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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얼티밋 Aug 22. 2021

25.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굳이 이렇게까지



 크리스마스 이틀 전, 수지와 에런은 크리스마스 만찬 리스트를 작성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리스트가 아주 길어보였다. 집마다 다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만찬을 성대하게 치르는 집도 있고, 당일 저녁 만찬을 챙기는 집도 있다고 한다. 에런네는 당일 오전부터 요리를 시작해서 당일 저녁을 거하게 챙긴다고 했다. 이브는 선물 준비를 마치고 선물 배달로 배고플 산타를 위한 쿠키를 굽는 날이란다.



 영국에서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명절이라면 한국에서는 과연 추석일 것이다. 중요성뿐 아니라 비슷한 강도의 노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다만 추석상을 준비할 때는 당일이 아니라 연휴에 거의 모든 요리가 끝난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양념이 필요한 음식들은 며칠 전에 미리 시작되지만 대부분은 전날 준비가 끝나니 말이다.


 아마 크리스마스의 중요한 식사는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기 때문에 당일 준비가 가능한데다, 당일 아침에는 주로 교회를 찾는다는 점 때문에 추석과 차이가 있는 것 다(추석은 아침상, 그것도 거의 새벽에 조상들을 위해 치러지는 제사상이 메인이라 요리는 전날 모두 끝나야 한다).




 나는 종교도 없고 딱히 크리스마스에 의미를 두고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선물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에런에게 있어 이브날까지 끝마쳐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완벽한 선물을 완벽하게 포장하여 세팅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웃들에게 줄 선물까지도 몇 주 전에 미리 구입하여 예쁘게 포장하고 카드까지 동봉하여 돌렸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그녀 어머니와 남편의 선물도 고심 끝에 골랐다.


 평소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고르는 일은 물론 즐거운 일이지만 여러 명의 선물을, 많게는 수십 명의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는 일 그리고 나중에 슬그머니 따라올 선물에 대한 평가와 통장잔고까지 신경쓰는 것은 적잖은 스트레스처럼 보였다. 그녀가 끙끙대면서도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한 행동이 스트레스이자 일처럼 느껴진다면 계속 해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전통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고마움을 받는 사람은 상대가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양쪽 모두 지속할 이유가 없다. 평소에 양쪽 다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소소한 마음 표현이 낫지 않을까.


 에런에게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어서 그녀가 크리스마스 선물 압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곁에서 지켜본 그녀가 스트레스 받는 것을 보며 내가 추측한 것일 뿐이다.


 완전 헛다리 짚은 것일뿐이고 사실 그녀가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당사자가 받는 스트레스보다 타인에게 선물을 줌으로써 받는 보람이 더 크다면- 지속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누군가가 있다면 '전통이니까', '눈치 보이니까' 같은 의미 없는 말에 별 뜻 두지 않고 본인 의지에 따라 그만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전통을 파괴하는 일 또는 추억을 없애는 일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맞다. 어쩌면 내가 지나친 실용주의와 편리주의를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려서 비뚤어진 명절 풍경을 보고 자라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노동에 유독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전통일지라도 노동과 편익을 계속 저울질하게 된다. 이 정도의 노동을 들여 준비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판을 벌이는 것뿐 아니라 나중에 치우는 데 드는 고생은 얼마나 될 것인가, 이걸 다 감수하고 내가 얻을 기쁨이 판을 벌이고 치우는 데 드는 노동보다 클 것인가.


 내 기준에서 대부분의 명절은 수지가 맞지 않는 노동이었다. 이런 말 하면 욕 먹으려나, 하지만 내게는 제사도, 추석도, 설날도 별 의미가 없다. 전통 의례를 다 챙기던 시절의 추석 연휴는 기쁜 날, 감사하는 날이 아니라 일하는 날이었다.


 요즘은 추석에 놀러가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진다고 추석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몇몇 사람들도 있던데 전통을 지키기 위해 투입하는 노동에 비해 당사자가 얻는 게 없다면 자기들 사정에 맞게 전통을 수정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두 눈으로 전통 지키려다 집의 평화가 깨지는 걸 봤더니 전통보다는 부부의 또는 가정의 화목이 우선이고, 그걸 위해 제사상 차리기보다 해외여행을 택하는 사람들도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벽난로 옆 진짜 나무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빛나고 그 아래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포장지에 싸인 갖가지 형태의 선물들이 놓였다. 나도 별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가져간 크리스마스풍 수면양말 몇 개를 포장해서 섞어놓았다.


 에런의 어머니 수지는 모두를 위한 크리스마스 스타킹을 손수 만들어왔고 그 중에는 내 것도 있었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으니 마음속에 따스한 고마움이 들었다. 금색 구두 모양인 이 크리스마스 스타킹은 나와 함께 고이 비행기를 타고 와 지금도 옷장 서랍 한 켠에 누워있다.



 와인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 무릎에는 털 담요를 올린 채 크리스마스 이브 분위기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산타를 위한 화이트 와인과 쿠키 쟁반은 벽난로 앞에서 밤에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크리스마스를 기꺼이 나와 나눠주기로 한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벽난로와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 스타킹, 와인 같은 것들이 내게 손을 뻗어 환영해줄 때, 그리고 자연스레 녹아들어 나도 그들을 맞을 때 묘한 비현실감이 느껴진다. 손 안의 와인과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은 목 뒤에서 은근히 뒤섞여 옅은 피로감을 만들어.


 공기 중에는 크리스마스의 마법 같은 따듯함이 장작불의 온기와 와인의 새콤함에 섞여 감돌았다. 나른하게 축 쳐졌다. 소파에 엉덩이만 간신히 걸친 채 주욱 늘어져 옆에는 나와 담요를 공유하는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편안한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와인 마시고 루돌프 썰매 운전하는 건 음주운전 아닌가?루돌프가 알아서 가는 건가?집집마다 돌면서 와인 한 잔씩 마시면 노르망디쪽만 돌아도 하루밤새 몇십 병, 아니 몇백 병 마시는 게 될 텐데 그쯤되면 와인을 마시는 게 아니라 와인 잔을 깨면서 다니겠는데' 같은 생각을 하며 산타는 북극에 사니까 알코올 분해 능력이 보통 인간보다 한참 좋은가보다 하고 산타의 알코올 분해능력에 감탄하는 바보같은 잡생각의 연속이었다.


 곧 와인이 만들어내는 이런저런 헛소리 끝에 피곤해져서 10시쯤 이른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계단을 도도도 내려가는 바이올라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밖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창문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방 문을 열었다. 계단참에 서자 1층 거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거실에는 모두가 이미 모여있었다. 바이올라의 선물 몇 개는 벌써 풀어져 있었고 벽난로에는 내 스타킹만 홀로 걸려 있었다. 각자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서 자기 이름이 쓰인 선물을 가져갔고 나는 벽난로에 걸려있는, 전날 밤과는 다르게 속에 무언가 잔뜩 들어있는 것처럼 부푼 스타킹을 가지고 구석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에런의 가족들은 각자의 선물을 풀어보며 기뻐하고 축하했다. 나도 함께 박수를 치고 기쁨을 나눴다.



 나는 조용히 스타킹에 들어있던 선물을 혼자 풀어보았다. 안에는 작은 선물들과 초콜릿, 간식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살다살다 연고 하나 없는 타지에서 이런 친절까지 받아보는구나. 에런에게 고개를 돌려 고맙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물... 벌써 풀어봤어?”

 “응, 고마워.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지내는 건 처음이라 이런 것도 처음이네.”


 그리고 내가 별 말을 덧붙이지 않자 그녀는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선물 마음에 안 들어..?”     



 나중에, 귀국하고도 한참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혼자 선물을 풀어보는 일은 크리스마스 금기라고 한다. 서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선물을 모두 앞에서 하나씩 풀어보고 소감을 말하고 선물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게 크리스마스의 전통이라고 한다. 다 함께 축하하고 기쁨을 나눈다는 것 같다(집마다 차이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도 몰랐고, 내가 에런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는 상황이라 그녀가 베푼 친절은 고마움과 함께 부담을 가져왔다.



 사실 부담을 느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도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길 바랐을 것이다. 여름에 방문했을 때도 그녀는 워커웨이어들이 그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길 바랐다. 심지어 하루는 내게 혹시 아침에 알람을 맞춰놓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에런은 내가 기상시간에 스트레스 받으며 알람 소리에 인위적으로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알았을텐데 그때는 그저 고마워하고 기뻐하면 될 것에도 혼자 부담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행복을 스트레스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그 무안함과 부담감에 혼자 조용히 선물을 풀었고, 에런은 그 이유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 어색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대로 말해주고 싶다. 그때 사회성 없는 어린애였던 내가 표현도 소통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다고. 이상한 부분에서 혼자 끙끙대던 나 때문에 에런이 고생한 거라고 말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에게서 받는 그 정도의 친절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또 깊이 고맙다. 에런은 친절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녀의 친절 덕에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배웠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실재한다는 것도, 세상에 배울 어른이 꽤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에런에게 고맙다는 말은 자주 했지만 왜인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다. 본인은 내게 이런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모르고 있겠지만 에런과 함께 있는 동안 배운 것도, 느낀 것도 참 많다. 여기서 고맙다 말해봤자 자동으로 번역되어 그녀에게 음이 전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여행기에 그녀에 대한 감사함을 명확히 적어두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나 빼고 그들은 진짜 가족이었다. 


 가족의 상징인 크리스마스에 내가 낄 수 없는 장벽이 생겨버린 것 같았다. 엄마와 딸, 손녀까지 모인 완벽한 가족 틈에서 내 위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쪽을 택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잘못된 선택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던 거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무관심한 것으로 보이거나 무례해 보일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내가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 적도 많을 것이다.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방해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웃고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제안했어야 했다.


 내가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 가족의 친구인지, 에런의 친구인지, 그저 손님일 뿐인지 헷갈리다가 결국 어정쩡한 포지션을 택해버렸다. 선물 개봉식도 어설프게 박수치고 축하해주는 정도로 내 역할을 한정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바이올라의 함박웃음에 나도 미소가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이 가족의 거실에 침입해 들어온 외부인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한 발 더 들어갔다가 선 넘어버리는 건 아닐지 함부로 친근한 모습을 보이기가 두려웠다. 생각해보면 열 발 쯤 더 들어갔어도 괜찮았다. 에런은 내가 더 들어올 수 있게 문울 활짝 열어놓고 있었는데 내가 문턱 앞만 맴돌고 있었던 격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무게중심이 없으면 누군가의 친절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엄청난 양의 노동을 요구했다. 추석과 다를 바 없었다. 대만찬을 위해 아침식사 부터 요리가 시작됐다.


 칠면조 오븐구이, 크랜베리 소스, 버터에 볶은 당근과 콩, 머스타드와 파마산 치즈를 뭍혀 바삭하게 튀기듯 구워낸 파스닙, 로스트 포테이토, 방울 양배추와 베이컨 볶음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다.


 당연히 나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정리와 설거지 담당이었다. 제사음식을 돕는 어린 아이처럼 몇 시간 동안 설거지를 하며 음식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굳이 이렇게까지..?'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너무 편리함만 우선시하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일년에 한 번이고 그들 문화권에서는 이 정도 고생을 할 가치가 있는 가족의 대명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 중 일부(주로 여성, 여기서는 에런과 수지(+도우미 나)가 거의 모든 일을 떠맡았다. 에런의 새아버지는 자연스럽게 포함되지 않았다.)에게만 치우친 노동과 어마어마한 노동량은 굳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섯 살 아이와 나를 포함해 우리는 겨우 다섯 명이었고 방문할 손님도 없었다. 하지만 사진 속 테이블(여름에 워커웨이어가 많았을 때는 여덟 명을 수용했을 정도의 크기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음식을 만들었고 당연하게도 음식은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냉장고에서 서서히 상해가기 시작했다. 물론 상하기 전까지 최대한 끝내기 위해 다들 간힘을 써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이는 여전히 낭비의 경계선을 밟고 서있는 것 아닌가 싶다.


 한 끼 요리에 쓰일 식재료에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크리스마스 당일은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낸다. 다이닝룸을 치우고 꾸미고, 요리를 하면서 끊임없이 더러워지는 주방을 치우면서 동시에 요리를 계속해나간다. 앉을 새도 없이 일 뒤에 일이 있고 주걱이나 칼처럼 자주 쓰이는 도구들은  설거지통에 들어갔다가 바로 다시 출격했다. 상을 닦고, 그릇을 닦고, 쓰지 않는 채소 꼭다리를 잘라 닭장에 가져다주는 일의 무한반복이었다.


 마치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다시 다른 종류의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바닥 닦는 일의 반복 같았다. 이렇게 들인 노동의 편익이 고생보다 컸냐 하면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손님들 불러서 함께 식사를 즐긴다면 일 크게 벌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다섯 명이 전부였고 우리를 위한 크리스마스였던만큼 편리함과 조금 타협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냥 우리끼리 맛있는 밥 해먹고(만찬 말고) 영화 보고 수다 떨고 게임하고 이 정도만 했어도 충분히 즐거웠을 텐데, 판이 커지니 편익 대비 투입이 과하게 거대해지고 즐거움은 팍팍 깎다.


 이렇게 서양 크리스마스에 대한 내 로망은 추석 동화되며 깨졌다.




 테이블 세팅을 마쳤을 때는 오후 4시쯤 되어있었고 밖은 이미 어두웠다. 크리스마스 트리 조명과 몇 개의 전등, 식탁 위의 초들이 은은하게 다이닝룸을 밝힐 뿐이었다. 하루를 통으로 갈아넣어 만든 요리들은 식탁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며 기대를 올리고 있었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짧은 감사 인사 후 음식을 조금씩 각자 접시에 덜었다.


 기대했던 칠면조는 퍽퍽한 무無맛으로 나를 놀래켰다. 먹음직하게 생긴 노릇한 껍질 속 흰 속살은 닭가슴살을 먹는 것 마냥 건조하고 텁텁했다. 크랜베리 소스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육류에 과일 소스를 얹어먹다니 처음에는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칠면조를 입에 넣고보니 뭐라도 맛이 존재하는 게 절실히 필요했다. 확실히 같이 먹는 게 훨씬 나았다.



 오븐에서 바삭하게 튀겨진 로스트 포테이토와 치즈 파스닙, 버터 향이 물씬 나는 당근과 방울 양배추 등은 잊지 못할 만큼 맛있었다. 당근과 방울 양배추 같은 것들은 원래 쳐다도 안 보지만 버터에 베이컨과 함께 볶으니 감칠맛이 나면서 살짝 달달한 게 참 맛났다. 치즈 파스닙은 고구마 스틱에 파마산 치즈를 뭍혀 튀기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맛이었다. 바삭하면서 적당히 달고 적당히 짭조름했다.



 어둑어둑한 창문과 밝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다이닝룸의 꼬마 전구들과 초가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생고생을 하긴 했지만 크리스마스 저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기쁨으로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일년 전 대학 강의실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때가 순간 스쳐지나갔다. 그때는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프랑스에 사는 영국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하며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친절을 받고 있을 줄이야.



 물론 그 순간까지도 고마움과 부담감, 내 위치를 모르는 혼란에 마음 뒤숭숭했다.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도 몰랐다. 반 정도는 엄청 행복했고 반 정도는 불안했다. 에런에게 받는 친절이 커질수록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더 안절부절 못하는 기분이 되었다. 다시 가면 정말 잘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에런을 더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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