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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 손이 잘 가지 않는 이유

[일기에 관한 긴듯 짧은 글들]

현재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는 걸

굳이 기록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오늘 점심을 먹는 일은

매일 하는 당연한 일 중에 하나다.

보통은 그리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오늘 자주 만나는 김**이와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행을 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특별하고 비범한 일이다.

그러니 사진과 영상과 글을 동원해서

기록한다.


우리는 비범한 순간을 즐기기 위해

평범한 순간을 견딘다.

우리는 주로 비범한 순간을 위한다.


하지만 성실한 하루 일기는

평범한 순간을 위한다.

비범한 순간은 덤이다.


꾸준히 평범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범한 순간들이랴?


항상 하던 것처럼

기록할 뿐이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1분 단위로 다 쓴다는 말은

아니다. 


시간순서대로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요약하고

기록해 보자.


특히 물건과 장소,

사람의 이름은 

소홀히 하지 말자. 


이름이 있으면

과거를 길어 올리기 

좀 더 수월하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일기,

가장 단순한 기본기를

단련해 보자.


기본기가 견고한 일기에는

감사일기도,

불만일기도,

운동일기도,

대화일기도,

여행일기도

다 들어간다. 


일상일기라는 뿌리에서

다양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비범한 일은 말 그대로 

항상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한 일은 항상 일어나고 있고 

습관은 매일 하는 일에 붙는다. 


일상일기의 또 다른 쓸모다.


뿐만 아니라

눈치채지 못한 채

바뀌어버린 옛 일상을

다시금 경험하게 

해주기도 한다.


한 때 당연하게도 누리던 일상이

어느샌가 없어졌을 때,

한 때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던 일상이

어느샌가 사라졌을 때,


다시금 그때로 돌아가 

그때의 달콤함과 쓰라림,

감사와 비통함을 생생히

느끼게 해 준다. 


N회차 인생을 

살수 있는 것이다.


와인의 숙성처럼

가죽의 에이징처럼

일상일기는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가 더해진다. 


평범을 위하는 성실한 일기는

일상을 당연히 여기지 않으며

소홀히 하지 않게 도와줄 것이다.


이런 믿음이 나로 하여금 

일기에 더 손이 가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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