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관한 긴듯 짧은 글들]
22년 전
일기장을 다시 읽다 보면
매우 아쉬운 점이 있다.
반성을 잔뜩 써놨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써놓은 게 별로 없다.
내 감정과 판단만 남아있고
사건을 '관찰'한 내용이 없다.
대체 무슨 상황이었길래
이렇게도 괴로워하고
이렇게도 후회하고
이렇게도 반성했을까.
좀 과해보이는 22년 전 나이다.
답답한 녀석.
말이라도 걸 수 있으면
당장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좀 써보자, 이 녀석아."
물론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때는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스로를 꽤 기특하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나가지를 못했다.
그 결과 일기는 6개월 매일 바짝 쓰고는
추동력을 잃고 멈춰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반성일기를 썼는데
계속 반성만 하니까
반성패턴 몇 가지를 뱅뱅 도는 것이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은 다양한데
그것은 다 놓쳐버리고
비슷한 반성만 쓰니
더 이상 쓸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반성하고 변해서
더 이상 당장에 반성할 것이 없으면
일기를 쓸 일이 없어져버린다.
주제별 일기의 단점이다.
반면에 하루를 관찰하는 일기를 쓰면
매일 쓸 것이 있다.
일상은 주로 비슷해 보이는
날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동일한
하루란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쓰니까 습관들이기도 좋다.
어디에 갔으며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어떤 공부를 어떻게 했으며 몇 시에 잠을 잤는지
어떤 이름의 가게에서 어떤 이름의 음식을 먹었는지
지금 당장에는 당연하여 별 것 아닌 것 같아
기록해야 할 가치를 못 느낄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귀해지는 것은
그렇게 당연한 듯 주어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일상이 어느샌가 다른 일상으로 대체되고 나면
당연하게 여겼던 그 이름들도
기억 속에서 바스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기록에만 남아있다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그 이름과 연결된 추억들이
쑥쑥 딸려 올라오는데 말이다.
이렇게
추억 때문이라도 관찰일기는
가치가 꽤 있지만
당장에 나의 판단을 돌아보는데
있어서도 관찰일기는 힘을 발휘한다.
우리의 감정과 판단은
해석에서 태어나고
해석은 관찰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건이 몇 시에 시작되었고
어떤 사람이 관련되어 있었는지
무슨 말과 행동이 어떻게 오갔는지
소위 시간 순서에 따른 팩트들을
관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관찰기록을
일기 쓰기 10년 이상 지나서야
기본기로 받아들였다.
무슨 일이든 기본기가 중요하다.
관찰일기는 이제 내가 매일 연마하는
기본기 중의 기본기이다.
관찰기록을 잘 남겨두면
해석과 판단 그리고 감정을
제대로 진단해 볼 수 있다.
완벽한 관찰과 판단 아래
희로애락의 감정을
매 순간 순식간에
제대로 소화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관찰기록을 오래 쓰다 보면
내가 관찰한 것과 관찰하지 못한 것을
점점 더 의식하게 된다.
그런 한계를 인정하며 치솟는 감정을
냉철한 관찰기록과 함께 남겨두고
시간과 함께 되짚어본다.
이렇게 하면
후회할만한 결정을 덜 하지 않을까,
자랑할만한 결정은 더 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역사책이 언제까지고 기록되는 이유도
그러하지 않은가,
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