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록과 아날로그 기록에 대하여
메모 및 기록 관련 책을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메모, 기록을 어디에 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럼 크게 2가지 카테고리가 나옵니다.
첫번째는 스마트폰 입니다.
메모앱, 할일앱, 일기앱 등
수많은 기록관련 앱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기록하면
일단 메모를 즉시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메모는 기억이 생생할 때
하는게 제일 좋죠.
디지털 기록은 저장 공간도 거의 무한대입니다.
텍스트 데이터가 워낙 용량이 작다보니까요.
할일 관리 앱들의 기능은 이제 정점에 다다른듯,
대부분의 앱들이 날짜설정, 카테고리 설정 등
편의성과 실용성을 대부분 잘 갖추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아이폰의 기본 할일 앱인 '미리알림'도 업데이트 후에보니
상당히 깔끔하고 기능도 좋더군요.)
두번째는 종이노트입니다.
노트는 포켓노트, A5 노트, 바인더 노트 등이 있습니다.
저처럼 만년필 쓰시는 것을 좋아하는 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볼펜으로 다이어리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불렛저널이 대표적인 예이죠.
'다꾸'라고 해서 다이어리를 꾸미는 분들도 있으시구요.
가죽커버 노트들도 꾸준히 사랑받는 아날로그 노트 중 하나입니다.
사실 기능적 측면에서 따지자면 디지털 노트들이 훨씬 앞섭니다.
휴대성에서도 그렇구요.
하지만 반대로 아날로그 노트들만의 장점들도 있습니다.
'불렛저널' 책에서 이렇게 아날로그 노트의 장점을 부각합니다.
노트를 쫙 펼쳐봐라. 그러면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동적으로 전원을 뽑는다. 흘러들어오는 정보가 잠시 멈추고, 우리 마음이 따라잡을 수 있게 된다. 흐릿했던 일들이 좀 더 뚜렷해지면서, 마침내 명확하게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라이더 캐롤, 불렛저널-
아무래도 스마트폰은 이것저것 할 수 있는게 많다보니
쉽게 산만해진다는 것이 단점인데, 종이노트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더 좋은게 종이야'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저는 여기에 장점을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종이노트의 장점은,
상징성입니다.
상징성이란 어떤 물건이 한 가지만 대표할 때 매우 강력해집니다. 예로 망치가 있습니다. 망치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주로 벽에 못을 박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펜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무언가 쓰는 것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망치나 펜은 둘 다 한 가지 기능만 있는 싱글태스킹 도구 Single-Tasking Tool이기 때문에 그 기능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즉, 상징성이 강합니다.
반면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태블릿은 어떤가요? 전형적인 멀티태스킹 Multi-Tasking 도구이죠. 전혀 서로 상관없는 다양한 기능(예. 게임과 업무)을 수행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연상시켜주는 기능이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한 가지만 '지속적으로' 상징하는 능력이 약합니다. '이것저것 다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상징성은 있지만 그 다양한 기능 중 어느 하나를 고정적으로 상징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로 만약 내가 게임에 중독되어 있다면 스마트폰은 게임을 연상시켜주지만 그 중독에서 벗어나 업무 기계로 쓰기 시작하면 스마트폰은 업무를 쉽게 연상시켜 줍니다. 나에게 스마트폰은 카톡머신이지만 내 친구에게 스마트폰은 메모도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망치와 펜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못질과 기록의 상징이죠.
이런 상징성은 어떤 실용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종이노트를 하나 골라서
독서하며 밑줄 그은 것들만 기록해보세요.
그 종이노트를 보기만해도, 만지기만해도
'독서 밑줄 문장 모음집이네'라고 쉽게 떠오릅니다.
즉, 종이노트 한권이 그 존재 자체로서 리마인더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도구의 뛰어난 휴대성과 방대한 저장공간은
이런 '물리적인 형태'를 포기하면서 얻은 것입니다.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도 될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물리적인 상기능력'이라고 부릅니다.
즉, '물리적인 상징성'을 지닌 물건이 우리에게 의미를
'상기시켜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종이노트를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디지털 기록도구와
아날로그 기록도구의 장단점을
잘 버무리는 방향으로
기록 생활을 해나가면
흥미롭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실용적인 측면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글에서 언급한
트레져 로그(저만의 소중한 문장들을 모아놓은 것)를
종이노트로 하는 이유 또한
이런 물리적인 상징성 때문입니다.
메모앱에 쌓아두면
존재감이 없어서
어느 순간부터 방치 되더라구요.
손에 잡히는 포켓노트에
써두면…자주 읽지 못하더라도
‘다시 기록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물리적인 리마인더가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