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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rene Mar 04. 2020

상처가 대화에 미치는 영향

대화의 원리. 5화

가부장적이면서도 군대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상처가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들도 없진 않겠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부모님이 그러하시더라도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또래 친구와 선후배들의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개인이 얼마나 예민한지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명 어느 정도 이상의 상처를 받으며 성장한다. 


그 상처는 대화에 결정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는 내 생각을 말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식으로 반박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어렸을 때부터 칭찬은 거의 받지 못하고 항상 혼나면서 자란 사람들은 대화를 함에 있어서 말하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그걸 잘 받아들일까?' '내 안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맞는 일일까?' '그렇게 말했다가 틀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게 바보 같은 질문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얘기를 내가 하는 건 아닐까?'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런 생각들은 솔직한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어서 대화를 방해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달리 그러한가? 그렇다. 그건 학창 시절에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이나 유럽 학생들과 수업을 듣고 난 후에 상당수 한국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에서 드러난다. 미국과 유럽 학생들과 처음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상당수가 '걔네는 너무 헛소리를 많이 하고 말도 안 되는 주장도 그냥 막 말해'라던가 '걔네는 별 것도 아닌 거도 물어보고 질문을 정말 많이 해'라는 식의 반응을 한 번 정도는 보이거나 최소한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일단 말해보고, 자신이 모르겠는 것은 당당하게 물어보는 것은 그들 안에 상처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상처가 없거나 덜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언제든지 표현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고, 그 안에서 자신이 틀리더라도 그게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는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말을 못 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큰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그 표현 방식에서 상처가 드러난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짜증을 내고,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종종 화를 내는 사람들은 본인들은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들 안에 누적된 상처가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자신이 공격받고 평가받으면서 상처를 받았지만, 그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평가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큰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곡해해서 받아들임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 건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특정한 콤플렉스가 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그 콤플렉스를 건드리려는 의도가 아닌 지점에서도 상대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그런 사람들은  '너 오늘 옷빨 잘 받는다'라는 칭찬에도 '평소에는 내가 옷을 엉망으로 입었다는 건가? 옷빨이 잘 받는단 건 내가 원래는 별로라는 건가?'라며 걱정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평가받고 줄 세워지는데 익숙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항상 이겨야 한단 생각에 상대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일단 상대의 약점을 쥐어뜯는 경우도 있다. 자신 안에 있는 깊은 패배감과 그 패배감으로 인해 끊임없이 자신을 폄하하고 갉아먹으면서도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짓누르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적지 않게, 거의 모든 영역에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 


그건 사회적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만 갖고 있는 상처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직장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들도 경쟁만 강조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며 입게 된 수많은 상처들을 안고 지내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아니, 가부장적이면서 군대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는 사실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교육하고 경쟁시키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존하고 승리한 사람들은 상처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전투에서의 반복된 승리라는 마약에 취해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 우리나라의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과 성공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모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신은 승리하지 못하면, 틀리면 안 된단 강박관념은 그들 안에 엄청난 상처를 내지만 그들은 이를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간다.


그러한 상처들은 가부장적이면서도 군대문화가 있을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경쟁으로 보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강요받는 정답이 있다고 가르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사실 사회에 배출되기 전까지 모든 것은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육의 초점은 몇 명을 누르고 몇 점을 받아서 몇 등인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으며 그전보다 나아졌는지에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결과 중심적이고, 그것을 가부장제와 군대문화로 강요하고 그건 모두에게 작지 않은 상처를 남긴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왜 상대적으로 더 말을 잘하고 잘 들을까? 이는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상대적으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회와 국가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사회에서 조금 더 높은 비율로 아이들이 사과를 파란색으로 그려도 그건 틀린 것이라고 지적하기보다 '왜 그런 색으로 그렸어?'라고 물어준다면, 지금 당장 틀려도 그건 과정들이 쌓이면 바로 잡힐 작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상처를 덜 받을 것이고 그 결과 더 잘 말하고 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 안에 상처를 내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큰 손실을 야기한다. 이는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존중하는 문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의 정점은 지금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것들을 결합해서 말이 되게, 남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할 텐데, 누군가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말도 안 되어 보이는 것도 일단 존중해 줄줄 아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또 그런 사람이 나타났을 때도 사회적으로 잘 말하고 잘 듣는 문화가 자리 잡혀있어야 사람들이 그 지점을 잡아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전혀 없다. 남들이 개척한 영역을 빨리 따라잡는 기업은 있지만 애플,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면에는 우리나라의 문화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말하고 듣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잘 말하고 잘 들을 줄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문제는 말을 하고 듣는 과정에는 우리의 의식보다 무의식의 영역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데 있다. 우리는 평상시에 반사적으로 말하고, 상대의 말에도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우리 무의식의 영역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의식의 영역이 상처로 가득한 사람은 절대로 잘 말하고 잘 들을 수가 없다. 상처가 없는 피부에 말을 부으면 아프지 않지만, 큰 상처 위에 물을 부으면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 내면에 상처가 가득한 사람은 상대의 말을 잘 들을 수도 없고 상처에서 시작되는 말이 좋은 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없다. 


그러한 상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상처에서 시작되는 말하기와 듣기가 축적되면 그건 국가와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을 야기한다. 따라서 개인의 상처와 말, 대화가 절대로 사소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문제와 사회적 현상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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