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책임무능력자
해준은 발바닥에 힘을 빼고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았다. 세단은 순하게 밀려드는 밤바다의 낮은 파도처럼 정지선 직전에 멈추었다. 빨간불이었다. 해준은 밤하늘에 뜬 붉은 점을 고요하게 응시하며 녹색 불로 바뀌기를 기다렸고, 기다림이 끝나는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예, 어머니.”
해준은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며 본가에서 걸려 온 전화 통화를 수락했다.
“쭈나.”
차량 스피커를 통해 모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니 주연이라고 기억하나? 심주연이라 카던데.”
심주연? 아…. 흔하디흔한 이름 앞에 붙은 특이한 성씨 덕분에 금방 떠올랐다.
“예, 어머니. 기억해요. 알아요, 누군지.”
왕따. 만날 애들한테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 학교를 그만둔 등신. 바보. 멍청이.
“가가 오늘 미용실로 내를 찾아왔데이.”
“어머니를요?”
“어. 머라 머라 카던데, 무슨 얘긴고 하나도 못 알아듣겠드라.”
“혹시 저를…. 절 물어보던가요?”
“어어. 쭈니 니도 물어보더라.”
“뭐라고 묻던가요? 어머니는 뭐라고 대답하셨는데요?”
해준은 다음날 휴가를 냈다. 예고도 없이 신청하는 휴가였지만 결재는 쉽게 났다. 노트북만 있으면 vpn을 통해 회사 건물 밖에서도 내부 네트워크에 안전하게 접속할 수 있으니 팀장의 물리적인 부재가 팀 프로젝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급한 불이 나면 그때그때 접속해서 끄면 된다.
이른 아침, 해준은 본인 소유의 자동차가 아닌 앱으로 호출한 택시를 얻어 타고 공항으로 갔다. 제주발 사천행 비행기표는 일단 편도였다.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겠지만 갑자기 발견된 시체와 별안간 방문한 주연의 등장같이 또 무언가가 난데없이 해준의 일정을 꼬아버릴 수도 있기에 마음 편히 편도로 예매한 거였다.
국제선을 타고 출장 갈 때면 비즈니스석이건 이코노미석이건 반드시 복도 쪽을 고집한다. 하지만 이륙과 동시에 승무원이 제공하는 음료를 마시는 순간 눈 깜짝할 새 착륙하고 마는 단거리 국내선 비행은 평소에 보지 못하는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구태여 창가석을 지정했다. 물론 옆좌석에 앉은 어린아이가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밀면 이따금 명당을 양보해 주기도 하지만.
주중이라 그런지 기내는 퍽 한산하다. 띄엄띄엄 앉은 탑승객들의 정수리가 통영 앞바다에서 볼 수 있는 군도 같다. 창가에 앉은 해준은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렸다. 간만에 비가 내리지 않는 하루의 시작이랄까. 맑게 갠 아침 해가 조그마한 유리창을 통해 기내로 스며든다.
햇살이 앉은 뺨을 문지르며 해준은 오래전 자기가 알던 중학생 심주연의 모습을 떠올렸다. 작은 얼굴에 꽉 들어찬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가여우리만큼 처진 눈썹과 입꼬리. 가늘고 낮은 콧등 위로 햇볕에 그을려 생긴 옅은 주근깨가 군데군데 모래알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기분이나 감정을 딱히 표현하지 않던 아이. 눈에 띄는 특징이랄 게 있다면 그건 엄청 좁은 어깨가 아니었을까. 곁에 머무르며 자세히 관찰하니 좁아터진 어깨는 체형이 아니라 잘못 들인 습관 탓이었다.
인평중학교 2학년 1반의 김해준은 선도부였다. 조용조용한 성격에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흔하디흔한 외모로 태어난 까닭에 첫인상이 다소 흐릿하다는 평을 받지만, 유달리 좋은 두뇌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그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비록 시선을 사로잡는 외양 따위는 없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우라 같은 게 풍겼다.
해준은 또래보다 더디게 성장했다.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시기에 겪게 되는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는 과정이 어지간히 늦게 발현하였다. 해준의 키는 급격하게 자라지 않았고, 근육이 발달하고 체지방이 줄지도 않았으며, 체모도 나지 않았다. 성장이 빠르고 뚜렷한 친구들은 초등학교 5~6학년에 벌써 턱과 볼에 수염이 얇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변성기를 자연스레 겪었지만 해준의 목소리는 중학교 내내 미성을 유지했다.
모친의 손을 잡고 방문한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교수는 16세 그러니까 만 14세까지는 더 기다려도 된다는 소견을 내었다. 모친은 사별한 남편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여주며 유전일 수도 있냐고 물었고, 의사는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모친의 얼굴에서 아주 조금 걱정이 덜어졌다. 본인의 지연된 이차 성징에 관심이 없던 해준은 약간은 편안해진 듯한 모친의 표정을 보며 다행이라고 여겼다.
서울에 올라온 참에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도 방문했다. 해준이 아홉 살 때부터 보아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였다. 서울에서 국민학교 1학년을 다니던 시절의 해준은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고의성은 해준 본인만 알지 세상은 그의 행동을 실수라고 여겼다. 그리고 범행 당시 해준은 절대적 책임무능력자로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형사미성년자였다. 그렇기에 고의이건 실수이건 법적으로는 논의가 무가치하였다.
해준의 모친 권혜자는 담당 전문의에게 그날 서울에 방문했던 이유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해준의 반에서 변성기가 찾아오지 않은 아이는 자기 아들이 유일하다고. 혹시 정신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 거냐며.
담당 의사는 아이가 가지고 타고난 유전자와 주변의 환경, 섭취하는 음식, 그리고 정신적인 요인이 매우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하였고, 대학병원에서 만난 그 교수가 때가 되면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할 테니 당장은 사서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권혜자를 안심시켰다.
해준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아이였다. 성미가 유한 듯하면서도 때론 칼 같은 데가 있었다.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왜소해서 만만해 보이다가도 그의 말씨에는 어딘지 모르게 무시하기 어려운 뼈가 있었다.
권혜자가 진료실 밖으로 퇴장하자 모니터를 사이에 둔 책상 앞엔 해준과 소년의 주치의, 둘만 남게 되었다.
“경남 통영으로 이사했댔나?”
부친이 죽고 또 해준으로 인해 누군가가 사망하고 나서, 서울에 살던 두 모자는 권혜자의 친정이 있는 통영으로 내려갔다. 남편과 사별하기 직전까지 가정주부였던 권혜자는 한평생 고향에 뿌리를 내린 노모의 미용실을 물려받았다.
미용 업장의 업주가 되려면 미용사 자격증이 필요했기에 반년 가까이 미용 수업을 제공하는 직업전문학교에 다녔다. 비록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가슴에 간직한 뜨거운 학구열 덕에 필기는 단번에 통과했다. 한데 실기는 몇 차례의 쓰디쓴 고배를 마신 후에야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예. 통영요.”
“어때 거긴?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아요. 많다고 다 좋은 게 아니잖아요?”
“그래. 맞는 말이야.”
“….”
“적응은 잘하고 있니? 그런데 사투리를 전혀 안 쓰네? 친구들이 안 놀려? 말투 때문에? …괴롭히거나.”
“누가요?”
누가 감히 날 괴롭힌단 말인가. 해준은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억양을 바꾸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걸음걸이도 바꾸고 양손을 자유자재로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그저 서울말을 쓰면 반 친구들이 호의적으로 대해 줘서 의도적으로 사투리를 쓰지 않는 거였다. 해준은 빛의 99.9%를 흡수하는 반타블랙 같은 눈동자로 정면에 앉은 의사를 주시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응?”
“제가 최근에 프로이트의 강연을 옮겨 놓은 책을 구해서 읽었거든요.”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
“그래? 우리 해준이 대단한데?”
“음? 그게 왜 대단해요?”
“중학교 2학년이 흥미를 갖고 읽을만한 내용의 책이 아니니까.”
“전 꽤 흥미로웠어요.”
“어떤 점에서?”
“제가 읽은 책의 일부 강의는 실수와 무의식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더라고요. 무의식적인 욕망이나 억압이 어쩌다 생긴 작은 균열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지를요.”
“….”
“실수. …실수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저지르는 일상적인 실수를 자세히 관찰하면 그 사람의 무의식을 해석할 수 있대요.”
“그렇지. 프로이트의 이론이지.”
“선생님.”
“응?”
“저는 그날 실수로 사람을 밀쳤잖아요.”
실수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그 파렴치한 짐승의 면상을 고작 여덟 살이던 해준은 모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부장이었던 개새끼는 검은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병원 지하실에 마련된 장례식장에 들렀다. 조문록을 작성하고 부의(賻儀)라고 적은 조의금 봉투를 전달한 그는 염치도 없이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향을 피웠다.
가증스러웠다. 해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천편일률적으로 뛰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요동치다가 마치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끝도 없는 암흑 속으로 빨려드는 감각. 추락한 해준이 멈춘 곳은 깡깡 언 고드름이 거꾸로 박힌 땅. 살을 뚫고 튀어나온 뾰족한 얼음 조각. 뚝뚝, 시뻘건 피가 흘러 그대로 고드름과 함께 꽁꽁 얼어버리는 그런 느낌. 한마디로 고요하고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