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cyrene Mar 20. 2020

프리랜서가 회사원 시절이 그리울 때

프리 하지 않은 프리랜서 이야기. 10화

오랜만에 일감이 들어왔다. 코로나로 인해서 모든 게 멈춰있고, 이는 프리랜서들의 계약 역시 마찬가지다. 갑님들은 작년 말, 올해 초에 편성받은 예산을 다 쓰셔야 한다. 그런데 이 사태가 어디까지 가서 언제까지 경제가 움츠려들지 모르다보니 올해 사업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들이 멈춰있는 듯하다. 프리랜서들은 그 타격을 그대로 받는다. 비정규직이나 계약직뿐 아니라 조직에 구속받지 않고 일을 받고 계약해서 하는 프리랜서들도 그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고맙게도 급행으로 일이 들어왔고, 돈은 안되지만 개인적으로 벌리고 있는 (유튜브 같은) 일들 때문에 솔직히 조금 빡빡한 편이었지만 밤샘을 하고 일을 넘겼다. 그래서 넘긴 결과물이 걱정이 되기도 했고.


회사원이었던 시절이 이럴 때 가장 부럽다. 어쨌든 법적으로 월급을 주는 게 강제되어 있는 신분. 예측가능성이 담보되어 있어서 마음 편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신분. 회사원들은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서 돈을 적게 받는다'라고 불평을 많이 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데 본인이 착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해도 회사에서 돈을 적게 주는 것은 '안정과 예측가능성'에 대한 대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생각보다 가치가 크다. 그 가치는 돈이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면 깨닫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의 질이 떨어지거나 순간의 슬럼프가 와도 월급이 보장되어 있는 건 인생에 꽤나 큰 안정감을 준다.


내가 작년에 아는 동생 회사에 정규직으로 잠시 들어갔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내 일이 있을 때는 빠져도 된다는 전제가 깔리긴 했지만, 12년 전에 대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을 때와 같은 수준의 실수령액을 받고서라도 그 친구 회사에 들어갔던 것은 박사를 받은 이후 정규 직장이 잡히지 않아 정규 수입이 몇 달간 없자 내가 불안증세를 보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상한 대학에서 이상한 전공으로 박사를 받은 것도 아니다. 작년에도 정부와 연구기관 일을 받아서 했을 정도로 내 전공은 나름 실용적인 면이 있다.). 그 불안증세가 그때 소개팅을 해서 잠시 만났던 친구에게도 그대로 드러나면서 결국 그 관계도 오래가지 못했고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그 회사에 정규직으로 와서 중심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받았고,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안정감 때문이었다.


그 회사를 그만둔 것은 내가 나이도, 경력도, 경험도, 성향도 이젠 누구 밑에서 일할 성향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 방면에서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만두기로 한 시점에 프리랜서로 일이 몇 가지 잡혔고 그 덕분에 작년에 통장잔고가 줄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를 그만두는 건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한 불안정성과 함께 회사원 시절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그건 사람이 그리울 때다. 회사를 다닐 때는 어쨌든 함께 공감하고 대화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상사 욕일 때도 있었고 회사일 때문일 때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내가 내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할 사람이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회사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도 대화가 끊어지더라. 관계를 끊으려고 끊은 게 아니었다. 아직 그 안에 있는 그들에겐 여전히 회사의 상황과 상사가 대화의 주된 재료였고, 이제 그 밖에 있는 내겐 그 이야기들이 더 이상 공감되지 않았다. 이는 내 첫 회사에서도, 작년에 들어갔다 나온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원으로 있을 때는 몰랐다. 월급이 소중한 것이고, 직장동료가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몰랐다. 둘 중에 어떤 게 더 회사생활을 그립게 하냐면 그건 사람이다.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은 건 점차 적응이 되어가고 있고, 내가 일을 받을 수 있는 루트들이 보이기 때문에 기다림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내 일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프리랜서로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심으로 완전히 비혼으로 살고 싶은, 살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결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거나 적당히 결혼하고 싶지 않을 수는 있다. 최소한 연애는 지속적으로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프리랜서로 살다 보면 일상에서의 긴장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설레고 콩닥이는 연애보다는 가정에 대한 소망함이 커진다. 이는 내 삶을, 일을 같이 대화하고 공감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연 가족이 아니라면 그걸 다 받아주고 공감하며 내 일처럼 여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외로움을 오롯이 혼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은 굉장히 강한 사람일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실 나는 조금 다르다. 하나뿐인 동생이 재택근무를 해서 하루에 잠시라도 대화를 할 사람이 있어서 좋고, 올해는 시골에 내려가서 사시는 부모님께서 찾아오시면 그나마 긴장하지 않고 대하고 편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회사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직장동료들과 함께 있는 게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편하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있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말이다. 회사원들도 본인 가족이 회사에서의 고충이나 상황에 다 공감하거나 받아주지는 못하니까.


너무 이기적인 것인지 몰라도, 요즘 시국을 경험하며 '이제 회사원들이 프리랜서의 고충을 조금은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회사원으로 있는 게 힘들어서, 내 성향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프리랜서로 살고 있지만, 회사원 시절이 꽤나 자주 그립다. 그게 내 길이 아닌 것을 알아도.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n 잡러의 허와 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