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지하철을 타고 남부터미널까지 가는 길, 주연은 통영행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도망치듯 고향을 버린 지도 어언 수십 년이 흘렀다. 통영 미수동에서 버스를 타고 무전동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한 뒤, 밑창이 다 닳은 슬리퍼를 끌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때 주연은 창구에 앉아 있는, 자기보다 몇 살밖에 안 많아 보이는 여자 직원에게 지금 출발하는 버스 중에 가장 멀리 가는 버스표를 달라고 요청했었다.
“서울 가는 거 있다. 강남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 남부 아니디.”
“그거…. 어, 얼만데요?”
직원이 말한 가격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이 꼬깃꼬깃 구겨진 채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다른 데는요?”
“10분 뒤에 거제. 13분 뒤에 고성.”
거제는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옆 동네. 고성은 한 시간밖에 안 되는 더 가까운 옆 동네.
“아….”
“부산도 있다. 30분 뒤에.”
“아…. 안 되는데….”
부산은 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거제가 나으리라. 부산은 오빠가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 오빠의 나와바리였으니까. 우물쭈물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던 주연에게 직원이 관심을 보였다.
“왜 지금, 당장, 멀린데?”
“그게….”
뜸 들이는 주연을 힐끔 쳐다본 직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미심장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주황색 종이를 쭈욱, 찢었다. 직원 언니의 눈빛은 대충 예상한다는 거 같았다.
“있는 돈 다 줘봐라.”
국가 유공자 우대 할인이 찍힌 표였다. 주연은 허겁지겁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꺼내 창구로 밀어 넣었다. 그래도 몇백 원이 모자랐지만 직원 언니는 괘념치 않나 보았다.
“빨리 띠 가라. 1분 뒤에 출발이다.”
“고, 고맙습니다!”
해묵은 날에 도망치던 어린 자신을 떠올리며 통영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주연은 민정에게 DM을 보냈다. 「나 지금 통영으로 출발해.」를 수신한 민정은 주연에게 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도착하면 연락하라는 메시지도 동봉하여.
유공자 표를 끊고 상경하던 날 보았던 창밖은 온통 어둠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가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늘도 땅도 푸르다. 주연은 눈을 감고 새벽에 자지 못한 잠을 청했다. 휴게소에 한 번 들렀고, 도착은 거의 정시였다. 길다고 생각했던 네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리고 터미널은 무전동이 아니라 통영 광도면 죽림이라는 생소한 동네에 있었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고향을 방문한 적 없으니 알 리가 있나.
“후딱 날아왔네?”
터미널로 마중 나온 민정이 알은체하며 팔을 마구 흔들었다.
“빨리 왔지?”
“어. 엄청.”
인스타로 민정의 현재 모습을 보아왔던 터라 크게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친구의 얼굴은 삽시에 익숙해지기가 어려웠다. 주연은 민정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하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중간에 휴게소 들러서 네 시간이지, 안 들렸으면 세 시간 40분 정도밖에 안 걸리겠더라고. 예전엔 진짜 오래 걸렸던 거 같은데.”
“예전에 언제? 아, 맞다. 우리 초딩 때 수학여행 서울로 갔제?”
“응. 그랬지.”
그때는 여섯 시간이었던가, 일곱 시간이었던가? 주연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었다.
“오늘 곧장 올라가는 거 아니제?”
“응. 며칠 머무를 것 같아.”
“며칠이나?”
“어. 오랜만에 왔으니 여기저기 둘러보려고.”
“직장은? 휴가 냈나?”
“아니, 가끔 출근하고 보통은 집에서 일해.”
“아, 그렇나? 근데 느그 집 아직도 운하맨션이가?”
“어…. 음. 몰라.”
집을 떠나곤 연락도 안 해봤고, 집에서도 주연을 찾지 않았다. 아니, 찾았는지 찾지 않았는지 주연은 모른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누군가가 행적을 감추면 그대로 사라질 수 있는 시대였으니까.
“그라몬 어디서 잘 낀데?”
“너희 집 만화책방 아직도 해?”
“요즘 누가 책방에서 만화책을 보노? 요즘은 애고 어른이고 핸드폰으로 웹툰 보제. 근데 마, 니 서울말 좀 쓰지 마라, 오글거린다.”
“그랄까?”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투리 억양을 좀 고쳐보라고 말을 얹더니, 고향 친구는 서울 억양이 느끼하다고 인상을 찌푸린다. 주연은 피식 웃으며 민정을 쳐다봤다. “이리 말하믄 되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비웃음이 터졌다. 웃음을 갈무리한 민정이 주연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 됐다. 고마해라. 니는 어찌 된 게 사투리가 더 오글거리노.”
“미안.”
“와? 근데? 또 우리 집에서 알바 할라꼬?”
“아니. 거기서 가끔 자고 했던 기억이 나서….”
“만화방은 벌써 접었지. 지금은 내가 그 자리에서 피자 가게 한다 안 카나.”
“아….”
“아무튼 어데서 잘 낀데?”
주연은 오늘 길에 검색해 봤던 숙소를 몇 군데 보여주며 “어디가 괜찮은 거 같아?”하고 충무에서 나고 통영에서 자란 현지인의 의견을 구했다.
“됐다, 마. 느그 집에 가서 자는 거 아니면 고마 우리 집에 와서 자라. 우리 신랑 목포에 무슨 연수 받으러 갔다 아이가.”
“해경이라고 했던가?”
“어. 맞다. 기억하네? 무튼 다음 주말까지 나랑 우리 머슴아밖에 없다. 가자, 가자.”
주연은 민정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집으로 갔다.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충무교를 건너 도착한 봉평동은 여전했다. 네 남매 중 장녀였던 민정은 소싯적 부모님과 살던 아파트를 물려받아 남편과 아들, 그렇게 셋이 지지고 볶고 산다고 했다.
12층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신기하게도 예전 그대로였다. 베란다 유리창을 화폭 삼아 가까운 곳엔 잔잔하게 굽이치는 바다와 먼 곳엔 반대편 육지 마을이 내다보였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지났다. 변한 것이 지천인데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스친다.
어린이집에 갔다가 돌아온 귀한 외동아들의 점심을 먹이며, 민정은 주연에게도 늦은 점심을 차려주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준비한 반찬이 없다고 민망해했지만, 하루가 멀다고 늘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주연에게 집밥은 그 자체만으로 진수성찬이었다. 주연은 다 먹은 그릇을 흐르는 물에 대강 헹구곤 식기세척기에 가지런히 넣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거기 가 볼라고 하제?”
“거기?”
“해저터널.”
“아, 응.”
“나중에 밤에 동진이 재워놓고 내랑 같이 가자. 낮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못 들어간다. 해 지면 몰래 숨어서 들어가 볼 수는 잇꼬.”
“아….”
하긴 보수공사를 하다가 시체가 발견되었으니 오죽하랴. 주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만 나갔다 올게.”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부터 민정은 종우아파트에 살았다. 200세대에 한참 못 미치는, 단 두 동만 서로 마주 보는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약간만 걸어가면 봉평 오거리가 나왔다. 주연이 알바하던 민정이네 만화책방도 오거리에 위치했다.
거기서 조금만 더 충무교가 있는 육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운하맨션이 나타났다. 150세대 정도에 딱 한 동만 세워진, 제대로 된 놀이터도 없던 아파트는 그네와 미끄럼틀 그리고 정글짐이 있던 종우아파트보다 바다와 근접해 있었다.
20세기에 살던 어린 주연의 삶은 퍽 박복했다.
인천에서 태어나서 대구에서 자라다가 통영에 자리를 잡은 그녀의 부친 심진섭은 지금은 창원에 흡수된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란 박차영을 만나 통영으로 데려와 터전을 잡았다. 둘은 사랑해서 세간을 합쳤지만, 진섭과 차영의 결혼 생활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진섭은 배를 탔고 3개월에서 6개월에 한 번 귀가했다. 바다로 나가면 비록 선장이 아니어도 돈은 잘 벌었다. 하지만 그 돈은 정기적으로 입금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진섭을 태운 배가 항구에 닻을 내리고, 실어 온 생선이 경매로 다 팔려야 현찰로 손에 쥘 수 있는 돈이었다. 하여, 차영은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식당에서 서빙이라도 해야 했다.
둘만의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 지 2년이 지나고, 차영에게 아이가 들어섰다. 바다의 모진 바람과 자비 없는 햇살에 20대에도 30대처럼 보이던 진섭은 순수하게 기뻐했다. 아빠인 자신을 똑 닮았다며 어서 돈을 모아 선주가 되고 싶어 했다.
평범하게 찾아온 행복은, 실은 불행의 씨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