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cyrene Mar 18. 2020

대화의 시작점, 부모와 자녀

대화의 원리. 7화

우리 집은 말을 조금 강하게 하는 편이다. 나는 나만 그런 것인 줄 알았다. 그리고 부모님께 '너는 유별나고, 성질도 더럽고 정말 자기중심적이야'라는 말을 꽤나 자주 듣는 편이었다. 또 실제로 학교나 다른 관계에서 내 말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기는 싫어하는 편이어서 욱하고 터지고 직설적으로 말을 했다가 또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해지고, 그러면서 내가 정말 나쁜 놈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했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표현하는 것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학창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나만 그렇게 유별나게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말투에 어머니, 아버지의 말투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말이다. 두 분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말을 강하고 직설적으로 하시는 편이었는데 난 상황에 따라 그 두 가지를 다 구사하고(?) 있더라. 그리고 나는 항상 모든 것에 대해 남 탓을 한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자주 혼났는데, 어느 순간 보니 부모님이야말로 본인들은 잘못한 게 없고 모든 게 내 탓인 것처럼 말씀하고 계시더라.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완강하게 버텼다.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그리고 내 본성에서 나오는, 본능적으로 부모님께 언성을 높이는 패턴으로 대드는 것이 아니라 내 방식으로, 방어적으로 부모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을 받아쳤다. 그리고 남들이 보면 버릇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이런 말투는 어머니(아버지) 영향받은 거잖아요. 어머니(아버지)께서 못 고치시는 거, 저만 고치라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그렇게 나쁜 애 아니에요. 뭐라고 하시든 간에 전 그 말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라면서 대들었다. 동생은 나이 다 먹고 왜 집안을 시끄럽게 하냐고 내게 화를 냈지만 난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만,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우리 집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나는 또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 상처를 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맞선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내 안에 있던 상처들이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었고, 30년 넘게 써온 내 말투가 확 바뀌지는 않지만 이젠 말할 때부터 조심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말투는 유지되고 있지만, 내용을 바꾸거나 그 앞뒤에 다른 표현을 붙여서 상대를 찌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을 하는 편이다.


우리 부모님이 정말 나쁜 분들이시냐고? 아니다. 사실 두 분께서 그런 말투와 대화 패턴을 갖게 된 것은 우리 양가 가족사의 영향이 있었다. 양가 모두 힘든 시절을 보냈고, 그러다 보니 두 분은 또 나의 조부모님께 그런 말들을 주로 듣고 자라셨고 부모님은 절대적인 존재고 본인들은 순종해야 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런 패턴이 몸에 익으셨을 뿐이다. 두 분도 피해자셨다. 지금보다도 강한 가부장제와 군대문화가 훨씬 강했던 시대와 그 시대에 상처 받은 부모님을 두심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피해자셨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가장 어린 시절에 아이들은 부모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거의 모든 첫 경험을 부모와 하지 않나? 조선족 아주머니를 가사도우미로 고용했더니 아이 들으 조선족 말투로 한국말을 한다는 것은 그냥 흘려들으면 안 되는 사례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아주 어렸을 때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이 그대로 흡수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뭔가 행동을 하면 부모는 '내가 저랬나? 저런 걸 어디에서 보고 익힌 거지?'라고 생각하고 본인부터 돌아봐야 한다. 본인이 하지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요구해서도 안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말은 '나는 그런 거 못하지만 너는 해야지'라는 말일 것이다. 왜 성인인 본인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요구한단 말인가?


아이들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적더라도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부모일 수밖에 없다. 이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고, 부모에게 칭찬을 받고 싶기 때문에 부모에게 들은 칭찬은 그 무엇보다 아이를 기쁘게 하는 반면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렸을 때 본인이 경험한 것을 성인이 되어서 그대로 구현해 낸다. 부모 없이 자란 사람들은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 성장과정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이는 우리가 뭔가를 배우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울 때 보통 어떻게 하나? 우린 우리가 처음 보는 것을 따라 한다. 그래서 운동도 기초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나이가 들수록 습관을 고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는 어떻게 학습될까? 당연히 처음 보는 상대가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의 경우 부모나 그 아이를 길러준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부모와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 일방적인 통보를 받기만 한 사람들은 대화를 잘할 줄 모른다. 부모와 양방향 소통이 아니라 윽박지름만 당한 사람은 그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내면의 상처를 받게 되고, 그 상처는 자신이 상처를 받게 된 그 원인과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표출된다. 아이가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부모가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것이어도, 듣고 반응해 주면 아이들은 자신의 말을 상대가 들어줬다고 느끼고 그렇게 대화하는 법을 배워 나간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그 윗세대가 한 가장 큰 착각은 '지금은 돈을 벌어다 줘야 돼. 대화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될 거야'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대화하고 공유한 것이 없는 관계는 그 형식적인 관계가 아무리 가까워도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대화를 할 줄 모를 확률이 높다. 이는 우리가 수영을 배우거나 물에서 놀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수영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책임은 무겁다. 부모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늘 잘 대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본인 안에 큰 상처가 있거나 본인이 남한테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하거나 상대의 반응이 걱정되어서 말을 잘 못한다면 자신 탓은 하지 말자. 그리고 그걸 바꾸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천천히 하자.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그 다음에는 한 주에 한 번 그러다 하루에 한 번씩.


누군가 내 말을 존중하면서 들어준 경험이 없어서 나도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른다면 내가 상대의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 그렇게 반응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리고 상대의 말을 들었는데 이해가 안 되거나 아닌 것 같다면 그게 어떤 맥락에서 왜 그렇게 말한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그게 어렵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건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건 생각보다 쉽게 유추된다.


자녀에 대한 모든 영역에서 부모의 영향이 큰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절대적이지도 않고,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건 부모님도 누군가의 자녀였고, 그 부모의 부모도 누구의 자녀였으며 그들의 대화 패턴은 그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와 그들이 처한 상황도 영향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운동을 잘못 배웠어도 계속 연습을 하면 자세가 교정되듯이, 대화하는 습관도 노력하면 바뀐다. 시간이 걸릴 뿐. 일상에서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을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교정해 나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방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부모, 부모의 부모,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영향을 받았음을 기억해줘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배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말을 맥락적으로 들을 수 있고, 우리는 그렇게 듣게 될 때야 비로소 더 나은 대화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대가 전혀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럴 때는 피하는게 상식이다. 그 사람은 어차피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화능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