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벽 3시의 라면

솔이의 항암치료 중

by 페넬로페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가... 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의 이기성을 생각하는 시점이 새벽 3시, 냄비에 라면물을 올리면서부터라는 것이 왠지 어색한 설정이지만, 솔이를 재우고 주방으로 나와 라면을 끓이면서 설레이는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 아닌가? 지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새벽 3시에 라면을 먹는다는 것이 일반인으로서는 조금 비상식적이지만 나는 기어코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였다. 뜨겁고, 매콤하고, 후루룩 거림이 진짜 귀한 음식이라도 먹는 것 같아서 좋다. 내친김에 라면국물에 밥 한 숟가락까지 말았다. 맛있다.


사실 라면에 대한 갈망은 솔이가 수술을 끝내고 입원한 지 열흘이 지난 때부터 시작되었다. 솔이의 암덩이를 제거하던 수술 이후, 솔이는 콧줄을 꽂고 양쪽배에 배액관을 연결한 채 내 앞에 멍한 눈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솔이에게 물 한 모금도 허락되지 않던 시간에 나도 마시고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솔이는 계속 주입되고 있는 영양제 때문인지 배고픔에 대한 호소는 잊거나 간헐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나는 배고픔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매 순간 상상으로 무언가를 먹고,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과자나 빵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넣고, 포카리스웨트 한 병을 통째로 원샷을 하면서 그 시간을 견뎠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다른 소아암 환아의 엄마가 커피 한잔과 김밥 한 줄을 내 머릿맡에 놓고 가면서 라면에 대한 환상이 시작되었다. 낮잠에서 깨어난 후 내 머릿맡에 가지런히 놓인 김밥을 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리고 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저 김밥, 라면 국물이랑 먹으면 참 맛있겠다." 하지만, 나는 솔이가 볼세라 김밥을 얼른 냉장고에 넣고 밤이 되어서야 딱딱해진 김밥을 입 속으로 욱여 넣었다. 그때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다면 참 맛있긴 했겠지.


다른 아이 엄마의 호의로 간신히 배를 채운 후, 그이후에도 솔이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난 포카리스웨트 한 병과 과자 한 조각으로 간신히 병원생활을 이어갔다. 동시에 내 머릿속엔 나중에 솔이가 퇴원을 하면 김밥과 라면을 곁들여 먹어야겠다고 다짐까지 하는 이기적인 엄마였다.


솔이의 수술 후 19일이 경과하고 몸에 달려있던 관들을 하나씩 제거되면서 솔이에게도 음식이 허락되었지만, 솔이는 먹는 족족 설사를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솔이와 함께 먹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몸 상태도 엉망인데 항암치료까지 시작되니 솔이의 먹는 속도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고, 나 역시 배고픔을 느껴가면서 라면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갔다.


오늘은 솔이가 꼬박 32일을 병원에서 보낸 후 집에 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남편도 독감에 걸려 집에 오지 못하는 상태라서, 나는 24시간을 솔이와 보내면서 라면 한 그릇 먹어볼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혹시라도 라면을 끓인다면 솔이는 분명 먹고 싶어 할 텐데 현재 솔이의 상태로는 어떤 인스턴트도 밀가루도 몸속에 들어가선 안 되는 상황이니 내가 참아내야만 했다.


그런 나를 무엇이 이끌었는지, 새벽 3시에 눈을 뜬 나는 좀비처럼 걸어 나와서 그냥 머릿속을 지배하던 하나의 생각에 이끌려 자동으로 움직이기 했다.


냄비에 물을 넣고 인덕션의 온도를 높인다. 그리고 라면 중에서 가장 매운 라면을 골라 찬물에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대충 끓였지만 다 익은 라면... 맛있다.


라면 한 그릇이 이렇게 맛난 것이었던가? 나 혼자 즐기는 이 순간에 솔이의 항암치료 후유증도, 솔이가 아직도 설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난 얼마나 이기적인가.


#신경모세포종 #신경모세포종고위험군 #항암치료 #신경모세포종수술 #소아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냥 환자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