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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필피 Aug 30. 2024

심주연(1)

뉴스

※ 이 소설은 순전히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사건은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주연은 힘을 빼고 서 있었다.


기둥을 잡지도 손잡이를 거머쥐지도 않았지만 앞뒤 좌우로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까닭에 행여 균형을 잃고 넘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탑승객들의 끈적한 피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것의 열기가 열차의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냉기를 잡아먹었다. 찝찝하고 덥다. 향수와 땀 냄새, 비누 향과 구취가 장마철의 습한 공기와 묘하게 섞여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방황하는 손가락과 표류하는 눈동자가 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라며 시간을 죽이는데,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인스타그램의 알림 팝업이 스크린 위로 떠 올랐다.


「이것 좀 봐」 통영에 사는 고향 친구가 보낸 DM이었다.


양민정. 주연과는 서로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이따금 올리는 사진에 기계적으로 하트를 눌러주는 사이였다. 아무래도 DM은 처음인 듯한데 그동안 잘 지냈냐, 하는 가벼운 안부 인사도 없이 별안간 ‘이것’을 보라니? 무엇을 보라는 건데? 주연은 곧바로 링크를 눌렀고, ‘이것’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통영 해저터널 보수공사 중 백골 시신 발견

경상남도 통영 해저터널에서 진행 중이던 보수공사 도중 백골 상태의 시신이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터널 내부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시신은 오랜 시간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며현재까지 실종자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신원 확인과 사인 규명에 난항을 겪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작은 단서라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 수사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고법의학 팀은 추가로 시신의 치아와 뼈를 분석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전했다.


왜 내게 이걸? 주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뭔데? 링크만 달랑 보내면 어떡해?」 회신을 전송하고 휴대전화 화면을 가만히 주시했다. 통영 기사라서? 해저터널이라서? 아니면 내 주변에 실종자가 있는지 물어보는 건가?


도착역에 다다르는 동안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주연은 들러붙은 퀴퀴한 냄새를 애써 떨쳐버리듯 후다닥 열차에서 내렸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서 있는 사람들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느라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옷은 구겨졌다. 주연은 매무시를 정돈하는 대신 발걸음을 재촉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치듯 그녀를 침대 위로 자빠뜨렸다.


가느다랗게 눈을 뜬 건 밤이 깊어서였다. 천장에 달린 백열등은 환하게 켜진 채였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올 때 소강상태로 접어드는가 싶었던 빗줄기는 어느새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추적추적 온 세상이 젖어 드는 소리가 만연하다. 주연은 피곤한 몸을 가까스로 일으키며 머리맡에 던져두었던 휴대전화를 찾아 더듬었다. 덮어둔 납작한 걸 뒤집었다. 액정이 환하게 밝아졌고 확인하지 않은 DM의 존재를 알리는 팝업이 떴다.


양민정?


「사진 봤나?」


무, 무슨 사진…? 주연은 눈가를 찌푸리며 화면을 톡톡톡, 톡톡, 두드렸다.


「무슨 사진을 말하는 거야?」


전송 버튼을 누르고 앱을 닫기 전에 ‘읽음’ 표시가 새겨졌다. 새벽 1시 23분. 이 늦은 시각에 안 자고 뭐 하는 거? 주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휴대전화는 손에 쥔 채였다. 찬장에서 꺼낸 머그잔을 정수기에 놓고 냉수 버튼을 눌렀다. 조르르르, 하는 소리가 고요한 집 안에 울리고 주연은 다시 DM을 확인했다.


「기사에 딸린 사진 봤나 아ㄴ 밧나?」


기사? 주연은 하루 종일 흘린 땀이 찝찝하게 들러붙은 뺨을 문질렀다. 고개를 젖혀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도 휴대전화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스윽, 화면을 내리고. 톡, 링크를 눌렀다. 아까 그 뉴스 기사로 연결되었다. 심드렁한 표정의 주연은 이어지는 활자를 대강 훑어보며 쭉쭉 내렸다.


법의학 팀에 따르면시신은 대부분의 연조직이 부패된 상태였으며 뼈만 남아있다골격분석 결과시신은 여성이며 키는 약 150cm로 추정된다경찰은 통영 해저터널 주변에서 실종된 인물들의 명단을 확보하고실종자 가족들과 DNA 대조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하지만 오래된 시신인 만큼 DNA 추출이 어려운 상황이다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인근 지역에서 오래된 실종 사건 기록을 조사하고 있으며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


상투적인 활자의 끝에 먼지로 뒤덮인 한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어…?”


이거 그거 아냐? 주연은 재빨리 양쪽 엄지를 움직였다. 「이거 인평중학교 여학생 교복 아냐?」 교복뿐만이 아니다. 사진엔 시신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루즈삭스도 있었다. 최근 패션 피플이 부르기론 레그워머라고 했던가?


「마ㅈ다」


되묻는 주연의 메시지에 민정의 대답이 탁구공처럼 튀어 돌아왔다.


상의는 낡고 바랜 하얀색 블라우스와 칼라에는 엑스 자 모양의 타이. 하의는 붉고 푸른 가느다란 선이 보일 듯 말 듯 들어간 고동색 치마. 인평중학교 여학생 교복이라고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는 특이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활짝 펼쳐진 치마와 연결된 넓은 어깨끈일 것이다. 에반게리온 만화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레이가 입은 교복과 비슷하단 소릴 곧잘 들었던 거로 기억한다. 게다가 루즈삭스. 레그워머와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사진에 보이는 건 아주 오래전 일본에서 유행하다가 한국으로 넘어온 루즈삭스가 분명했다. 우리나라에 유행을 퍼트린 게 SES와 핑클이었던가.


「사진이 왜?」


주연이 입학했다가 졸업은 하지 못한 중학교의 교복.


「기억나는 거 없나?」


주연과 민정이 중학생 나이일 무렵 한동안 유행했던 소녀들의 패션 아이템.


「뭐?」


주고받는 대화가 이어질수록 애매했던 무언가가 점점 형태를 잡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흘러가는 구름일 수도 있었던 것이 서서히 윤곽을 그려내며 결국 하나의 고유한 모습이 되었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작고 팔다리가 길어서 잡지에 나오는 모델처럼 비율이 좋던, 도수 없는 호피 무늬 뿔테 안경을 액세서리처럼 끼고 다니던, 만화책방에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도 공부는 더럽게 잘하던…. 그 아이.


“주, 준희…?”


하준희. 아니야. 설마 걔겠어?


주연은 동이 틀 때까지 연관 기사를 검색하느라 혼이 빠져 있었다. 눈꺼풀에 피로가 쌓이고 손가락 마디에 뻐근한 통증이 스며도 계속했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편안한 자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의 형태와 색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시신의 옷은 1990년대 인평중학교 교복으로 확인되었으며현재는 다른 디자인의 교복으로 교체된 상태다누렇게 변색하고 실밥이 어지럽게 엉킨 두껍고 긴 양말 또한 1990년대 유행했던이러한 복식의 흔적들을 통해 경찰은 시신의 사망 시점을 추정.


해저터널 백골 시체에 관한 뉴스 기사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집에 앉아 400km나 떨어진 통영 소식을 온라인상으로만 알아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주연은 시퍼런 새벽이 차오르는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며, 왼쪽 손의 검지 두 번째 마디를 앞니로 깨물었다. 고민에 빠질 때면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었다. 어느새 빗줄기는 멈추어 있었다. 장마철이라 몇 시간 후면 또 퍼붓겠지만.


지하철을 타고 남부터미널까지 가는 길, 주연은 통영행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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