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엄마와 오빠
평범하게 찾아온 행복은, 실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동사무소에 출생신고서를 제출하고 동네 병원에서 예방 접종을 하며 날짜 수를 세는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진섭이 육지를 밟았던 계절과 아이가 들어선 날짜가 무려 석 달이나 차이가 났다. 진섭의 성씨를 따 ‘심주연’이라고 이름을 지은 딸이었다. 산부인과 의사의 말로는 만기 정상 분만이라고 했다. 어금니가 갈리는 배신감에 진섭은 치를 떨었다. 그때부터 차영에게 손찌검을 일삼고, 부부가 차곡차곡 모은 살림살이는 산산이 부서져 노란 장판 위를 나뒹굴었다.
차영이라고 전혀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바보 천치 만쿠로 아무것도 모리고 있을 줄 알았나? 배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면 그날 곧바로 집으로 온 적 있나? 있나? 없제? 범석이 아부지도 집에 왔다 쿠고, 수영이 삼촌도 집에 왔다 카는데, 니는 사흘 나흘 어디 가서 누구랑 뭐하고 놀았노?”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곳이 어딘지는 알았다. 항남동에 있는 룸살롱 거리. 거기서 밤이고 낮이고 해롱해롱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아가씨들 젖가슴을 주물럭거리고 있다고 뱃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다.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새빨간 빛이 반짝이는 그 거리로 뛰쳐나갔다. 차영의 시야를 비집고 들어온 진섭은 휘청거리며 비틀거렸다.
진섭이 먼저 잘못했고, 차영도 큰 잘못을 저질렀다. 배신은 쌍방에서 이루어졌지만, 둘은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고 오롯이 상대만을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원래 고추 달린 새끼들은 다 그래!” 진섭의 핑계였고, “좆 달린 게 그리 자랑이가? 니캉 내캉 다른 게 뭐가 있노?” 차영의 변명이었다.
“씨발년이 달린 입이라고 못 하는 말이 없노? 니가 그라니까 내가 밖으로 나돌았지. 펑퍼짐하게 드러누워서 만날 드라마나 쳐보고….”
“드러눕기는 누가 드러누워? 내가 집에서 놀았나? 니가 생활비도 제때 안 줘서 만날 나가서 오봉이나 나르고….”
치부가 다 드러난 상황에서 부부간 신뢰는 처절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차영은 숨을 고르며 진섭의 눈을 마주했다. 그 눈동자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증오와 실망이 지독하리만치 서려 있었다. 진섭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불행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했다.
주연이 세 살이 되던 해였다. 4개월 만에 하선한 진섭이 일주일 내내 술잔에 코를 박고 항남동을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온 날이기도 했다. 진섭은 차영을 바람난 년이라고 비방했다. 차영은 진섭을 향해 계집질에 정신 나간 놈이라고 헐뜯었다. 밥상이 엎어지고, 다 식은 밥알과 국물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 얼굴을 파묻고 있던 주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목청껏 지르는 비난이 점점 커질수록 집 안은 정비례로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진섭은 깨진 그릇 조각 위를 맨발로 걸었다. 유리가 박히고 피가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영의 머리카락을 국수면 말 듯 둘둘 휘감아 집 안 이곳저곳을 끌고 다녔다. 굳은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박인 손바닥으로 뺨을 내리치고 시큼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발로 배를 걷어찼다.
공벌레처럼 몸을 만 주연의 초점 없는 눈동자 위로 장판에 새겨진 무늬가 비쳤다. 숨을 죽이고 바들바들 공포에 떨었다. 비명을 내지르는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먼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아빠는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는 괴물이 되어 불기둥을 뿜고 있었다.
지친 아빠는 잠이 들었고, 눈두덩이가 부어오르고 입술이 터진 엄마는 그길로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주연이 가진 최초의 기억이자 ‘엄마’하면 떠오르는 유일한 기억이었다.
엄마의 부재. 그리고 아빠의 뱃일. 일가친척이 없던 주연은 잠시 보육원에 맡겨졌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주연은 보육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침묵 속에 시간을 죽였다. 방바닥의 장판 무늬는 부모님과 살던 집 거실의 것과 달랐다. 하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늘에서 떨어진 다 식은 국물이 바닥 무늬를 따라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곳에 있는 언니·오빠들은 늘 날이 서있었고, 선생님은 무서웠다. 그곳에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악의라곤 있을 수 없는 주연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기분이 들게 했다.
보육원에서의 여름은 당연히 덥고, 겨울은 당연히 추웠다.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은 주연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찾아왔다. 주연에게 새엄마가 생긴 것이다.
“병진이라고 한다. 이병진. 오늘부터 니 새 오빠다.”
새엄마가 새 오빠를 소개해 주었다. 새엄마와 오빠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새엄마의 고향은 아빠와 같은 인천이라고 하였고, 오빠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주연을 돌보아 줄 보호자가 생긴 덕에 아빠가 뱃일을 나간 동안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주연은 행복했다.
새엄마는 화려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제일 먼저 얼굴에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렸다.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에 로션을 묻혀 뺨과 이마를 마구 때리고 그 위에 허옇게 분칠했다. 얼굴과 목 색깔이 달라 언뜻 보면 마치 가면을 쓴 거 같았다. 연필을 들고 갈매기처럼 눈썹을 그렸다. 희한하게 눈을 반쯤 뜨고 속눈썹을 자꾸 위로 빗었다. 한참 뒤에 입술을 시뻘겋게 칠하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서너 번 비벼댔다. 주연은 멀찌감치 앉아 점점 뚜렷해져 가는 새엄마의 이목구비를 구경하는 게 하루의 낙이었다.
새엄마는 아빠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주연의 국민학교 입학식에 와서 사진도 찍어주었고, 현상한 사진을 일일이 앨범에 꽂아주기도 했다. 예고도 없이 비가 오던 하굣길엔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주연을 기다려 주었다. 처음엔 “저기요.” 하던 주연도 나중에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엄마.”
“응, 우리 딸.”
콩쥐팥쥐, 신데렐라, 백설 공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계모와는 달랐다. 커다랗고 딱딱한 가방을 들고 다니며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던 새엄마 김순옥은 그 당시 어린 주연이 아빠 심진섭보다 따르고 의지하고 좋아하던 어른이었다.
주연의 관점에서, 부서진 가족이 재결합한 이 가정의 제일 큰 문제점은 새 오빠 이병진이었다. 병진은 주연보다 한 살 많았다. 고작 몇 개월 더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로 병진은 동생에게 대접받으려 했고, 동생을 통제하려 했으며, 동생 위에 군림하길 원했다. “7번 틀어라.” 주연은 병진의 리모컨이었고. “물 갖고 온나.” 시종이었으며. “기분 잡쳤네. 야, 니. 이리 온나. 딱 열 대만 맞자.” 농담이 아니라 진짜 샌드백이었다.
“엄마…. 오빠가….”
훌쩍거리며 순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와, 와? 무슨 일이고?”
“고마 장난치는 기다. 나간다매? 안 나가나? 빨리 가라.”
병진은 능청스럽게 순옥의 등을 떠밀었다. 순옥이 대놓고 주연과 병진을 차별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알게 모르게 팔은 늘 안으로 굽었다.
“장난 적당히 치라, 둘 다. 그라다 진짜 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