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208일차] 남과 여

#1

by 김연필

30분이나 지났는데도 그는 아직까지도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다. 내가 매력이 없는 건가? 나이가 서른 셋이라고 했다. 연애 경험도 대여섯번 정도는 있다고 했다. 네이비색 코트에 조금 옅은 그레이톤의 니트, 그 안에 입은 하얀 셔츠, 롤업 진에 팀버랜드 워커, 살짝 투블럭 느낌의 반곱슬머리도 깔끔해보인다. 그래, 꽤 내 스타일인데, 아니, 스타일로는 100점 만점에 90점을 줄 수 있다. 쌍커플 없는 눈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화가 나려고 한다. 그래도 어디가서 제법 이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 나인데, 대체 이 남자는 내 어디가 맘에 안 드는 건지 알 수가 없다.


30분이나 지났음에도 그녀를 제대로 쳐다 볼 수 가 없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내 마음을 들킬 것 같아서 그럴수가 없다. 소개를 주선한 친구놈이 시크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첫눈에 반하는 그런건 없다고 믿는 그녀라고 그랬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길 원하고 보통의 여자와는 다르게 남자에게 먼저 고백도 잘 한다고 했다. 처음 카페에 들어선 순간 그녀만 보였다. 그런 내 마음을 들켜선 안된다. 그랬다가는 이 시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순간순간 그녀가 창밖을 보곤 했다. 그럴때마다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마음을 절대 들켜서는 안된다.


커피잔이 말라간다. 아니 그 전에 내 속이 다 바짝 마를것만 같다. 던지는 질문들도 센스있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나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지 않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는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내게 섹시하다고 한다. 섹시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주선자인 그가 말했다. 혹시 오늘 내가 입은 옷이 너무 과한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겨울이라 자신있는 몸매를 마음껏 드러내는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뭐..가슴은 조금 부각시켰지만.. 혹시 빨간색 립스틱이 문제인가? 커피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다 나도 모르게 잔을 들었다. 이번에 마시면 한 잔을 더 시켜야 하나? 아니면 자리를 옮기자고 해야 하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남자 분명 매력있다. 마셔야 하나..아니면 이대로 그냥 다시 잔을 내려둘까? 어? 갑자기 두눈을 내게로 향했다. 쌍커플이 없지만 깊이가 있는 눈동자다. 눈빛이 차분하다. 아니, 뭔가 말하려고 하는 눈빛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친다. 나도 모르게 두 볼에 홍조가 돋지는 않았는지 거울이 보고 싶어졌다.


그녀가 자꾸 커피잔을 매만진다. 내 커피는 아직 반도 넘게 남았는데, 그녀의 잔은 벌서 거의 다 비워져간다. 저 잔이 다 마르고 나면 그대로 일어나서 저 문 밖으로 나갈 것만 같다. 뭐라도 해야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자를 만나는 일이 처음도 아닌데.. 차라리 친구에게 아무말도 듣지 말 걸 그랬나 싶다. 괜히 허세나 부리고 잘보이려고 그럴싸한 말들을 늘어놓는 그런 남자로 보이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저 눈, 그래 저 커다란 눈망울을 보게 되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이 다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려 한다. 또 시선을 피했다. 아..시선을 둘 만한 곳이 없다. 투명한 테이블 너머로 그녀의 다리가 보인다. 아..여기도 아닌데..큰일이다. 그녀가 잔을 집어 들었다. 커피 이야기를 꺼내서였나? 이대로라면 저 잔을 비우고 그녀가 내게 뭔가 말을 할 것만 같다. 이대로 그냥 일어나자고 하면 어쩌지? 아.. 이렇게 그녀를 보내고 나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다. 그래, 나는 남자다! 이대로 그녀를 보낼 순 없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친다. 심장박동 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그런데 입이 쉽게 떨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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