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관한 긴듯 짧은 글들]
내가 헤쳐 나온
이 인생의 시간이
실존했음의 증거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기억밖에 없다.
'기억'밖에 없다니!
꽤나 충격적이다.
잘못된 기억이
역사를 비튼다니.
진실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며
견고하게 생각했던 그 현실이
이리도 허무하게
뭉개질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당사자의 기억을 더 믿어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가 승인하는 기억의 왜곡은
더욱 강력하게 내 역사를 휘게 할 것이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기억이
단단한 현실을 휘게 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하리만큼 불합리해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도 생생히 느끼는 '지금'은
무한히 짧은 순간에 기억의 영역으로
사라진다.
지금이 매 순간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서로의 기억이 맞다며
피 터지게 싸우는 것도
이해가 된다.
기억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상대의 역사를 허물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다.
일기의 매력이
여기서 발휘된다.
기억이란 모호한
영역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현재를
견고한 뭍위로
건져 올릴 수 있다.
붙잡을 수 없던 기체를
유체나 고체로 만들듯 말이다.
종이나 스크린 속으로
옮겨간 기억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증거로서
존재하게 된다.
일기는 그렇게
내가 살아온 삶의 시간을
증언해 준다.
일기는
보이지 않는 내 시간의
보이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