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관한 긴듯 짧은 글들]
일기는 작가의 의중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그 작가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도 속일 수 있는 게
인간이라 하지만
그래도 웬만해서는
내가 진실하게 기록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일기는
가장 속 편히 읽을 수 있는
그런 기록이다.
'실화에 기반한'
드라마나 영화라도
각색이 들어간다.
'진짜 실화'라며
쓰인 블로그 글이라도
일말의 의심은 남겨둔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인데'라며
시작하는 지인의 모든 말을
완벽한 진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쌍방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영영 상대방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지 못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일기는 어떤가?
기록자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기록자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이야기이니
다소 흥미가 떨어질 수는 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부분 부분 잊어버리고 나면
꽤 새롭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는
또 들어도 그 맛이 좋다.
물론 일기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가
다 진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잘못 들은 이야기를 쓸 수도 있고
기억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빠뜨린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의도적인 거짓말은
일기에서 자리 잡기 힘들다.
인간은 위협을 받으면
심리적인 방어기제를 작동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럴 때는 일기에서 조차
스스로를 기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기록으로 남을 때에야
후에 그 정체가
폭로될 수 있다.
내 양심이
회복되었을 때
기만의 기록을 보고는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빼어난 글을
양산하게 될 미래 시대에
어쩌면 오직 일기만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간 냄새가 나는,
그런 기록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