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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rene Mar 17. 2020

혁신 2

행정부도 문제다

[혁신]이란 글은 입법부와 정치에 대한 비판이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회와 변화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걸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국회에서 정파싸움만 하기 때문에 법제도를 시대적 흐름에 맞춰가면서 수정해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소 4년 길면 20-30년 이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정치를 통해 여론을 끌고 가고 이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였음을 우선 분명히 하고 싶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고 미완성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나라는 입법부뿐 아니라 행정부도 문제라는 것을. 이 글의 내용은 단순히 혁신에 대한 부분뿐 아니라 우리나라 공무원 제도 전반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혁신과 연결지은 것임을 우선 밝히고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고시제도]를 운영한다. 나이가 어리고 사회경험이 없어도 조금 더 어려운 시험을 잘 보면 아래에서 9급부터 시작하는 공무원 체계에서 5급이 되는 체계. 이런 시험이 유효한 시대가 있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드물고 정보가 상아탑 안에 제한되어 있어서 공부를 한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특장점이 있는 시대에는 이런 사람들을 리더십으로, 관리직으로 선발해서 더 큰 그림을 보게 하는 게 필요했다. 90년대까지도 이런 제도는 일정 부분 유효했고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 게 맞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21세기의 고시제도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고시 시험의 시험 방식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21세기의 시대적 변화와 관련된 것이다. 우선 고시 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아니 대부분 문제가 암기가 주심이 된다는데 있다. 국립외교원을 통해 외교관이 배출되는 외교부 공무원의 경우 이제는 시험과 함께 교육을 해서 공무원을 채용하지만 행정고시는 여전히 암기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시험제도로 공무원을 선발한다.


이러한 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암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선발되지 사고를 잘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선발되지는 않는다는데 있다. 하급 공무원의 경우 암기를 잘하고 주어진 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잘 처리하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게 필요하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관리자 역할을 하려면 흐름을 읽고, 따라가면서 어느 정도는 방향성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을 연결해서 하나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골방에서 암기만 주야장천 해서 곧바로 관리자급으로 채용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그런 사고를 할 수가 없다. 


그걸 채용후 유학제도 등을 통해서 보완하려는 시도도 사실은 구시대적이다. 유학을 가서 '선진교육시스템'을 체험하는 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의미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수준도 굉장히 높아지고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에서 대부분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현시점에 공무원들을 유학 보내주는 건 이제 '승진할 스펙'을 갖추거나 '쉬고 올 기회'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이토록 극단적으로 암기 중심적인 국가 채용 시험은 아마 전 세계에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제도가 있지 않았냐고? 고위직 공무원을 선발하는 제도인 과거제도는 유교적인 철학에 대한 시험을 보는 서술형이었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은 '사고하는 법'을 기준으로 선발했지 '암기한 양'을 통해 선발하지 않았다. 하급관리 들나 기능직은 그런 기준으로 사람들을 선발하기는 했지만. 과거시험은 관리하는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암기가 중심이 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제도의 문제점이다. 이는 사실 우리나라 특유의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환상]으로 인해 고쳐지기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공무원이 왜 용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무원이 더 높은 사람이라는 개념은 사실 많이 희석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공무원에 대해서도 기능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험을 통해서 젊은 사람을 선발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업무영역에 대해 얼마나 전문성을 가질까? 모든 영역이 극단적으로 전문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그렇게 관리직 공무원을 선발하는 게 시대적으로 맞을까? 


공무원은 말 그대로 국가기관에 채용되어서 일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높은 직책에는 해당 직책을 하는데 필요한 전문성이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외부 영입이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고 하지만 고등고시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상 그런 전문가나 경력자가 채용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남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고시]라는 라인이 존재하니까. 


그런데 그로 인해 전문가와 경력자들을 정부에서 채용하고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들은 엄청나다. 사기업들은 뭐를 하나 하려고 해도 공무원을 가르치면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데 공무원이 의사결정권 자다 보니 사기업들은 곧바로 을이 된다. 그런데 사회생활은 해본 적이 없고 행정부 안에서 관리하는 것만 해본 공무원들은 현실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는커녕 사회적 변화들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 등에 대한 의사결정은 리스크가 항상 따르다 보니 공무원 세계의 특성상 모든 것을 보수적으로 처리하는 패턴이 계속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축은 행정부의 노쇠함과 전문성의 결여로 인한 것이다. 아무리 입법부가 엉망이라고 해도 행정부에서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사기업들의 의도와 사회적 변화를 읽으면서 [고시 라인]을 의식하지 않고 필요한 변화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이 정부입법을 통해서라도 법제도를 바꿔나가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무원들은 그렇게 보수적일 수밖에 없을까? 그건 현실적으로 그들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해서 정부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되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신분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공무원이라고 그만둬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처하는 상황이 없겠나? 그리고 요즘 시대 공무원들이, 그것도 관리자급 이상의 공무원들이 편하게 룰루랄라 하면서 일할 수 있는 부처는 거의 없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공무원들도 일이 늘어나서 (물론 사기업이 전반적으로 더 세긴 하지만, 52시간이 도입된 이후에는 그 또한 어떨지 모르겠다.).


반면에 만약 사기업에서 해당 영역의 경력자들을 채용하거나 전문가를 채용하면 그 사람들은 정부에 몸을 담았다가 밀려나도 다른 경력들에 정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그 경력을 결합해서 또 다른 회사나 일을 찾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있는 사람은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조금 더 과감할 수도 있다. 또 그런 경력과 경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의사결정을 내리면 그 의사결정이 그런 경력, 경험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내린 것보다 맞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나라에서 혁신적인 사업이 정부 규제와 보수적인 정부로 인해 나오지 못하는 이면에는 이처럼 우리 사회와 국가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있다. 이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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