은 주목받지 못하고 간과되곤 한다. 


이 부분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CEO들이 왜 주목을 받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책의 초반에 언급되는) 잭 웰치와 같은 전통적 의미의 유명한 경영자는 기업을 크게 성장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 받는다. 이때 경영 실적이라 함은, 기업 가치, 매출액, 순익 등 주로 외형 지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잭 웰치보다 주가 수익율이 더 좋았던 8명의 CEO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공통점을 살펴보았다. 이 경영자들은 워렌 버핏을 제외하면, 톰 머피, 헨리 싱글턴, 빌 앤더스, 존 말론, 캐서린 그레이엄 등 (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분들이었는데, 이런 경영자들의 공통점이 바로 자본 배분에 있었다. 


이 경영자들은 (기업 가치, 매출, 순익, 직원 숫자 등의 외형 지표 기준이 아니라) 결국 주주 가치의 증대라는 어찌보면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를 이뤄냈다. 다시 말해, 잉여현금흐름, EBITDA, ROE, IRR과 같은 실질적인 경영 효율에 대한 지표를 중시했고, 특히 주당 기업가치 ( =기업가치/주식수)의 극대화에 가장 큰 가치를 두었다.


지금은 경영자의 이런 역량과 사고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경영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주로 60-80년대였다. 당시에는 이런 모습이 다른 일반적인 경영자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역발상 경영자'으로 언급되고 있고, 또 이 책의 원제도 '아웃사이더들 (The Outsiders)'이다. 


CEO가 자본을 사용할 수 있는 용처는 기존 사업에 투자, 다른 사업 인수, 배당금 지급, 부채 상환, 자사주 매입 정도가 있다. 그리고 자본 조달 방식도 내부 현금, 채권 발행, 주식 발행, 혹은 기업 매각 정도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장기적으로 주주이익은 경영자가 이런 다양한 도구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오는 CEO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자본의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스스로를 투자자처럼 여겼다는 것이다. 자본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지에 따라 수익율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궁극적으로 경영 성과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을 극한으로 성공시킨 케이스가 바로 워렌 버핏이다. 워렌 버핏도 8명의 경영자 중 하나로 등장하면서도, 또 흥미롭게도 워렌 버핏이 투자했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던 캐피털 시티즈, 워싱턴 포스트 등의 기업도 등장한다. 


이 책에 나오는 경영자들이 공통적으로 성공적이었던 자본 배분 전략으로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기업의 인수와 자사주 매입이다. 기업 인수는 보통 사업 다각화 (혹은 피터 린치가 이야기하는 사업 다'악'화, 혹은 문어발 확장)으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 나오는 기업 인수 사례들은 좀 달랐다.


기업 인수를 적극적인 주주 가치의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되, 내부적으로는 매우 엄격한 기준과 규율 (ex. 인수 후 10년 동안 차입금 없이 두 자리 세후 수익이 나올 수 있는가, 자사주 매입보다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최소 11 퍼센트의 현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 등등) 을 가지고 '보수적이면서도 과감한' 결정을 했다. 수년 동안 인수 시장에서 움직임이 없다가도, 좋은 기회가 생기면 회사의 존망이 걸릴 정도로 큰 인수 (시가총액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를 과감히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자들은 외부의 컨설턴트나, 애널리스트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했다는 점이 많이 강조되어 있다. 


또 한가지 무수히 강조되는 전략은 바로 자사주 매입이다. 이 경영자들이 주당 기업 가치( =기업가치/주식수) 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분자인 기업가치를 키우는 방법도 있지만, 또 분모인 주식수를 줄이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싱글턴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서 공개 시장에 상장되어 있던 텔레다인의 주식의 무려 90%를 사들여서 소각해버렸다. 그 결과 10년간 40%에 달하는 연평균 수익률을 기록했다. 


흥미롭게도 이 기업들은 주주 배당에 공통적으로 소극적이었는데, 이는 세금의 이중 과세 이슈 때문이었다. 따라서 배당보다는 자사주를 매입해서 소각해버림으로써 '분모'를 줄이는 것이 주주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이런 자사주 매입도 무작정한 것이 아니라, 내재 가치보다 주가가 많이 떨어져 있을 때 (싱글턴의 경우 PER 8이하일 때), 혹은 외부 기업 인수보다 우리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 수익율이 더 높다고 판단될 때만 과감하게 시행했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이런 역발상 경영자들의 공통적인 측면이 여럿 강조되고 있다. 이들은 외향적이거나, 유명세를 추구하거나, 카리스마가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본 배분 결정 권한을 제외하면 대단히 분권화된 조직을 운영했으며, 적극적으로 권한을 위임했다. (그래서 회사 운영을 담당하는 COO의 역할이 이런 기업들에서 많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독립적으로 사고해서 외부 컨설팅, 분석가들에게 의존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투자자 대상의 IR에 시간을 쓰지도, 증권가를 대상으로 이익추정치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주가 상승율과 주주 이익을 창출해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의 하나는 스타트업이 이 책에 나오는 자본 배분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혹은 스타트업 경영자들이 이 책의 '역발상 CEO' 들과 같은 역량을 갖춰야 할지에 대한 것이다. (특히 나는 요즘에 경영서들을 트레바리 북클럽 '헬스케어 스타트업 CEO' 에서 함께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인지를 중요하게 보면서 읽는다.)


그 대답은 YES and No 인데, 대부분의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No에 가까울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자본 배분 전략을 활용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잉여 현금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분할 자본, 특히 현금이 있어야 기업을 인수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의 전략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잉여 현금흐름이 없고, 초기에는 대부분 신주의 발행 (즉, 외부 투자 유치)을 통해서 자본을 조달하므로, 자본 배분 전략을 시행할 전제를 갖추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주당 기업 가치 (기업가치/주식수)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스타트업들은 성장을 통해서 '분자'에 해당하는 기업가치를 빠르게 상승시키는 것이 존재 목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내가 이 책을 읽고서 떠오르는 몇몇 우리 DHP 포트폴리오 대표님들께 선물해드렸는데, 모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잉여 현금 흐름이 있는 회사들이었다. 더 나아가자면, 모든 스타트업들은 결국 잉여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회사로 성장, 진화해야 하며, 이렇게 되었을 때에는 이 책에서 강조되는 자본 배분 역량이 중요해지는 때가 오게 될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는 당장 생존하고 성장하는 것이 급하니, 이런 장기적인 시각은 나중으로 미뤄두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내 개인적으로도 여러 고민을 하게 했다. 이 책에 나오는 경영자들은 자본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스스로를 투자자로 생각했다. 나는 벤처 투자를 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 펀드의 자본 배분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혹은 더 큰 범위에서 회사를 경영하면서 우리 회사의 부족한 자본을 어떻게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절로 들었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워렌 버핏처럼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버핏은 보험사 자회사의 책임준비금 등으로 지속적으로 저비용의 투자자금을 조달했다. 사실상 내부에서 투자자금을 모두 마련했던 것이다. 버핏은 이렇게 내부에서 나온 자금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또 다른 사업에 투자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투자자금을 마련하는 일종의 자본의 플라이휠을 만들어냈다. (부럽다.)


워렌 버핏에 대해서 나도 나름 많이 공부했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책에서 자본 배분 측면에서 워렌 버핏을 바라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버크셔 헤서웨이와 워렌 버핏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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