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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rene Mar 22. 2020

멈춤

멈췄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서로가 많이 좋아했던 연인이 있었다. 우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릴 옮기지 않고 그 식당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대화를 나눴고, 이틀 후에 만나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새벽까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눴다. 수험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 직업 특성상 일주일 정도 얼굴을 못 보게 되자 편도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친구 직장 앞에까지 가서 그 친구를 만났다. 우리가 크게 싸운 날은 그 친구가 또 직장에서 우리 집까지 와서 대화로 오해를 풀었다. 우리 둘은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가까워졌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얘기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브레이크가 잡혔다. 한참을 고민했던 그 친구는 아무리 그래도 식장에 들어갈 때 신랑이 소속이 없는 게 싫다며 올해는 말고 내 시험이 끝나고 나서 날을 잡자고 했다. 결혼 적령기에 있었던 우린 당연히 우리 둘이 함께 가정을 꾸릴 줄 알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너무나 깊은 영역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우린 무의식 중에 서로가 사소한 영역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다. 시속 200km로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서로의 작은 부분들이 브레이크를 잡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깊은 곳을 다 공유했기에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착각이 우리를 만나면 싸우는 커플로 만들었다. 별것도 아닌 걸 갖고 싸웠다. 헤어지고 나서 통화를 10분만 하면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로. 그런데 그게 2-3달 동안 계속되니 지치더라. 그리고 내 시험 100일을 앞두고, 계속 이러면 안 될 듯해서 일단은 헤어지기로 했다. 인연이면 다시 만나지 않겠냐면서. 


그 친구가 시험 1-2주 전에 긴 메일을 보내왔는데, 인생에 있어서 너무 중요한 시험을 코 앞에 두고 극도로 긴장하고 예민한 상태에서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었던 난 그 메일을 읽지도 않고 지웠다. 심지어 메일함까지 비웠다. 시험이 코 앞인 것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긴 메일을 보내는 건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한참을 후회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그 친구와 가정을 꾸렸다면 어땠을까? 다툼이야 있었을 것이고, 맞춰가는데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그래도 잘 살았을 것이다. 그 사람도, 나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가치를 공유했고 얼핏 접하는 소식들을 보면 그 친구는 계속 자신이 가던 길을 가는 듯하니까. 뭐가 문제였을까? 결국 멈췄던 것이 문제였다. 액셀을 밟았으면 그대로 가거나 천천히 감속을 해야 했는데, 우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고 나니 미친 듯이 달릴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린 그로 인해 지쳤으며, 그게 축적되면서 헤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 국가가, 아니 어쩌면 전 세계가 멈춘 느낌이다. 다른 국가들의 상황을 보니 우리나라는 그나마 나은 것 같을 정도다.


그렇게 브레이크를 밟고 나니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우리 사회와 다른 국가들의 민낯이 말이다. 정치인들은 이 와중에 편 가르기를 하고, 의료시스템과 국가체제가 엉망이었던 국가들은 사망자가 속출하며,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의 수준인 사람들은 나만 안 걸리면 된다는 듯이 거리를 활보한다. 이 와중에 자신의 성공만 아는 한 국가는 다들 안된다는 것을 진실을 감추고 국민까지 속이며 하겠다고 한다. 


이 멈춤의 순간도 결국 끝이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야 하고, 이 멈춤의 시간에 보인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멈춤의 순간에 드러난 민낯 중에 뜯어고쳐야 할 곳은 메모하며 관찰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멈춤의 시간이 저주와 고통이 아니라 돌아보니 이보, 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갑갑해서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정적이고 예민하게만 반응하면 이 멈춤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거대한 상처만 남기고,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지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멈춤의 시간은 개인에게도, 관계에게도, 사회에게도 중요하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기만 한 시대에는 멈춤의 시간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작은 선택이 우리 삶에, 우리 사회에,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그 고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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