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법
울창한 가로수들 틈으로 삐져나온 햇빛이 만들어낸 축복의 람블라스 거리는 하나둘씩 깨어나는 가로등 불빛에 로맨틱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래 생동감 넘치는 노점들과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소한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경쾌한 음악소리, 오래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아름답고, 경이로운 흔적들은 나의 여행 추억을 살 찌우기 충분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마치 엽서 속을 걷는 것처럼 매 순간이 아름다웠기에 어디로 가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것이다. 귓가에 맴돌던 음악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북적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돌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오른 동시에 나를 붙잡은 것은 'flamenco'라고 써져 있는 작은 간판이었다.
호기심에 한걸음 다가서자 경쾌한 기타 소리와 박수에 맞춰 리듬을 타는 발길질 소리가 미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유명한 관광명소는 아니었다. 동네에 허름한 가게의 모습이었고 입구조차 소박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난 그런 소박함에 더 이끌렸는지 모르겠다.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허름한 문을 조심스레 열자, 어두운 실내 안에 불빛이라고는 테이블에 놓인 촛불들과 무대 위 조명뿐이었다. 내가 밖에서 상상했던 모습보다 아늑하고 흥이 넘쳤다.
이미 시작된 공연에 방해가 될까,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곧 아름다운 여성 한분이 나에게 속삭이듯 주문을 받았다.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조심스레 뒷따라 온 듯 보였다. 박수소리와 댄서의 발길질 소리는 한층 더 즐거움을 더했고 나는 샹그리아와 플라멩코와 함께 스페인의 밤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잠시 연주가 멈추고 적막이 흘렀다. 적막함에 나의 심장이 더욱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기타 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남자와 여자 댄서분이 동시에 무대에 섰다.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살짝 미소를 머금더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둘 사이에 '사랑'을 느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언제나 사랑을 머금고 있었고 몸동작 하나하나에는 서로를 배려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끈적하면서도 상큼하고 앙큼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이었다.
나는 내심 그들이 연인일 것이라 단정 지었다. 그렇게 흥겨운 공연이 끝나고 조심스레 종업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상한 답변이었다.
"그들은 연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다소 어려운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조금 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연인 관계가 아니라고 하였다. 단지 음악이 시작되고 그들이 춤을 출 때만큼은 진정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난 그 자리에서 그들의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숙제를 받은 기분으로 가게를 빠져나와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위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푸는 아이처럼 몇 번을 종업원의 이야기를 혼잣말로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춤을 출 때만 사랑한다...'
그들의 눈빛을 떠올리자, 그제야 그들의 감정이 이해되었다.
나는 사랑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사랑 앞에서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탓하기 바빴다.
과거의 당신을 떠올리며 아파하고 미래의 당신을 상상하며 괜한 걱정을 하느라 지금 옆에 있는 당신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 순간 사랑을 즐기는 법을 나에게 몸소 말해준 것였다.
갑자기 당신이 보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이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스페인에서 배운 사랑법, written by 심스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