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기와 인공지능이 만나면 1

[일기에 관한 긴듯 짧은 글들]

요즘 나는 일기 내용 일부를

인공지능에게 복붙 해주고

조언을 구하고는 한다.


무슨 공상과학 영화 속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듯한

요즘이다.


일기를 캘린더 앱에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든지 내 상황을 소상히

인공지능에게 알리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가능해졌다.


(기밀사항(?)은 

따로 암호걸어놓은 문서파일에 

써서 보관한다.) 


벌써 인공지능에

종속된 지능이 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니 그렇게 치면

우리는 이미 검색창으로 

그리하고 있지 않았나.


검색해서 나온 것들을

온전히 다 믿지 않는 것처럼

여전히 환각이 있는 인공지능의 말도

다 믿지는 않는다. 


반박을 생각해 내서 

다시 물어보기도 한다. 

나름 종속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분별지능이란 게 필요하겠다.


게을러지면 종속지능이고

부지런하면 분별지능이다.


아무튼,

삶의 일부분이라지만

인공지능이 내 일상을 

소상히 알게 된다는 점은

개인정보침해에 대한 걱정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혹시 내 정보를 인공지능이

그 회사에 다 갖다 받친다면?‘


그랬다가는 회사가 망할 테니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다.

하지만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에

인간의 정의와 선의를 담을 수 있다면

불의와 악의도 담을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일기를 알려주더라도

적당히 가려내어서 

인공지능에게 알려준다.


몇 개월간 유료 서비스로 

사용해 본 바로는

정말 유용하다.


세밀하게 하루를 기록하는 편이라

인공지능의 답변도 꽤 구체적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첫째 아이 등교거부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상황이다.


상담실도 찾고

주위 사람들의 말도 들어보는데

모두 일기에 기록한다.


그중 애매하거나 좀 더 알아보고 싶은 게 있으면

일기 내용을 '복붙'해서 주요 정보는 빼낸 뒤

인공지능에게 먹여주면 아주 상세한 답변을 뱉어낸다.


꽤나 세심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답변이다. 

그러면서도 상담전문가와 협력하라는 

'인간역할의 유용함'의 측면까지 어필해 준다.


그런데 이게 인공지능의 정점이 아니라니!


초등학생인 두 아이가 크면

어떤 세상이 되어있을지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그때의 교육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지

그때의 지식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지

그때의 학습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지식검색의 시대는

이미 우리가 살아봤다.


아마 지금 이 시대가

가속된 세상이 아닐까 싶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온갖 지식을 섭렵한 인공지능을

곁에 두고 사는 미래의 우리에게


여전히 나는 일기가

가치 있는 기록이 될 거라고 믿는다.


내 허락 없이는

결코 건들 수 없는,

유일한 정보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자발적으로’ 내 일상의 일부를

인공지능에게 알려주고 있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으면

어떻게든 야금야금

일어날 일인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가

그렇게 걱정을 하는 이유를

조금씩 체감하는 요즘이다.


(그도 일기마저도 인공지능과

공유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듯하다)


당신이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전쟁을 할지 말지 고민할 때, 데이터교는 높은 산에 올라가 바다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은 한마디로 시간낭비라고 말한다. 미술관에 가고, 일기를 쓰고,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짓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산에 오르거나 미술관에 가거나 일기를 쓰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훨씬 더 좋은 방법들이 있다.

데이터교의 몇 가지 실용적 지침들을 살펴보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데이터교가 묻는다. “그러면 산과 미술관은 잊어라.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봤는가? 안 해봤다고? 뭘 하고 있나? 당장 가서 해보아라.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들에게도 유전자 검사를 받으라고 권해라. 그들의 자료는 당신에게 큰 가치가 있다. 하루 24시간 혈압과 심박수를 측정해 주는 웨어러블 생체측정 기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봤다니 다행이다. 그런 기기들 가운데 하나를 사서 착용하고 그것을 스마트폰과 연결해라.

또한 쇼핑하러 가거든 휴대용 카메라와 마이크를 사서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해 온라인에 올려라. 또 구글과 페이스북이 당신의 모든 이메일을 읽고 당신의 모든 채팅과 메시지를 보고, 당신의 모든 ‘좋아요’와 당신이 클릭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승인해라. 이 모든 것을 한다면, 만물인터넷의 위대한 알고리즘이 누구와 결혼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전쟁을 해야 할지 말지 알려줄 것이다.”

*데이터교 : 저자가 상상하는 미래 종교

-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이전 21화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유일한 책,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